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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회 속속 복습 문장 모음

 

1. 몽양과 부끄러움

1.1. 연이정

- 이광수, 윤치호는 조선을 부끄러워 했다.

- 민중들은 이승만에 대한 (이상한)부끄러움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몽양 여운영과 민세 안재홍 같은 훌륭한 분들을 기억하지 못한것에,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누구를 기억하지 않는(지우는) 것도 대단한 정치라고 말씀하시며, 공부하는 사람은 누락된 사람을 기억함으로써, 재배치하고 복원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지혜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선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이번 몽양의 공부는 이 지혜의 길을 파악하는 것이 공부의 취지라고 말씀하셨다. 기억해야할 역사를 복원하여 기억하고, 그 정신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자신의 기질, 관심, 처한여건에 따라 그 부끄러움을 느끼는 부분은 다르다.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사람이 있고, 상황을 견디지 못해 변절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최소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는 내가 되도록 애써야겠습니다.

1.2. 지린

이제 몽양 공부를 정리해야 될 시간이라고 하시며, 부끄러움에 대해서 언급하셨다

"이광수와 최남선은 조선이 부끄러웠다. 민중들은 이승만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었다우리가 여운형 선생에게 부끄러움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어서, 회고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정치이며, 누구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한 정치라고 하시며, 기억에서 누락된 사람을 재배치시키면서 복원시키는 공부에 대해서도 덧붙이셨다. 나는 알게모르게 몽양 삶의 기반이자 힘이 되어주었을 그의 옛집을 떠올렸다. 옛집 한쪽에는 재실(齋室)이 있고, 바깥채에는 서고가 있었다. 재실 현판에는 "자손만대로 이어질 여씨 가문 후손들은 조상의 높은 뜻을 받들어 이 거룩한 자리를 튼튼히 지키며 떠나지 말기를 당부하노라"라는 글귀가 있었다. 다시 아래, 이기형이 쓴 평전에 기록된 문장을 읽으며 그의 옛집을 다시 떠올려보고, 그 장소의 당부와, 한평생 변절하지 않았던 심지와 평온을 헤아려보며, 몽양을 추모(追慕)한다.

뒷산 능선에는 몽양의 9대조 할아버지부터의 봉분이 덩실하니 줄지어 있다. 그들 묫자리에 서면 묘터와 집터로서는 과연 좋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 들도록 나뭇잎 새로 한강이 희뜩희뜩 내다보인다. 양반이요 묵객이었던 몽양의 11대조 할아버지가 이 묘꼴에 자리잡은 연유며 명당자리에 흡족해 마지않았을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기에 몽양의 옛집 한쪽에 영회암(永懷庵)이라는 재실(齋室)의 현판에는 "자손만대로 이어질 여씨 가문 후손들은 조상의 높은 뜻을 받들어 이 거룩한 자리를 튼튼히 지키며 떠나지 말기를 당부하노라"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몽양의 족질(族姪) 여학구(呂學九)씨가 일러주었다. 몽양의 옛집, 즉 이조시대 기호지방의 양반집 구조가 궁금해서 그의 육촌동생 여운혁(呂運赫)옹에게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일러준다. "안채 바깥채 모두 기억자형으로 흙돌담 울타리가 둘러진 안채는 기와, 비깥채는 초가였습니다. 안채는 안방· 윗방· 대청· 건넌방이 있었고, 안방 옆에 있던 부엌· 마루도 기역자형이었습니다. 바깥채는 대문 옆에 방 ·마루· 사랑방· 서고가 있었지요. 뒤뜰엔 방앗간과 장독대가, 반대쪽에는 변소가 있었습니다. 담장 밑에는 길다란 화단이 펼쳐져 있었고, 바깥뜰에는 마당과 변소가 있었습니다." (26)


2. 몽양, 역사와 과거에 대한 이해

2.1. 임ㅁ애

어떤 인물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이것은 저 개인적인 삶 속에서도 오래된 질문이지만 감히 묻기도 두려운 문제입니다. 선생님은 당시 독립운동가나 지식인들이 보여준 투쟁이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지적하시면서, 다시 이 오래된 물음을 묻게 하셨습니다일제에 대한 저항은 비교적 많이 알려진 무장투쟁이나 외교적 투쟁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인간사인 만큼 그 시대적 맥락 속에 여러 다양한 방식들이 있었다는 것, 오히려 당연한 그 상황들이 그제야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은 대표적인 정신적 투쟁의 인물로 '상고사' 연구에 매진했던 민세 안재홍 선생과,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이라는 민족주의적 사관으로 식민사관과 싸우려 했던 최남선을 소환하셨습니다.

그리고 최남선과 함께 이광수나 윤치호의 친일 문제를 소환하셨습니다. “개인의 여건과 거주지에 따라 달랐던 그 시대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만, 필수적인 과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 근대화의 비용을 지불하기를 망설였는지도 모릅니다. 최남선, 윤치호, 이광수 같은 천재들의 변절 문제를 단순한 이념적 잣대로 단죄해 버리는, 비용 대비 간편한 규정이 가져온 것이 지금의 정치적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재능의 주체화과정이나 개인의 절망감('공부를 위해서', '한국 사회에 대한 절망' ) 같은 복합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은 물론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삶의 양식을 결정하는 시대적·지리적 여건과 심지어 친일마저도 '일반화된 일상'이었을 수 있다는 보편적인 '인간사'의 시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바로 '인문학적 시각'이었습니다. 이러한 인문학적 시각의 부재, 사람의 삶을 제대로 보고 이어갈 실력의 부재가, 지금의 정치를 과거의 반복이자 비극의 재생산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선을 파악하는 지혜의 길을 끊어버린 채, “현장의 음성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의 비용을 거부한 채, 그저 단죄냐 용서냐를 간편하게 규정해 버렸던 미봉된 역사를 마주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비용은 과연 그렇게 밀어두어도 될 비용이었을까. “객관적인 일의 성패와 상관이 없이 나름의 실력이나 인문주의적인 가치나 미래적인 가치에 투신하는, 인간의 길이 우선적인 것이 되지 못한 그 맥락은 무엇이었을까.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주체와 그 삶의 양식에 관한 인식은 어떻게 다시 조명될 수 있을까요.

2.2. 여일

1.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이 지혜가 된다."(k) 우리는 과거의 높은 정신을 만나고 이어감으로써 풍요로운 현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해방 후, 몽양은 수차례의 테러에도 좌우합작의 꿈을 놓지 않는다. 죽음을 예지한 듯, "혁명가는 집에서 죽지 않고 길에서 죽는다"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리에서 목숨을 잃고 만다. 수십 만명이 거리에 나와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혁명의 상징이라도 되듯 카이젤 수염이 잘 어울리던 몽양은 19193.1운동으로 신경이 곤두 선 일본 장성들 앞에서 일장연설로 그 기개와 호연지기를 펼친 모습을 상상하면 그리 통쾌할 수가 없었다. 몽양의 숙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후손은 부끄러울 따름이다.


3. 몸의 공부

3.1. 여일

"공부는, 몸에서 나오는 이치에 주목해야 한다. 뭐든지 오래 반복하면 이치가 생기고 길이 보인다. 반복만 하면 낭패다. 바보가 된다. 어떤 것이든 해보면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k) 사실 공부를 안하면 물어볼 것도 없지만, 공부를 하다보면 물음이 자연히 생긴다. 공부는 '나보다 더 큰나'를 만나고자 하는 자기탐색이기 때문이다.

3.2. 조ㅇ남

다른 게 없습니다. 도사란 자기 몸의 이치를 아는 사람인 것입니다. 반복을 쌓으면 실력이 늘고, 그 곳에서 이치가 생겨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저는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나의 건강에 대한 방식과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복기법을 오래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그냥 손으로 내 몸을 오래, 계속 만지는 것입니다. 모든 활동에는 (남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때 ) 임계치가 생겨서, 중심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내가 왜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 보세요. 그리고 내가 왜 할 수 없는지를 물으세요. 오래, 열심히 계속 물어보면 스스로 알아가게 됩니다.

3.3. 단빈

선생님께서는 오랫동안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미 몸에 대한 연구가 선결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복기는 손으로 몸을 만지는 것으로, 오래도록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실력이 늘고 길이 보인다고도 하셨습니다. 무엇이든 꾸준히 하다 보면 그 안에 반드시 이치가 생기며, 남이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실력을 쌓게 된다고 덧붙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임계치에 이르고 이것은 패턴을 만들어낸다고 몇 차례의 속속에 걸쳐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되지 않는가', 낙심하는 저에게 그 말씀은 반성하게 하는 메시지이고 동시에 세워 일으키는 말씀이 되기도 합니다. 꾸준히 해나갈 때 '걸리는 것이 있고 그것을 잡아채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조금씩 와닿습니다. 걸리는 지점을 만나지 못함은 꾸준함의 부족입니다. 열심히, 꾸준함으로 걸리는 지점까지 나아가겠습니다.

3.4. 숙비

선생님께서는 그냥 막하지 말고, 내가 왜 이걸 할 수 있는지를 물어봐야 해요. 내가 못하면 못하는 이유가 있고 잘하면 잘하는 이유가 있어요.” 하셨다이 말씀은 알기-되기-돕기라는 호흡이 긴 공부/생활을 지날 때 자기 몸의 길을 묻는 질문이 무엇인지를 알려 온다. 수행의 맥락(하체운동, 복기법 등)에서 주신 말씀이지만, 보편 정신을 얻은 말은 공부/생활의 자리 전방위로 뻗어나간다. ‘되기라는 제 몸을 통과한 이론이 존재론적 함의를 띄고 이웃으로 뻗어 나갈 때, 물어 알게 된 그 몸의 길은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온다. ‘賢問開門’(현명한 질문이 문을 연다)의 이치가 안(內而)으로도 흐른다.

 

4. 유ㅅ진

민아씨의 자기소개에 응하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중생의 마음은 머물러 있어 마모가 심하다'는 말씀이 있었다. 나는 한 가지 일에 집착하고 번뇌하며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멈추어 있는 자리에서 슬금하게 나와 이동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나를 바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불안과 거부감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나보다 앞서 경험한 동학들이 곁에 있어 용기와 의욕이 생긴다.

 

5. 김ㅅ연

이번 수업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생활하면서 '스스로를 존경심으로 대한다'는 것에 대한 선생님의 가르침이 계속 떠올랐다. 지난 2년간은 영원한 자기 소개시간에 동학들이 자신을 일상을 돌아보고 '더 큰 나'가 되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모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는 궁극적 이유는 많은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은 스스로를 존경할 수 있기 위해서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은 반드시 자기가 자신을 업신여긴 이후에야 다른 이들이 업신여긴다고 했다. 나는 사춘기 이후 얼마나 나를 업신여기고 비하하고 한심해하면서 살아왔던가. 지금 돌이켜보니 그런 내 자신이 싫어 책을 읽으면 조금이나마 자신을 덜 혐오할 수 있어 책읽기에 집착을 했었던 것 같다. 생활을 바꾸지 않고 책만 읽는다고 나이가 들면서 나를 잘 바꿔나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과 동학들이 절차탁마하며 공부해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왜 장숙에 속하려 하는지 점점 뚜렷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이 공부를 통해 나보다 더 큰 훌륭한 선생님과 동학들 옆에 서서 나를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분주하고 힘든 일이 동시에 생겨도 침착하기 위해 애쓰고, 고통에도 불구하고 명랑하기 위해 애쓰고, 맺히지 않기 위해 애쓰고, 품위있는 언행과 몸가짐을 추앙하는 크고 작은 모든 애씀을 통해 나보다 더 큰 나가 되어 나 자신을 존경심으로 대할 수 있는 '김수연씨'가 되어보자!!!

 

6. 독하

선생님께서 승조(僧肇) 조론(肇論)에 나오는 아래 두 문장을 말씀해 주셨다.

如來因群情之所滯則方言以辯惑.

- 여래께서 중생의 마음이 머무르는 바로 인한즉 방편의 말씀으로 미혹함을 밝히셨다.

菩薩處計常之中而演非常之敎.

- 보살은 상주불변(常住不變)한다고 헤아리는 가운데 처해 무상의 가르침을 펼친다.

 

7. 상호연관성, 불이를 향해서

7.1. 아무

한 물간 검객이지만 매일 칼은 간다. 他雖然是一個落魂的劍客但是他的生活很有規律

생활은 규칙적이다 . 모든 이치는 형식이라는 길을 통해서 흐르게 되어 있다. 이치는 간단하다. 불이다.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원형적인 일체감, 그냥 상호연관성이다. 우주와 나와 너 삼자 전체가 하나다. 일상적인 생활을 통한 선정의 습관을 이용해서 잊어버린 메시지 혹은 에너지의 그런 원천인 상호 연관성을 찾는 훈련을 조금씩 하면 좋겠다.

7.2. 유재

선생님께서 선정과 집중의 훈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주셨다. “틈틈이, 가만히 자기를 죽이고 사물화되는 데까지 나아가 보는 겁니다. ‘인간만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상상해보고, 개현시켜보는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문명화되고 똑똑해짐으로써 멀어진 무한한 기별의 소산들을 되찾아오는 훈련입니다. 1분이든 10초든 자기를 묻어버리는겁니다. [...] 가만히 선정에 들어서 나의 존재란 것이 별것이 아니지만 별것임을 알 수 있는 그런 상호연관성을 찾아가는 것.”

7.3. 는길

창의적 퇴행은 미래적 직관과 이어져 있습니다라는 암연이장의 문장을 암기했습니다. 인류는 어떤 것과 결별하고 분기하면서 문명화를 이루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창의적 퇴행현재의 모습과 무관한 무한한 가능성의 역사에 젖줄을 대는 것이며, “사람과 생명의 역사가 퇴적되어서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의 존재에 밀려오는 힘 혹은 가능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불가피 탈락되었지만 인류의 무의식에 보존되어 있는 것들을 통합하는 작업은 새로운 인간학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나에 대하여 만족할 수 없기에 공부를 합니다. 때로 통과 의례처럼 주어지는 공부의 장벽을 마주합니다. 막힌 지점에 서게 될 때, 시시한 에고가 아니라 인류의 지혜가 손을 내미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주천, 적경, 낭독, 경행 등의 일상적인 집중의 실천을 통하여, 무한한 가능성의 역사에 젖줄을 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