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회 속속 복습 문장 모음
1. 조심히
1.1. 조ㅇ남
주서에 이르기를 “깊은 못가에 서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무서워하라”라고 했습니다. 지식은 “모른다. 모른다.”가 출발이고, 생활은 “조심조심”이 출발입니다. 매사에 洞洞屬屬-동동촉촉 (마음을 깊이 가다듬고(洞洞) 정성을 다해 조심하고 삼가는(屬屬) 태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기운이 가라앉아 힘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중심이 낮아져서 힘이 있고, 안정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태의 사람으로 제갈량과 스콧 니어링(조화로운 삶의 저자)을 들 수 있습니다. 제갈량은 대부분 가만히 평안하게 지내다 일이 주어졌을 때는 전광석화처럼 행동했습니다. 스콧 니어링은 주변을 세심하게 정리정돈을 하고, 평소에는 매우 과묵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질문을 하거나 대화를 시작하면 매우 열정적이고 논리적으로 답변을 이어가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상호 리드미컬한 순환관계를 생각하면서 생활을 배치해 보도록 해 보세요.
1.2. 유ㅅ진
如臨深淵 如履薄氷 여임심연 여리박빙
"깊은 못가에 서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무서워하라"라고 하는 것은 일을 신중히 해야 함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낭영 시간에 배운 것으로 중심을 낮추고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의 자세로 조심하고 삼가하며 조금씩 실수를 줄여나가야겠다.
2. 에고를 넘어선, 자기에 대한 신뢰
2.1. 숙비랑
암연이장 40편을 공부하며 선생님께서는 “임계치를 넘어가는 것은 에고가 아니고 무의식 또는 나 보다 큰 나이기 때문에 에고는 애를 쓰면 안돼고 반복할 뿐이에요“하셨다.
하마터면 애쓰는 에고를 독려할 뻔 하였지만 보충설명을 해주신 덕분에 “반복하는 몸”과 有心을 잘 하는데에서 오는 無心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되었다.
2.2. 임ㅁ애
사람이 “무언가를 잘 하면 그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하셨다. 문제는 “묻지 않는”데 있고 또 “자신을 믿지 않는”데 있다고 알려주셨다. 우선은 물어야 한다. 내가 “못하면 왜 못하는지를, 잘 하면 왜 잘하는지를”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묻는다‘는 선생님의 처방이 ‘되기’의 과정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했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 하나 풀어가며 미세하게 변침해 갈 때 임계와 경계를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중에 자신을 믿게 되는 어떤 사건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선생님은 또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에고를 넘어선 어쩌면 문한히 펼쳐져 있는 자아와의 ‘포개짐’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을 ‘자신에 대한 믿음의 문제’라고 말씀 하셨다. 자기를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기는 “함께 키워나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때 ‘함께’라는 말씀이 내게 크게 들렸다. “사람은 혼자가 아니다. 내가 믿어줄 다른 사람이 내게 또 있다”는 말씀에 오래도록 막연히만 생각했던 감각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내가 만나길 원하는 더 큰 나는 하나가 아니었다. 역시 여럿이었다. 그중 “자기를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죽고, 충분히 신뢰하지 못하고 죽고, 마침내 충분히 알지 못하고 죽는”사람이 결코 되고 싶지 않은, 또 하나의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2.3. 아무
‘문지방을 넘어서야 방에 들어가고, 노력의 임계치를 넘어서야 새로운 생활의 패턴을 얻는다.’ 임계치를 넘어가는 주체는 에고가 아니고 무의식이나 혹은 더 큰 나라는 점이 상당히 중요하다. (제 정리로는)진인사하여 이른 의식(에고)이 없는 지경이라 함은 불이를 말한다. 이는 ‘더 큰 나’로 하나의 생명장이다. 그 모습은 적경(고요)이며 불인하여 모두가 포용된다. 그런 마음으로 생활로 돌아와, 그 고요로 사린과 일체적 관계에 든다.
2.4. 김ㅅ연
1월 3일 강연에서 선생님께서는 학인들에게 운동 즉, 몸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때 선생님께서는 '나는 허리가 없기때문에 허리통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그간 '나에게 없는 것들'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으셨는데 그중 저에게 경외감을 자아낸 것들은 바로 '저항', '화'의 완벽한 부재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랜 경행과 단전호흡으로 허리와 허리 통증이 없다는 것에 대해 소개해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듣고 거의 각성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번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정에서 회사에서 공부자리에서 한 사람의 정신이 성장하고 현명해지기 위해 없어야할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는 없어야할 것이 없애야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좋은 직장을 다니고 딸도 서울대를 간 오랜 친구에 대한 견디기 힘든 시샘, 참아도 참아도 터져나오는 24시간 상주하는 술에 대한 갈망, 첫째 아들에 대한 탐탁치 않은 마음과 늘 장전된 화. 이것 세 가지 증상들은 나만 알고 있는 나의 급소이며 수치심이고 내가 하는 모든 노력과 공부를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없어져야할 것들'입니다. 이 없어져야할 증상들을 어떤 생활양식과 실천을 통해 현명하게 우회하며 소멸하고 그 에너지와 정력을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방향으로 승화할 수 있을지 정성을 들여 여러가지 실험을 해보아야겠습니다.
2.5. 유재
속속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말, ‘斷捨離’를 책상 앞에 적어 붙여 두었다. “斷이란 쓸데없는 것을 들이지 않는다/끊는다, 즉, 쓸데없는 것이 오면 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捨는 가진 것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離는 헤어진다, 애착을 끊는다는 것이지요. 모두, 자기가 할 일이 분명하기 때문에, 끊고, 버리고, 헤어진다는 것입니다.”
3. 해방전후사의 인물들
3.1. 독하
<속속>에서 정조 사후 백 년을 살핀 것과 민세의 글이 메타화돼 떠오른 것을 적는다.
“선만鮮滿 대륙에 정립鼎立하였던 조선 민족이, 그 국제적 쟁투를 그치고, 침울 불만한 소민국적 생애에 침륜하게 된 이래, 발해 2백년의 역사가 끝나며, 이내 압강鴨江 이남 구구한 천지에 퇴영하게 된 이래, 그들의 정력은 대외발전으로써 굉원한 기백을 드러내지 못하고, 한갓 내면으로 향하여 그 당파와 씨족 간의 충돌을 일삼게 되었었다. 그의 말류末流가 드디어 영속하는 당파와 씨족의 유전적 알력으로 바뀌어, 편파偏頗 악착齷齪한 불신임 · 불관용의 통심할 신경향을 낳게 된 것은, 또한 오인의 심성맹성深省猛省할 바이라 하노라.” (안재홍 수필집, 심화 · 순화 · 정화 中)
부국강병을 위한 군사적 재능이나 기술을 천시하고 권력 투쟁에 몰두한 봉건적 문사의 사회에서 ‘정립(鼎立)의 균형’이 무너지며 ‘공대할 타자’가 사라지게 되면 ‘그들의 정력’은 어디로 귀결될 수 있을까. 달리 말하면, 밖으로 중화의 세계관이 전부인 안목과 대륙 진출은 꿈꿀 수 없는 ‘무력(武力)의 무력(無力)’을 지닌 문약한 문사들이 내부의 정적(政敵)마저 사라지게 됐을 때, 그 고삐 풀린 리비도 에너지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그 향방의 귀결은 권력을 향유하며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 탐관오리의 외길로 수렴되었다. 이것은 지금의 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외부의 타자와 응하기 위한 실력의 부재는 집안의 문을 걸어 닫고 그 내부에서 욕망의 대상을 탐색하는 방향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내부의 정적마저 삼킨 문사들의 정치는 ‘세도(世道)에서 세도(勢道)로’ 향했다. 마치 힘 없는 가부장이 가정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가정 내 폭군이 되듯 말이다. 문약한 문사로서는 세도(勢道)와 쇄국(鎖國)은 나란히 갈 수 밖에 없었고, 종내 외세와 문명의 격차가 벌어지며 침략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3.2. 지린
최재서와 이광수의 문장 몇 개를 낭송하게 하셨다.
나는 그들의 문장을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 순간까지 나는 단지 차라리 일본인이 되자던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뿐이었다.
문장 몇 개를 들었을 뿐인데도, 이 사람들 진심이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놀라움과 함께,
스스로의 진심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문장의 아름다움까지를 느끼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진실을 진실되게 직면하는 실력과, 그것을 문장으로 써낼 수 있는 지력까지를 갖춘 이들인 거다.
더불어 나는 내가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는다는 사실에도 충격이었는데,
소문에 대한 반감의 장벽으로 나는 이들의 문장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하는 사정이 내게 있다는 자각이 분명해졌다.
차마 읽지 못했던 거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답답함과 옹색함을 느꼈다.
*
윤치호에 대해서도 더 들려주셨다.
"이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마음 둘 만한 곳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1915년 가혹한 고문으로 전향선언을 한다.
엄청난 부자였고, 엄청나게 희사했다. 이순신 장군 묘역 일대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려고 할 때 돈을 내서 그 묘역을 샀다.
이 거대한 자금을 운용할 때 일제와 협력을 해야만 했다. 이 사람은 적나라하게 민족을 비판한다.
우리에게 숨어 있는 좋은 텍스트이다." 이어서 들려주시기를 윤치호는 우리는 약자이고,
당시 약자의 유일한 생존방식은 강자에게 호감을 얻는 것이라고 여겼으며
60여년 동안 지속되었던 자신의 일기 속에서 분열된 자아를 봉합하려고 애를 썼다고 하셨다.
어떻게 해야만 살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덧붙이셨다.
윤치호의 이야기에 등장한 이순신 장군 묘소는 현재 아산시 음봉면에 있으며,
윤치호에게 영어 배우기를 권했다는 김옥균의 묘는 아산시 영인면에 있다.
나는 아산시 권곡동에 살고 있으면서 이 두 곳을 다녀올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장군의 묘소는 그 진입로가 쉽게 발견되지 않도록 숨겨져 있어, 처음 그곳에 장군의 주검을 모신 이들의 조심스러워하는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
김옥균의 묘를 향해 난 오르막 길 보행자도로에는, 갑신정변의 주역들의 얼굴을 타일로 구워서 묘를 향하는 이들이 밟고 지나갈 수 있도록 길바닥에 붙여놓았다.
나는 차마 그들을 밟은 수 없어서 되풀이해서 찻길에 내려서야만 했다.
그 길의 형색이 조상의 묘를 이 땅에 지어야만 했던 후손들의 조심스러움과 수모를 헤아려볼 수 있었다.
김옥균의 묘지 건너편에서 나타난 한 여인이 경계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면서 묘지를 향하는 나를 살폈다.
그 여인과 나 말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당신이 나를 경계하기에는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요." 나는 이런 속마음으로 숙연했고, 그 여인은 다시 묘지 너머로 사라졌다.
*
네이버 길찾기를 이용하여 두 묘소 사이의 거리를 검색해보았다.
네이버길찾기 추천 코스에 의하면 두 묘소 사이는 걸어서 1시간 33분 걸리고,
거리는 5.7km이며 총 8,955걸음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한 줄기 역사였고, 가까운 곳이었다.
*
새해 내 정신이 나의 옹졸하면서 못생긴 장벽을 너끈하게 허물어나가,
장히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부정적인 것들 마저 직시하면서 곁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힘을 얻기를 소망한다.
4.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4.1. 단빈
선생님께서는 새 공부 장소인 <숙인재>는 자기를 볼 수 있는 위상인 복층 구조여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숙인재는 방이 여러 개가 있는데, 선생님께서 각각의 특색에 맞게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여러 구획으로 나뉜 숙인재를 원룸과 대비하여 떠올려보면 차이가 뚜렷해집니다. 원룸에서 살아온 단면적인 삶을 자각하게 되며, 숙인재의 구조는 한 곳에 묶이고 매몰되어 있는 것을 트이게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거하는 곳이 바뀌면 몸이 달라지듯, 숙인재에서의 공부로 몸과 마음의 다른 결을 열어가는 공부를 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4.2. 상인
장숙 공부의 특징이 남녀노소가 어울리는 공부라고 하시면서 숙인재의 특징 또한 윗층과 아랫층이, 열의 양과 냉의 음이, 높고 낮은 천정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라 하셨다. "어울림과 어우러짐"이라는 귀절이 떠올랐다.
4.3. 여일
여씨춘추의 필기(必己)편에, '외재적인 사물에는 필연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문장이 흥미를 끈다. 사람은 세속의 본질인 어긋남을 피할 수 없다. 다만, 자기앞가림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필연이라는 말에 꽂혀서 곁가지로 불이와 동시성, 필연성 그리고 개입은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온 숙인들은 어떤 인연이 될 수 있을까.
4.4. 상인
자기소개 중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될 질문을 써두고 답을 구하려 애쓴다고 한 신입숙인. 어디서도 듣거나 본 적 없는 그 말꽃. 참신하기도 했고 자기를 돌보는 정성이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4.5. 여일
"인간에 대한 공부는 풀리지 않는 질문이 계속해서 자기를 이끌어가는 사귐이다. 마침내 그 질문을 이겨내어 사람이 바뀌게 된다"(k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