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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1. 이 책은 지난 20여 년 사이에 이뤄진 글쓰기의 고민과 모색, 비판과 실험의 결과를 한데 모은 것입니다. 글쓰기의 경우 누구에게나 그런 면이 있겠지만 특히 내게는 사적인 연원이 두터운데, 내 인생에도 실존주의가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글쓰기의 실존주의’와 겹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도르노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흑연심을 입으로 빨던 어린 날부터 글쓰기는 이미 내 정신의 거처였습니다. 말하자면 ‘정신의 장소화’로서의 글쓰기 체험은 가령 조지 오웰류의 글쓰기론이나 그런 식의 분류를 천박하게 여기도록 종용하기도 했지요. 돌이켜보면 나는 ‘글을 쓰지 않고 넘긴 날이 없을nula dies sine linea’ 정도였는데, 그러니까 여기에 모은 글들은 그저 글모음이 아니라 글이 된 날들이 다시 메타성을 얻으면서 그 흔적으로 자신을 드러낸 셈이지요.
2. 달리 생각해보자면, 각자의 삶에 성실하고 철저한 채로 글을 남기지 않은 현성賢聖들이 있듯이, 좋은 삶에 글쓰기가 필수불가결한 행위도 아니며, 넓은 뜻의 공부나 수행에서 반드시 뺄 수 없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긴 세월 ‘글로써 공부하고 글 쓰면서 공부하는’ 형식을 택했고 또 그러한 실천을 옹호해오긴 했습니다. 그러나 글은 인간과 세상을 대하는 하나의 (중요한) 매체일 뿐이며,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이웃을 돕고 한세상 뜻있게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요. 이 판단은, 글쓰기에 흔히 개입하곤 하는 허영과 퇴폐와 과장과 나르시시즘 등속의 폐해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존재와 삶에서 글(쓰기)은 무엇일까, 라는 좀 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신神과 여타의 짐승은 글을 남기지 않고 그 사이존재Zwischen-sein인 인간만 이 글쓰기에 집착하고 있다면, 글쓰기 역시 인간이라는 명암에 지펴 있는 활동이겠지요. 그런 뜻에서 나는 글(쓰기)을, 그것이 제아무리 탁월하고 심오한 생산물이라도, 결핍과 원망願望의 층을 깔고 있다고 여깁니다. 이 이치는 이미 정신분석학 등에서 잘 해명해준 것처럼 욕망désir이나 선물의 메커니즘과 닮아 있기도 합니다.
3. 비슷한 취지를 조금 더 이어가자면, 엄밀히 말해 글쓰기는 자유와 행복과 구원의 표지라기보다는 그 역에 가까운 게 사실입니다. 과장과 표절과 말 끌기와 혼성모방의 붕어빵이 번식하는 아카데미아의 이야기는 잠시 치지도외합니다. 요컨대 글쓰기는, 혹은 최소한 그 동력은 그 어떤 경우에도 삶의 결핍과 실착과 어리석음과 연루되어 있습니다. 나 역시 ‘어긋나는 인생儘ならぬ世’을 주제로 여러 글을 쓴 적도 있는데, 글쓰기는 바로 이 어긋나는 틈에서 기생하는 법입니다. 이미 다른 책에서 상설했지만, ‘글쓰기 없는 삶’에 관한 현성賢聖의 이치가 간접적이나마 이를 적시합니다. 나는 그 누구나의 경우처럼 내 실존의 거처―‘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 를 만들면 견딜 수 있다’(카렌 블릭센)는 식으로―로서 글쓰기를 시작했고, 한때 문청文靑이기도 했으며, 글쓰기에 있어서의 탈식민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후 꽤 긴 세월 글쓰기의 철학에 골몰하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한 근년의 내 생각이나 그 변화는 한나 아렌트도 언질한 바 있는 ‘무기록의 삶’에 관한 성찰과 관련됩니다. (이 성찰의 일단은 2017년에 상재한 『집중과 영혼』에 상설되어 있습니다.) 아렌트는 (가령) ‘소크라테스의 무기록은 중요한데 (…) 사상가는 기록하는 순간 영원성을 버리고 자기 흔적痕迹을 남기는 데 치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그의 말로 고쳐 표현하자면, ‘살아 있는 정신이 죽은 글자로’ 대체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나는 지난 수십 년간 쉼 없이 글을 써왔고, 그 와중에 글쓰기의 철학적-인문학적 함의를 탐색해왔지만, 글쓰기 실천의 적지 않은 기능과 가치에도 불구하고 결국 글은, 혹은 글쓰기는 삶의 결핍과 어긋남을 드러내는 표식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언젠가 어느 글에서 ‘글이 좋은 사람보다는 말이 좋은 사람이 되라’라는 문장을 남긴 것이 바로 이런 취지를 품고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는, 혹은 최소한 나는 생활에서 결핍된 것을, 혹은 말에서 결핍된 것을 글 속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셈이지요.
4. 하지만 인간의 정신이 언어성Sprachlichkeit을 통해 이차 의식을 틔웠듯이, 인간의 문화와 공부도 언어를 매체로 삼아 여타의 동물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성취를 이룬 게 사실입니다. 인간을 일러 ‘언어적 동물homo linguisticus’, 서사구성적 존재 혹은 ‘상징적 존재homo symbolicus’(에른스트 카시러)라거나, 이윽고 인간을 ‘언어의 목자Hirt der Sprache’(하이데거)라고 부르는 것은 결코 예사 노릇이 아니지요. ‘이언의언離言依言’(휴정休靜, 1520~1604)이라는 말처럼, 인간이라면 말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초월적 움직임이 있는 게 당연하지만, 언어성과 돌이킬 수 없이 연루된 인간이라는 정신의 특이성을 살피자면 또한 말에 의지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럴드 에덜먼은 “성숙한 뇌는 주로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The mature brain speaks mainly to itself”면서 이 사실을 뇌과학적으로 방증하고, 수전 블랙모어는 밈 경합meme-emulation의 차원에서 인간이라는 기이한 말꾸러기를 매우 흥미롭게 설명한 바 있지요. 이렇게 보자면 ‘지자불언知者不言’(노자)의 차원마저 은근히 의심하지 않을 수 없어 보입니다.
5. 물론 글은 말이 아닙니다. 둘의 기원은 진화사적으로도 구별되며 뇌 기능적으로도 뚜렷이 변별되는 영역과 메커니즘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구한 문명문화사는 그 모방과 경합과 창의를 매개로 인류의 정신계를 뒤덮게 된 글(들)의 다양한 분화와 정교한 구성을 통해서, 다른 한편 언문일치言文一致의 제도적 근대화를 통해서 말을 글의 코드에 접합시키는 데 대체로 성공해왔습니다. 특히 소설과 신문이 일상화되는 시대를 지나오면서 인간의 말과 글은 거의 통합되다시피 했고, 이로써 글의 정신문화적 중요성은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었지요. 물론 눈부신 신매체들이 기승을 부리는 사이 이른바 구텐베르크 혁명의 후과는 어느덧 그 효용을 다해간다는 의심의 기운들도 적지 않아 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촘스키의 낡은 주장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말-글은 이미 유전적으로 각인되어 있으며, 하이데거나 에덜먼의 말처럼 인간의 존재와 의식은 언어성과 뗄 수 없이 습합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이 돌이킬 수 없이 매개적일 수밖에 없도록 중층나선화重層螺旋化된 현실 속에서 인간이 만든 도구 가운데 가장 유연하고 정치한 매개인 말-글의 역할과 가치는 쉽게 사위지 않을 것입니다.
6. 이 책의 초반부를 이루고 있는 원고는 『탈식민성과 우리 인문학의 글쓰기』(1996, 이하 『탈식민성』)입니다. 내가 미국 유학을 마치자마자 서울의 한 대학에 초청받아 취업한(1990) 이후 이미 여러 권의 책을 상재했지만, 실제로 학계와 독서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는 바로 이 책이었지요. 당시의 내 학문적 관심은 이미(!) “인식과 해석을 넘어 성숙과 해방의 지경을 개척하는 것”으로 옮아가고 있었습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서, “내 학문의 축이 ‘정확히 아는 것’에서 ‘깊이 걷는 것’, 혹은 ‘잘 사는 것’으로 옮아가고” 있다고도 언질한 바 있습니다. 이제야 되돌려 헤아리면, 채 마흔에 이르지 못한 당시의 나로서는 얼마간의 경조輕燥나 욕속慾速에 먹힌 느낌이 없지 않지만, 그 누구에게나 그 나이만큼의 절박함을 피할 수 없겠고, 내 이름자敏처럼 ‘때를 좇아 애쓰는 것時敏時逐’을 어쩔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마저 ‘어진 선생을 얻지 못해 헛힘을 쏟은 不得賢師旺費工夫’(서화담) 꼴이라고 자인, 자책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아무 튼 ‘인식에서 성숙으로’라는 글귀가 40대 초반의 내 주요한 관심이었다는 사실도 이로써 쉽게 염출할 수 있습니다, 『탈식민성』은 겉보기에 글쓰기 문제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앎의 권리 원천이 오직 삶의 터와 역사 속에 있다”는 좀더 일반적인 주장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이른바 앎과 삶의 통풍을 가능케 하는 학문적 실천을 통해 새로운 인문학의 복원과 그 일리지평一理地坪을 제시하려는 당시의 의욕과 젊게, 그러나 낡게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낡았다는 진단은, 가령 거의 100년 전에 육당 六堂과 그 후예들이 온몸으로 외쳐온 ‘정신과 사상과 학술의 독립’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신부터 독립할 것이다. 사상으로 독립할 것이다. 학술에 독립할 것이다. 특별히 자기를 지키는 정신, 자기를 발휘하는 사상, 자기를 구명하는 학술상으로 적대한 자주, 완전한 독립을 실현할 것이다. 조선인의 손으로 조선학을 세울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정신에 동의하고 이러한 과업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멀고 미미한 후학의 한 사람으로서 이를 위해 우선 ‘(인문학적) 탈식민성’을 선결 과제로서 절실하게 맞아들였고, 이 과제를 특히 내가 장기간 관심을 지니며 실천해온 글쓰기의 매개를 통해 구체화하게 된 것이지요. 이미 탈식민성 문제가 “종속적 대외 관계에 국한되지 않고 (…) 정작 중요한 것은 오히려 이미 그 종속성이 우리 자신의 삶과 앎을 서로 소외시키고, 속으로부터 우리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내면의 문제로 체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나는 부족한 견식과 일천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강점의 상태로 세낸 집 속에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노라고, 내 생각과 글로써 나 자신의 정신이 독립할 거처를 새롭게 짓겠노라고, 장판교의 장비라도 된 듯 외친 것이지요. “이미 우리는 남의 생각과 남의 집 속에서 너무나 ‘편하게’ 살고 있다. 눈을 씻고 찾아보라. 책의 안팎에, 교실의 안팎에, 대체 우리의 것, 우리 역사의 터를 거쳐서 법고창신法固暢新과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바람을 맞으면서 키워온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남아 있는가.” 이미 근대화 그 자체의 역사구조적 잔핍殘乏과 왜곡에 의해서 이 나라 전체가 법고창신을 말아먹었을 때, 학인 개인의 실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한 것입니다.
7. 이 책의 중반부는 『탈식민성』이 출간된 지 2년 후에 상재한 『손가락으로, 손가락에서: 글쓰기와 철학』(1998, 이하 『손가락』)입니다. 이 글은 그 부제가 잘 압축하고 있듯이, 철학/인문학의 글쓰기로부터 방향과 관심을 내려앉혀 ‘글쓰기의 철학’을 주제로 삼아 쓴 것들입니다. 이 문제의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던 것으로서 이미 『탈식민성』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놓은 바 있습니다. “소위 ‘글쓰기 철학’은 최근 수년간 주력하고 있는 내 학문의 중요한 한 갈래다. 더 이상 언어를 단순한 도구나 기호로 여기지 않듯이 글쓰기는 더 이상 의미와 진리로 통하는 터널이 아니다. 터널은 ‘빈 것’이지만 글쓰기는 꽉 찬 것이기 때문이며, 철학의 매개 혹은 그 결과가 글쓰기가 아니라, 글쓰기 그 자체가 가장 심각하고 심오한 철학적 지경 그리고 성숙과 해방의 지평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탈식민성』에서는 좀더 긴급한 의제에 적극적으로 임하느라 본격적인 글쓰기 철학에 개입하지는 않았으며, 이러한 관심은 『손가락』에서부터 전면적으로 심화된 주제입니다. (아울러 지적해두면, 굳이 손가락을 말한 것은 여기서 상설할 주제는 아니지만 훗날 『공부론』이나 『집중과 영혼』 등에서 다양하게 천착한 바 있는 ‘3의 공부’나 ‘알면서 모른 체하기’ 등의 개념과 관련해서 그 함의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탈식민성이라는 현실 타개의 글쓰기로부터 글쓰기에 대한 철학적 분석으로 주제 전환이 이뤄지는 사이에 중요한 매개 노릇을 한 게 바로 ‘복잡성’, 혹은 ‘복잡성의 철학’과 함께 ‘일리一理의 해석학’이라는 개념입니다. 여기서 자세히 해설할 노릇은 아니지만, 그 취지만을 살피자면, 우리 학문의 대외적 종속성이 우리 자신의 삶과 앎을 서로 소외시키고 속으로부터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진단아래, “우선 우리 삶의 현실을 제대로 보자는 배려이며, 그 복잡한 현실을 우리의 언어와 스타일로 일리 있게 읽어내자는 줏대”를 개인의 학문적 실천 속에서 다양하게 구체화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일상에 박진해서 제대로 응하는 일로부터 우리 학문의 주체성과 자생력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고, 이는 그 현실의 복잡성, 그리고 그 복잡성의 해석에 터한 실팍한 일리들을 간추려내는 노력에 의해서 결절結節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고민을 계승하지도 않고 실존적 무게의 책임도 없이 이식된 “진리의 빈 궁궐 그리고 무리의 가건물을 빠져나와 다양한 일리로 뒤엉킨 삶의 모습을 솔직하고 세세하게 파악하며 그 이치의 길을 좇아가면서 성숙과 변혁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바로 이것이 내가 동참할 학문의 길이요, 우리 인문학의 길 없는 길이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이는 아카데미아 중심으로 진행돼온 우리 학문의 제도적 내면만이 아니라 우리의 근대화 일반을 통해 캐면 캘수록 떫고 아프게 만날 수밖에 없으면서도 줄곧 은폐된 곳을 일컫습니다. 우리 땅과 그 역사에 진솔하게 박진해서 내 삶과 내 정신으로 학문의 경위와 안팎을 구성해내려는 학인이라면 누구라도 이 은폐된 비밀의 지역을 통과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나라가 통으로 실패한 자리에서 개인들은 자신만의 방식과 스타일로, 자신의 관심과 문제의식으로 우리 학문의 법고창신과 입고출신入古出新에 나서야 하게 된 것입니다. 다소 지나친 사례이긴 하지만 벽초 홍명희는 『소설 임꺽정』을 쓴 이유를 밝히는 자리에서, “조선 문학이라 하면 예전 것은 거지반 중국 문학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사건이나 담기어진 정조들이 우리와 유리된 점이 많았고, 그리고 최근의 문학은 또 구미 문학의 영향을 받아 양취洋臭가 있는 터”라고 하면서, “사건이나 인물이나 묘사로나 정조로나 모두 남에게 옷 한 벌 빌려 입지 않고 순純 조선 정조에 일관된 작품”을 쓰고자 했다고 했습니다.
8. 『손가락』은 『탈식민성』과는 달리 말 그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글 쓰는 개인과 그의 세계를, 그리고 그 세계의 철학적·인간학적 함의를 탐색하게 됩니다. 앞에서 역사와 제도의 문제를 아프게 건드렸다면 뒤에서는 개인과 실존의 문제를 절실히 파고자 했습니다. “손가락에 스며드는 나와 세상의 만남과 그 대화에 유의하려는 것”이라고 간결하게 압축하기도 했지만, 이 작업은 내 학문이 삶과 앎의 통합으로 나아가려는 길목에서 거치게 되는, 아니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다양한 불이不二의 체험 중 기초적인 하나일 뿐입니다. 다른 글들에서 다양한 소재를 통해 상설하기도 했듯이, 불이의 체험은 인간이라는 독특한 정신적인 존재를 매개로 벌어지는 갖은 공부와 수행 과정이 스스로의 본질을 증명하면서 합류하는 지점입니다. 명상과 호흡이라거나 장인과 달인의 연성練成, 무의식이라거나 심지어 외상성 반응traumatic reactions이라거나 각종 예조豫兆(前触れ) 현상 등등, 몸과 마음이 융통하면서 엮어내는 불이의 자리는 실로 여럿이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글쓰기가 이뤄지는 현장인 손가락에 주목한 것입니다. 그 취의의 요지로서 “머리를 맴도는 관념의 계몽을 넘어서려는 자라면 ‘손가락으로’ 내려 갈 법하고, 손가락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조그만 희망을 가질 법하다”고 압축한 바 있지요. 당시의 나로서는 이 손가락의 자리에서부터 “우리 철학과 인문학의 자생력을 엿보는 창구”라는 ‘좁은 문狹智’을 열어내고자 애쓰는 일이 시급했던 것입니다.
9. 이어지는 세 편의 글(「글쓰기의 묵시록: 총체와 비약」 「글쓰기의 징후, 혹은 징조의 글쓰기」「미안하다, 비평은 논문이 아니다」)은 그 이후에 이런저런 계기로 쓴 것이며, 그간 지속해왔던 글쓰기 철학의 관심에서 연계되고 추가된 것입니다. 「글쓰기의 징후, 혹은 징조의 글쓰기」는 『탈식민성』과 『손가락』이 출간되고 글쓰기 문제가 학계의 의제로 널리 논의되는 가운데 특히 내 생각이나 주장과 관련되어 제기된 이슈들에 대해서 나 자신이 개입한 자리를 밝히려는 의 도로 쓰인 것입니다. 그중에는 당시 학계 일각에서 화제가 된 이른바 ‘표현인문학’ 논쟁에 대한 나 자신의 개입, 혹은 비판이 담겼고, 이는 글쓰기에 대한 내 지론이 공세적으로 성글어지는 중에도 한편 전형화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글쓰기의 묵시록」은 역시 글의 제목처럼 글쓰기의 미래에 관한 철학적 전망을 다룬 소고小考로서, 특히 전자매체적 기술과 문화의 급속한 변동에 조응할 수밖에 없는 글쓰기의 운명을 살피되, 그 매체론적, 형이상학적 혹은 신학적 분석과 평가를 내놓습니다. 마지막 글인 「미안하다, 비평은…」은 특별히 이 작업 이후의 생각과 저작 속에서 자못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비평’ 개념의 내력을 살피기에 좋은 참조점이 됩니다. 비평을 형식적으로는 논문과, 내용상으로는 이론과 달리 배치함으로써 “비평의 싸움은 무엇보다 ‘자기-생각’과의 결별을 실행하는 실존적 도약의 실천”이며, “앎을 삶 속에서 벼리고 담금질하는 방식”으로 읽어냅니다. 이로써 이후 『동무론』(3부작) 등에서 구체화하는 인문 공동체적 실천의 개념적 밑돌이 구성되는 셈이지요.
10. 나는 긴 세월 글을 통해서, 글쓰기로써, 그리고 글과 함께 공부길을 걸어왔습니다. 하루 몇 시간은 변함없이 책을 읽고 몇 시간은 역시 변함없이 글을 쓰는 중에 어느새 상유桑楡에 노을의 붉은빛이 짙어가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지요. 글쓰기는 내 정신의 거처였고, 내 일상의 노동이었으며, 내 성숙의 묘판苗板이었고, 내 초월의 실험장이었습니다. 실로, 긴 세월 글쓰기 없는 내 생활은 상상할 수 없었지요. 마치 그 발톱으로 짐승을 알아채듯이 어느새 독자들은 글로써 나를 알아내게 되었고, 더불어 갖은 평판에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필자로서 얻을 수 있는 무상의 상찬이 그야말로 원 없이 베풀어지기도 했습니다. 말글처럼 정교한 매체가 없기에 글쓰기도 그 필자의 정신세계를 비교적 적확하게 드러내는데, 내가 글쓰기의 수행 遂行, 修行을 거치면서 얻게 된 사연은 역시 결국은 내 정신세계의 내력을 알리고 우리 시대의 주류와 버성겨온 지표일 것입니다.
나는 글과 함께 성장했고, 글로써 입신했으며, 글로써 내 길을 찾아왔고, 마침내 공부길의 긴 도정에서 글쓰기를 넘어서는 자리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쓰지 않으면 죽겠는지’를 말하던 릴케를 지나고 ‘어떤 상황에서나 처음이자 마지막 수단으로 글에 의지하곤 했던’ 트로츠키를 경유했으며, ‘입을 벌리면 글詩이 콸콸 쏟아진다’는 어떤 아이를 통과해서 이윽고, 글들이 무너지고 부서져서 생활의 하아얀 점 속으로 사라지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최초의 글쓰기에 대한 기억은 시詩-쓰기였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공자께서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조차 못 한다 不學詩無以言’는 자리의 한 끄트머리를 엿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과 변화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의 기운은 내 공부의 미래를 암시하는 묘맥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끝으로 서투른 인사치레 한마디를 처음으로 챙깁니다. 글항아리의 이은혜씨가 오랜 세월 좋은 인연을 맺어 늘 군말 없이 책을 출간해주었습니다. 이 합본-증간본의 원고도 이 편집장의 관심과 호의 속에서 새 옷을 입고 외출할 수 있었으니, 각별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밀양의 동암東庵에서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