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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60주기 추모심포지엄

이정식 교수 주제발표문 리뷰

                                                                                    발제자 : 상인

 

목차

1. 이정식 교수 프로필

2. 발표문 여운형의 이상과 선택요약

3. 주요 저서 한국공산주의운동사에 대한 평가

4. 발제자 소견

 

이정식 교수에 대하여

 

1. 서대숙과 함께 한국공산주의운동 연구 제1세대 대표적 연구자

1세대 (식민지·해방 직후~1960년대)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해방 직후 남북 분단·한국전쟁 시기까지의 공산주의운동을 주로 다룬 세대로 조직사·운동사의 기술이 중심이고, 이론화보다는 사실의 기록·정리형 연구가 많음.

2. 연보 및 저서

- 1931년 평남 안주에서 출생하여

- 1933년 만주로 이주하였다가 1948년 북한으로 귀국, 서울로 피난

- 6 25전쟁 중 미군장교들의 도움으로 미국에 유학.

- 1954년 캘리포니아대 정치학과에 입학, 졸업한 뒤 버클리대 박사.

- 1963한국의 민족주의운동사발표.

- 1974년 스칼라피노 교수와 함께 쓴 한국공산주의운동사(1973)로 미국 정치학회 우드로 윌슨 파운데이션 상 수상

- 이후 펜실베니아대, 연세대, 경희대 교수

- 2012년 경암학술상, 2018년 인촌상 수상

- 2021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영면

- 저서 : 한국공산주의의 기원(1959), 만주에서의 혁명적 투쟁(1983),

구한말의 독립개혁투사 서재필(2003)

- 이론적 주된 관심은 한국 공산주의 운동과 식민지 민족해방운동, 국외 한인공산주의자의 활동과 코민테른소련적 영향 등의 규명이었음

 

이정식 교수 발표문 요약

 

1. 매력적인 인물 여운형

여운형 신문 조서를 읽은 후부터 꾸준히 관심(1. 참조)

- 현대민족사 주요인물 : 여운형 = 단순함(비교적) : 복잡함

주요인물 : 이승만, 이동휘, 김구, 이상재, 박헌영, 김일성

. 한국의 문화와 여운형의 평가

대화문화가 깃들지 못하는 자기만이 옳다는 독선주의

- 세계화한 사람으로서의 몽양

2. 민족주의자로서의 여운형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했지만 폭력에 의한 혁명과 변증법적 유물론 배척

기독교 배경으로 인한 유물론 배척

자유와 평등을 이상으로 삼았기에 공산당 독재 거부, 공산주의자 될 수 없었음

공산주의자라고 지적 받을 정도로 공산주의자와 가까웠던 이유

· 반제국주의 사상

· 독립에 대한 집념

 

3. 여운형의 반제국주의

- 신학 공부를 위해 중국 유학길에 나선 몽양, 일본제국주의에 분노하는 중국 학생층을 봄

국제공산당이 임정에 이백만 루블 원조 약속, 그 중 60만 루블을 이동휘, 김립 등이 받아옴

국제공산당이 약소민족독립 지원 실감, 고려공산당에 가입

볼셰비키 정권이 중국국민당 원조, 중국 공산당도 지원하고 국공합작 추진

1926년 중국국민당 제2차대회에서 호지명, 여운형, 모택동이 연설. 피압박민족간 연대하고 제국주의 타도 위한 공동투쟁 선언.

소련공산당, 국제공산당, 중국공산당, 중국국민당, 조선공산당은 제국주의에서 해방 위한 혁명세력으로 보았음. 한국에서도 중국처럼 좌, 우익이 합심하여 독립 위한 노력 필요로 봄

 

4. 공산당과의 결별

. 박헌영과 여운형의 관계

1920년대 초기 상하이 시절부터 아주 친숙한 혁명동지

1946년 공산당이 인민당, 신민당을 흡수하여 남로당 창설하는 3당 합당의 주창자 역할도 맡아 협조적 관계

박헌영이 평양 방문 후 박헌영 자신이 몽양에게 제의하여 몽양이 시작한 좌우합작운동을 반대하자 양자 간 증오 심화

- 3당 합당 과정에서 보여준 박헌영의 음모와 몽양 농락 등의 사건으로 두 사람 결별

 

5. 소련에 대한 의구심의 대두

. 김일성의 질책

19469월 평양 방문

- 김일성을 통해 박헌영의 횡포가 소련군정의 명령임을 간접적으로 알게됨

- 김일성은 남로당 수립에 대한 실패를 간접적이지만 심각하게 몽양 비판

- 삼당합당을 완수하겠다고 소련군정 로마넨코 소장과 김일성에게 약속하고 돌아옴

 

6. 스탈린의 신전술

- 스탈린은 세계무대에서 미국과 대치, 남한 미 군정에 대해 강경책 지시

- 3당 합당 과정에서 보인 소련 군정의 태도는 1920년대 몽양이 겪은 소련공산당이 아님.

 

7. 좌우합작에 대한 집념

- 평양 방문시 보인 3당 합당에 대한 태도는 감금을 모면하려는 책략으로 보임

- 3당 합당에 반대하는 부류로 사회노동당 결성. 남로당과의 합당 주장

- 사회노동당 실패 후 인민당 소생시키고, 좌우합작 강력히 추진

- 3당 합당에 동의해달라는 김원봉, 허헌, 박헌영이 좌익정당 합당을 추진하며 동시에 좌우 합작운동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농담쪼의 제안도 찬성하며 그럴 경우 좌익정당의 합당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행동하였다고 할 정도로 강한 집념이 있었음.

 

8. 여운형의 시국관, 1947

여운형은 공산당과 적대적이었으나 민주주의민족전선 의장단에 참가

- 1947, 의장단 회의(참석자 : 정노식, 허헌, 김원봉, 홍증식, 이기석)에서 미소 공위 재개는 단시간 내는 어려울 것이므로 좌우합작운동의 사명은 중대하며 미군정이 실시되는 동안 그들과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함

 

9. 여운형의 선택 : 근로인민당

- 19474월 남로당 부위원장 이기석 방문시 미소공위 실패 경우 조선문제 해결이 어려워지고 미소와 또는 남북간 전쟁 발발 가능하고 3차 대전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측

- 동년 5월 근로인민당 결성, 미 군정청과 투쟁하는 남로당과 달리 협력하는 당을 만들었다고 했다 함. 그의 약점인 친공산주의 극복을 보여줌

 

10. 여운형의 최후의 선택과 죽음

남조선 과도정부가 19472월 수립되었으나 미 군정청의 의도와 달리 극우 세력이 요직을 장악해버리게 되자 수습책으로 중간좌파 지도자인 몽양에게 중요 자리(실권있는 자리인 민정장관)를 맡기려 함

- 1947719일 미 군정 2인자 E.A. Johnson의 사가로 초청받아 가는 도중 피살됨

 

11. 여운형의 사상형성

인생의 경험을 통해 사상을 정립한 인물

동학을 따른 조부, 부친의 과격한 계급 사상 배척, 부모 상 후 노비 해방

조국의 자유를 위한 제국주의 반대

제국주의 반대하던 소련 선호, 공산당들과 연대

해방 후, 다른 형태의 소련, 공산당을 조우

상해에서 체포 전 마닐라 강연에서 동남아를 강점한 백인국가를 맹비난하였으나 강연 5년 후 미국이 필리핀 탈식민화 개시하자 미국에 대한 인식 바꿈

 

12. 여운형의 이상

서양에서 1960년대 후반에 논의되기 시작한 긍정적 평화론, 적극적 평화론을 1919년 제국호텔 기자회견 연설(2. 참조)에서 이미 설파하였고 여기에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음

어떠한 틀에 맞추려는 것은 헛된 일로 판단됨

융화의 길을 따르다가 희생된 애국자

 

한국공산주의운동사에 대한 평가

 

1. 냉전적(미국중심적) 관점에서의 해석 가능성

일부 평론자들은 스칼라피노·이정식의 공동저작이 1970년대 미국 학계와 재단(포드·록펠러 등)의 지원 속에서 나왔고, 따라서 냉전적 지식 조건(미국의 관점)이 연구에 일정한 틀을 제공했다고 지적하며 결과적으로 냉전적 설명에 치우친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 있음

2. 파벌·엘리트 중심 서술(권력투쟁 중심) 하층·대중의 사회사(底層)를 충분히 살피지 못함

해방기와 냉전 초기에 일어난 여러 운동들을 기술할 때, 지도층·파벌의 권력투쟁 서사가 두드러지는 반면 노동·농민·대중운동의 자발적 역량이나 지역적·사회적 기반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파벌·숙청해석이 지나치게 우위에 있다는 비판이 있음

3. 국제정세(특히 스탈린 사후 변화, 중소분쟁 등)와의 연계 분석 부족

북한 내부 권력 변화·이념 형성과정을 설명할 때, 1950~60년대 이후 소련·중국 내 변화(: 개인숭배·중소분쟁 등)가 북한의 정책·이념 변화에 미친 영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권력집중을 주로 국내 정치적 요인(파벌투쟁)으로만 설명하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있음

4. 사료·자료선택과 서술의 문제 일부에서는 자료 편중지적

저자들이 이용한 자료(국가·조직 문건, 지도자 진술, 엘리트 간 기록 등)에 대한 의존 때문에 어떤 목소리들이 배제되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됨. 또한 이정식 교수 개인의 회고(자서전)나 특정 1차 자료 해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관성 문제를 지적하는 서평도 있음

5. 연구의 역사적·방법론적 가치와 한계는 동시에 존재

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이정식 교수의 연구가 방대한 1차 자료 정리와 체계적 서술로서 한국 공산주의 연구의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 “기념비적 저작이자 동시에 냉전 지식의 산물로서 읽어야 한다는 균형적 견해가 학계에 널리 존재함

 

발제자 소견

 

1. 犧牲羊인가 力行人인가, 愛國者인가 偉人인가

- 이정식 교수의 여운형에 대한 평가는 희생된 애국자로 봄

이런 평가는 인간의 행위나 역사를 암암리에 구조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생각됨

어떤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해결책을 강구하여 이를 힘써 실천하는 무실역행의 위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됨

희생양, 애국자를 뛰어 넘는 위인

2. 수경행권의 표본

- 몽양의 경 : 생존의 희락, 희망과 자유와 평등의 존귀가 있는 사회 건설

- 몽양의 권 : 수경 성취 수단으로 취한 유연함이 빚은 다양한 자세와 행동

 

 

1) 여운형 신문조서 주요 문답(질의-응답)

 

- : 그대는 상하이에서 어떤 일을 했는가?

: 나는 조선의 독립을 위한 준비사업을 하였소. 다만 폭력이나 테러가 아닌, 민중의 계몽과 국제적 연대를 통한 독립을 지향했소.

- : 중국 국민당(國民黨)과 어떤 연계를 가졌는가?

: 손문(孫文) 선생의 삼민주의에 공감하여 교류한 적이 있으나, 나는 조선인의 독자적 노선을 지키고자 했소.

- : 사회주의자들과 접촉이 있었는가?

: 있었소. 그러나 나는 그들의 사상 전체를 따르지 않았고, 사회적 평등과 경제 정의의 취지에는 공감했소.

- : 조선의 정치적 장래를 어떻게 보는가?

: 조선은 장차 스스로의 정부를 가져야 하오. 다만 급격한 독립보다, 민중의 준비와 국제정세의 변화를 고려한 점진적 자치가 바람직하오.

- : 일본 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일본의 근대적 발전은 인정하나, 타민족의 자유를 억압함은 정의에 어긋나오. 나는 일본이 진정한 문명국이 되려면 조선의 자치를 허용해야 한다고 믿소.

- : 당신의 신념은 무엇인가?

: 나는 기독교와 동양의 도() 사상에서 공통된 인류애를 보았소. 정치의 목적은 백성의 복지이며, 이는 도덕의 연장이라 믿소.

 

2) 여운형 도쿄 제국호텔 기자회견 연설(1919.11.27.) 요지

 

내가 이번에 온 목적은 일본 당국자와 그 밖의 식자(識者)들을 만나 조선 독립운동의 진의를 말하고 일본 당국의 의견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금 각원(閣員)들과 식자 제군들과 간격 없이 의견을 교환하게 된 것은 유쾌하고 감사한 일이다. 나에게는 독립운동이 평생의 사업이다. 구주전란이 일어났을때 나와 우리 조선이 독립국가로 대전에 참가치 못하고 동양 한 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우두커니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이 심히 유감스러웠다. 그러나 우리 한민족의 장래가 신세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시기가 반드시 오리라고 자신했다. 그러므로 나는 표연(飄然)히 고국을 떠나 상해에서 나그네로 있었다.

 

작년 191811월에 대전이 끝나고 상해의 각 사원에는 평화의 종소리가 울리었다. 우리는 신의 사명이 머리 위에 내린듯하였다. 그리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다. 먼저 동지 김규식을 파리에 보내고 31일에는 내지(內地)에서 독립운동이 돌발하여 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 곧 대한민족이 전부 각성하였다. 주린 자는 먹을 것을 찾고, 목마른 자는 마실 것을 찾는 것은 자기의 생존을 위한 인간 자연의 원리이다.

 

이것을 막을 자가 있겠는가! 일본인에게 생존권이 있다면 우리 한민족에게는 홀로 생존권이 없을 것인가! 일본인에게 생존권이 있다는 것은 한인이 긍정하는 바이요, 한인이 민족적 자각으로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는 것은 신이 허락하는 바이다.

 

일본 정부는 이것을 방해할 무슨 권리가 있는가. 이제 세계는 약소민족 해방, 부인 해방, 노동자 해방 등 세계 개조를 부르짖고 있다. 이것은 일본을 포함한 세계적 운동이다.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의 대세요, 신의 뜻이요. 한민족의 각성이다. 새벽에 어느 집에서 닭이 울면 이웃집 닭이 따라 우는 것은, 다른 닭이 운다고 우는 것이 아니고 때가 와서 우는 것이다. 때가 와서 생존권이 양심적으로 발작된 것이 조선의 독립운동이다. 결코 민족자결주의에 도취한 것이 아니다. 신은 오죽 평화와 행복을 우리에게 주려 한다. 과거의 약탈, 살육을 중지하고 세계를 개조하는 것이 신의 뜻이다. 세계를 개척하고 개조로 달려나가 평화적 천지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명이다. 우리의 선조는 칼과 총으로 서로 죽였으나 이후로는 서로 붙들고 돕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은 세계의 장벽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때에 일본이 자유를 부르짖는 한인에게 순전히 자기 이익만을 가지고 한국 합병의 필요를 말했다.

 

첫째, '일본은 자기방위를 위하여 조선을 합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 차제(此際)에 무너진 이상 그 이유가 성립되지 않는다. 조선이 독립한 후라야 동양이 참으로 단결할 수 있다. 실상 일본의 의도는 이익을 위했던 것이었을 뿐이다.

 

둘째, '조선은 독립을 유지할 실력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병력이 없다. 그러나 이제 한민족은 깨었다. 열화 같은 애국심이 이제 폭발하였다. 붉은 피와 생명으로써 조국의 독립에 이바지하려는 것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면 조선에는 적이 없다. 서쪽 이웃인 중화민국은 확실히 조선과 친선할 것이다.

 

일본이 솔선하여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는 날이면 조선은 마땅히 일본과 친선할 것이다. 우리의 건설국가는 인민이 주인이 되어 인민을 다스리는 국가일 것이다. 이 민주공화국은 대한민족의 절대적 요구요, 세계 대세의 요구다.

 

평화란 것은 형식적 단결로는 성취하지 못한다. 이제 일본이 아무리 첩첩이구로 일중친선을 말하지만, 무슨 유익이 있는가. 오직 정신적 단결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동양인이 이런 경우에 서로 반목하는 것이 복된 일인가? 조선 독립문제가 해결되면 중국 문제도 용이하게 해결될 것이다. 일찍이 조선 독립을 위하여 일청전쟁과 일로전쟁을 했다고 하는 일본이 그때의 성명을 무시하고 스스로 약속을 어겼으니, ',' 두 민족이 일본에 대해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 독립은 일본과 분리하는 듯하나 원한을 버리고 동일한 보조를 취하여 함께 나가고자 하는 것이니 진정한 합일(合一)이요, 동양 평화를 확보함이며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제일의 기초이다. 우리는 꼭 전쟁을 하여야 평화를 얻을 수 있는가? 싸우지 않고는 인류가 누릴 자유와 평화를 못 얻을 것인가?

 

일본 인사들은 깊이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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