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하면서 감성과 감수성에 어떤 장벽을 느낄 때가 있어요. '감성'은 개인의 실천의 결과이며, '지성'은 인류의 실천의 결과라는 설명을 매개삼아, 감성의 문제를 실천의 영역으로 보고 있는 와중이랍니다.
어제 <가이소> 수업에서 ‘감성’과 연관된 설명을 조금 더 들을 수 있었는데, 관심이 닿아 꾹꾹 눌러 필기하였어요.

장숙강의 현ㅅ씨의 어머니/가이소 학인 고금의 마당에서 온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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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기를 토대로 강의 내용을 재구성합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다르게 살려고 할 때 중요한 지남은, 다른 쾌락이 없으면 안 됩니다. 공부는 되게 미세한 삶의 자리에서 돋아 올라오는 다른 쾌락에 대한 관심이기도 합니다. 감성의 새로운 주체화이기도 한데요, 〈누림〉이라는 여성적인 감성의 재주체화를 설명한 적이 있지요.
공부를 하고 조금 다른 여건 속에 살게 되면, 진선미(眞善美) 중에서 어떤 게 나를 향도할까, 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사실 생활가운데는 진(眞)과 선(善)이 많은 것은 아니거든요. 진과 선은 토픽이 많이 안 됩니다.
일상적인 모든 생활은 미(美)의 문제인데, 미(美)를 놓치면 생활이 엉망이 된다는 걸, 알겠습니까. 일상적으로 자기의 생활을 향도하는 중요한 근거로, 미(美)에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어요.”
“詩도 문장의 하나예요. 좋은 문장의 끝에 詩가 있다고 생각해요. 공부는 글로 하는 것이고요. 글 중의 글은 문학입니다. 문학을 읽어야 자기 감성이 좋아져요.
어떤 영화를 보고 되게 좋아할 때가 있는데, 그 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아요. 영화나 문학에 있어서 ‘대체 왜 그것을 좋아하는가’를 설명하는 일은 대단히 애매합니다. 그것을 알아보는 게, 대단히 중요한 감성의 변화라고 보고 있어요. 감성이 변화하면 어떤 것은 영영 안 보게 되고 어떤 것을 찾게 됩니다.
감성을 계속 개발해 가면서 남들이 알지 못하는 지역에 가서 즐기고 누리고 할 수 있거든요. 아름다운 것을 느끼는 감성에 책임이 있어요. 남이 설명을 못 해주는 영역에, 자기 감성과 육체를 다르게 계발함으로써 접근해야 해요. 투박한 감성과 몸으로는 접근 못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