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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강의에서는 '낮은 중심'에 수반되는 정서를 탐구하기 위한 여러 갈래를 탐색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대체로 심심함을 혼자 있음(aloneness)과 있음과 혼동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심심함은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인 셈이다."

 

심심하다는 기분, 혹은 정서는 인간의 '개입'에 의해 발생합니다.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대상이 상수라면 주체의 상태는 변수입니다. 주체의 변화에 따른 기분은 '마음 알아차리기'와 같은 메타적 인지로, 쓸모는 있으나 지속 가능하고 실천적인 해답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심심함을 비롯한 기분은 관계의 문제이고 개입의 문제로, 곧 자기 책임입니다. 혼자 있음(aloneness)이 외로움(loneliness)과 무관한 사태임에도, 요령 없음, 실력의 부재, 중심의 빈약함으로 혼자 있음은 외로움으로 미끌어집니다. 마음의 중심이 떠있기에 그러한 것으로 '혼자 있음의 창의성(생산성)'을 얻는 실천적 지혜가 필요합니다.

 

 

"학인으로서의 나는 실력을 키우고 마음의 경계를 바꾸고자 '24시간 공부'의 기치에 적절한 여러 방식을 시험하고 있는데, 그 반복적인 형식의 알속은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버릇의 반복이다."

 

진정한 창의성은 있는 것을 없애고 없는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성보다 큰 어떤 존재가 개입해야만 인간은 바뀔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에고보다 더 큰 주체, 무의식, '나 보다 더 큰 나'와의 만남으로 가능합니다. 에고가 물러선 빈 방 혹은 무명의 자리에 소식이 옵니다. 그렇다고 하여 에고를 없애라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비우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의성은 '알면서 모른 체 하기' 와 연관된 영역으로, 그 방향은 정신의 성숙을 향합니다.

 

단보 선생은 '하루의 시작은 잠드는 때'라는 생각을 하시며 마음과 몸을 가다듬고 잠의 세계에 진입하는 실천적인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긴장을 푸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 긴장'의 상태로, '결계를 치듯이', '잠은 새로운 가능성이 태동하는 곳이다'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형식의 만남을 예비하면서 잠자리에 임합니다.

사람의 정신의 가능성을 잘 보이는 곳은 에고를 비우는 곳이므로, 정신적 존재로서 우주 속에 살아가는 자신의 위상에 대한 파악을 위해서, 놀라운 실력을 가진 어른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임해볼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러시아의 과학자 멘델레예프는 화학적 성질이 비슷한 원소들을 하나의 모둠으로 묶어 분류하면서 주기율표를 만들었습니다. 그 표는 잠자는 시간에 주어진 영감으로 채워졌습니다. 예가 보여주듯이 에고가 죽은 비몽사몽의 상태가 갖는 생산성은 위대합니다.

 

 

"비극을 통한 정화와 평정(), 묘하게도 내가 말해온 '인간의 절망'을 거친 다음에서야 찾아오는 '담담하고 여린 슬픔'을 쉽게 연상시킨다. '울음 이후의 정화와 새로운 각오'라고 조금 다르게 재서술해보면, 이것은 적절한 정신분석이 끝난 이후에 생기는, 삶을 새롭게 대면하려는 기분이기도 할 것이다. 가설무대처럼 설치해 놓은 환상(fantasies)을 철거하고, 삶의 실체와 이를 대면하고 있는 주체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가만히 직시하면서 서늘한 현실을 제 육신의 온도로써만 감싸 안아야 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인간만이 절망이다는 화두를 품고서 체득한 인간의 한계가 공부의 출발이 됩니다. 인간이 절망이라는 것의 수용과 더불어 존재 무게의 낮아짐도 체득하며 '잔잔하고 여릿한 슬픔의 감정'을 동반합니다. 이것은 단보 선생의 정서의 기본값으로 존재의 낮은 중심을 갖는 중에 생성된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성공적인 수행을 했을 때 애착과 유사한 정서에서 해방되며 동시에 정신적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깁니다. 인간은 기이한 방식으로 소통을 하는데 이러한 소통은 불이의 형식을 띱니다. 사람의 정신적 행로는 진화와 무관하지 않는데, 이런 것을 맵핑하면서 자기구제의 공부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탐색을 하며 그런 희망은 공부의 양 날개가 됩니다.

 

 

"실력은 낮은 중심을 통해 견고해지고 깊이를 얻을 뿐 아니라, 그 실력이 존재론적으로 감화되어 마음의 경계를 바꾸고 정신적인 성숙의 자리로 이끈다."

 

세속의 실력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의 공부는 존재의 무게, 생활양식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얻으려는 것으로 그 기초로 존재론적 무게를 지녀야 합니다.

'중심 낮추기'는 마음의 경계를 바꾸는 공부의 토대가 됩니다. 인문 대안학교 장숙에서는 명상이나 신독(愼獨), 경행(經行)이나 단중(丹中), 낭독이나 경청(敬聽), 현복지 혹은 연극적 실천 등의 실천을 통해 공부법의 실용적인 토대를 다지며 마음의 중심을 낮추는 공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위 글은 장숙강 57<존재의 낮은 중심에 관하여 : 심심함에서 누림까지> 강의록과 단보 선생의 강의를 바탕으로 제가 이해한 바를 임의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 위 글 “ ” 속의 문장은 강의록에서 인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