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5회
2026년 5월 26일

(아산 맹씨행단에 있는 三相堂)
이번 복습 모임에는 숙인 대ㅎ씨, 여일, 수ㅈ씨, 아무공, 연이정, 아ㄹ씨, 는길이 참석했습니다. 속속의 순서를 따라서, 한문강독-암연이장-공지-영원한 자기소개-복습-중국과 중국어-교재공부의 순으로 진행하며 이해의 빈 곳을 채워갑니다.
자연히 토의할 의제들이 생기곤 하는데 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어요.
속속 중에 배웠던 ‘Learning curve’의 (직선 아닌) ‘우회’를, 되기의 실천으로 향하는 형식화의 과정으로 이해해 보려고 하였던 것. ‘경청과 신뢰’의 관계. 어쩔 수 없이 조건 지어진 베이스캠프에 관한 각자의 입장 등등, 충분히 다루지 못한 의제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서로의 질문(質門)을 통해서 사유가 활성화되니 그런 채로 소득이 생겨납니다.
204회 속속에서 배운 내용과 관련하여, 복습 질문을 만들어 봅니다.
1) 〈열심히 배우지만 그 방향을 형식화하라〉 내용을 형식화 시킨 자신만의 실천 사례가 있다면?
2) 현대 물리학은 모든 사물의 원본적 사태가 ‘운동’임을 밟혀냅니다. 인문학적으로 번역해서 사물의 원본적 사태를 ‘고요’나 ‘완벽한 평정’으로 보지 않고, 병듦이나 불안, 스트레스라는 움직임의 사태로 볼 때 생겨나는 실용성은 무엇입니까?
3) 낭독, 적경, 경행 등을 통해 얻는 ‘차분함*'은 생활을 단정히 하는 훈련이기도 하지만, 초상적인 현상(supernature)으로써 생활을 넘어가는 전망의 00이자 창구로 설명되었습니다.
*'차분하다'(落ち着く),<집중과 영혼>, 45쪽.
4) 자기구제(부분구제)의 공부를 하면서, 그간 구원의 일을 전담해 온 ‘전체 구원'의 종교에 대하여 학인만의 입장이 생성되는 것 같습니다. 이에 참조 혹은 모델이 되는 선생님의 행보는?
5) 대화도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에는 ‘정서’와 같은 수행성이 들어가며, 존재론적 배경과 연관된 다른 돌봄이 요청됩니다. 대화도 사람의 일이라는 관점에서 상대방을 말로 설득할 때 필요한 요건을 생각해 봅시다.
6) ‘알아봐 준다’는 논의에서, 사람뿐 아니라 ‘초상현상(supernature)’도 알아봐 주면 그 지역이 응답한다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알아봐 주는 가라사니로 기억해야 할 실천적 개념은?
7) 공부가 높아지면 ‘형식’은 어떻게 될까요. 공사(公私)의 문제를 장소로 구분했던 서양과 다르게, 동양의 유교는 자신의 행동 혹은 관계를 통해 공사를 구분 짓습니다. 방 안에 혼자 있어도 公이고 愼獨의 장소가 됩니다. 어디에서든 관계를 맺으면, 곧바로 公이 되었던 것이지요. 유교가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는 방식을 통해서, 형식의 미래를 생각해 봅시다.
8) 〈중국과 중국 문화〉 강연에서 정리한 중국어의 특징은?
9) 마오저둥와 저우언라이는 중국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혁명을 완수시켰는데, 둘의 차이나 닮은 점은 무엇입니까. 두 사람을 상호 연결시키는 비밀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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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중에 인용된 말들.
- Heavy is the head that wears the crown.(영국 속담)
- 爲戒(必)於方盛之時 _《近思錄》
-"you can't change people's minds by utterly refuting their arguments. " _Jonathan Haidt
- “If you want to change people's minds, you've got to talk to their elephants.” _Jonathan Haidt
- "Try honestly to see things from the other person's point of view." _Dale Carnegie
- Affective Primacy _Wilhelm Wundt
- 顔は心の肖像画 (얼굴은 마음의 초상화다)
- 目は心の報告書 (눈은 마음의 보고서다)
- 目は口ほどに物を言う (눈은 입만큼 말을 한다)
한문고전강독 시간에 읽은 서간문에는 "故人家萬事, 無論出入內外、巨細本末, 不外一孝字也."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번역하기를, "고로 집안의 모든 일은 들어가고 나오는 것과 안팎과 크고 작은 것과 근본과 말단을 막론하고, ‘효’라는 한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로 하였는데요,
內外를 '남녀'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의 남녀유별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한옥의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작은 담을 쌓고
그 담의 이름을 내외담이었다고 하니, 내외라는 언어의 쓰임을 그렇게 유추해 볼 수 있겠습니다.
* 내외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