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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莫便宜於近其人 

'그 사람의 자리에 다가섬으로써 배우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學莫便宜於近其人)‘고 배웠습니다. 정신적 존재인 타자와는 영영 자투리 없이 겹칠 수 없지만 그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어울림을 통해 시간성을 뒷배로 타자성을 조금씩 겹쳐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정신이 자라는 공부의 벡터는 간단없이 타자성을 향해야 합니다. 숙인으로서 일 년이 지난 시점에 신입 숙인을 맞이하면서 머물고 있던 자리의 외부에 서게 되었습니다. 외부 자리에 서게 되니 자신이 발 딛고 있던 자리가 선생님과 선배 숙인들이 건네고 있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뒷배로 근근이 유지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하늘은 동전 한 닢 크기일 뿐이며, 젊어 생기가 왕성할 때는 버스나 지하철 자리를 두고 고군분투하는 노약자의 자리를 알 수가 없고, 장애가 없는 사람으로서는 사회가 지닌 문턱이 앗아간 장애인의 이동권을 체감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렇기에 어른이라면 타자성의 무지에서 비롯하는 무례를 넘어 성숙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형식[本]을 갖추는 동시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할 수 있는 도량을 키워야 합니다. 어른의 자리는 시간성을 매개로 타자의 자리를 내재화하며 지혜를 갖춰 나아가는 일과 별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과 선배 숙인들의 존재론적 그늘이자 겉과 끝인 생활 양식에 습합됨으로써 정신이 움트고 떡잎 하나 만큼이라도 자랄 수 있게 되면서 어른의 존재론적 역할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처한 자리를 통과한 후 외부에서 굽어볼 수 있어야 그 자리를 둘러싼 형식이 보이기 시작하고, 깊어진 시야를 기반으로 응하기에서 다르게 개입하며 자신과 타자를 도울 수 있는 지혜와 꾀가 생겨납니다. ‘자라지 않는 어른’은 코앞의 이기심에 휘둘려 타자성과 시간성이 맞물려 개창되는 외부성의 자리로 이동하지 못하는 어리석음[下愚不移]에서 기원합니다. 마찬가지로 공부도 간단없이 배우고 잊(익)는 과정[學而時習]을 반복하며 응하기의 잠재성을 ‘알면서 모른 체하기’의 차원에 통할함으로써 외부성이 개창되며 ‘자득’이 따라오게 됩니다. 배운 것을 묵히는 과정을 거쳐 ‘거대한 퇴행’으로 하이얀 빈터를 마련하지 못하면 자득과 실력과 기별의 꿰미는 찾아올 터를 얻지 못합니다. 

신입 숙인의 합류 덕분에 자신의 자리에서 외부에 설 수 있는 계기를 맞이합니다. 장숙의 식탁도 새로운 식구(食口)를 맞이해 선배 숙인들의 환대를 담아 오늘 만큼은 풍성합니다. 밥상의 배치도 밥상과 밥상이 맞물렸던 닫힌 자리를 개방하고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나눔으로써 신입 숙인의 자리를 마련하는 변화를 주었습니다. 밥상은 물리적으로 둘로 분리되었고 자리는 좁아졌지만 함께하는 시간 속에 유염(濡染)되는 온기를 매개로 숙인들의 인연을 깊게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선생님과 선배 숙인들의 그늘 아래 새로운 식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주고받게 될 타자성의 소식이 더욱 기대되는 장숙의 ‘새로운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