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3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IMG_0623.jpeg


‘존재론적 겸허’ (k 선생님)


이번 속속의 식탁은 ‘명란 오차즈케’라는 일본 가정식이었습니다. 못난 건망증으로 인해 사진을 담지는 못하였습니다. (오)차즈케[(お)茶漬け]는 밥에 차나 맑은 국물을 부어 먹는 음식을 뜻한다고 하는데 식사조 덕에 새로운 경험에 동반된 ‘작은 기쁨’을 맛봅니다. 식사조와 더불어 차즈케의 찻물을 내려 준 여일과 식사조의 분주함 속에 차분함[動中靜]을 사진으로 담아 보낸 준 는길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식사가 ‘작은 기쁨’이 되기 위해서는 식사라는 행위가 타자를 죽이고 잘게 쪼개고 으깨서 내 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어야 합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역사 속의 인물이나 사건을 논할 때도 ’과거가 없으면 현재(‘나’)도 없다‘는 사실을 쉬 잊곤 합니다. 인물의 인품과 사건의 공과를 떠나서 말입니다. 이런 정서의 소외는 삶을 유지하긴 위한 ‘비용의 최소화’와 엮여 자연스레 이루어집니다. ‘존재론적 겸허’(k 선생님)는 ‘타자가 없다면 자신도 없다’는 잊혀진 정서를 되살리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인연(因緣)’에 대한 존재론적 감사함과 미안함이 타자에 대한 ‘공대의 정신’으로 이어져 정신이 자라는 뒷배가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