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먼 크르즈나릭, 『내일을 위한 역사』, 조민호 옮김, (주)도서출판 길벗, 2025.
10장 「문명 붕괴를 피하는 방법」
국가와 제국이 위기와 변화에서 살아남은 방법
이 장의 진단으로는 인류는 (지금의 체제를 유지할 경우) 문명 붕괴를 피할 수 없다. 이 도상(道上)에서, 저자는 문명 붕괴를 피하는 데 아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설파하는 데 마지막 장을 할애한다. ‘거대한 단순화’(네이트 하겐스)라는 변형은 피할 수 없지만, 부러짐이 아닌 ‘구부러지는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도 인류의 거의 유일한 자산인 ‘배울 수 있는 능력’에 호소하며 역사적 지혜에 손을 뻗는다. 저자가 찾아낸 역사는 문명 붕괴라는 국면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전수한다. ‘집단 연대’, ‘생명애’, ‘위기 대응’.
(1) 집단 연대의 힘
1375년 아랍의 사상가 이븐 할둔(Ibn Khaldun, 1332-1406)은 〈무캇디마〉 라는 역사서를 남겼다. 이 역사서는 제국의 흥망성쇠의 패턴을 잡아 흥(興)과 성(成)의 요인으로 '아사비야(Asabiyyah)'를 꼽는다. 아사비야란 ‘집단 결속력', '사회적 연대감', 또는 '공동체 정신'으로 번역되며, 부족이나 공동체 혹은 가치를 위하여 자기 안위나 이익과 상관없이 헌신하는 태도를 말한다. 주로 외부 위기 속에서 출현한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리에 설치한 임시 공동 주방은 아사비야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븐 할둔에 따르면 이렇듯 자신을 넘어 공동체를 돌보게 하는 아사비야를 약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부의 ‘불평등’이다. 오늘날 역사학자들도 “경제적∙정치적 불평등”(300)의 문제가 내부 갈등과 균열을 초래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불평등이 심화되고 양극화된 사회에서 아사비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저자는 페테르 투르친(Peter Turchin)의 연구에서 단서를 찾는다. 페테르 투루친은 ‘외부 위협’에 방점을 찍어서 “위기가 심화”되면 “서로의 차이를 제쳐둔 채” 힘을 모으게 되는 점을 강조한다.(301)
문제는 현재 우리가 처한 기후 위기와 생태적 비상사태가 문명 붕괴를 초래하는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위기로써 감지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왜 그럴까? 저자는 말하기를, 기후 변화는 임계에 이르기까지 ‘즉각적으로 눈에 띄거나 폭력적’이지 않고, ‘배후에 단일 행위 주체가 없는 데다, 그 영향도 홍수나 가뭄처럼 특정 원인에서 기인한다고 콕 집어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303)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상태로는 공동선을 향한 자기희생이나 포기가 가능하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짧게 내놓은 대안은 지금의 생태적 비상사태를 가시화하자는 것이다. 그는 내부의 적을 표적화하는 전략을 제안한다. “가장 확실한 전략은 생존 가능한 미래를 위해 내부의 적을 설정하는 것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305) 우리 내부에는 명백한 기후 범죄자들이 있다. 화석연료 수출국, 화석연료 회사, 잠재적 기후 범죄자인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 이를 표적화함으로 위기를 가시화하고 이로써 외협에 맞서며 공동선으로 단결하는 정신, 아사비야를 기대한다.
(2) 생명애와 살아 있는 세상과의 화해
토착민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전통적으로 토착민들은 '서로 의지해야 할 이웃'이라는 관념 속에 생태계에 대한 과도한 착취나 파괴 없이 지속 가능한 삶을 살았다. 환경생물학자 로빈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는 토착민의 지혜를 빌려 “지구에서 무엇을 얻을지”가 아니라 “지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307) 지구를 세대에서 세대로 물려줘야 할 선물로 여기는 생태 관리 철학은 이븐 할둔이 말한 연대의 범위를 생명의 그물망 전체로 확장시킨다.(307) 한편, 저자는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라는 개념을 전유해서, 인간에게는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 있는 세상과 연결”되는 타고난 감각이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렇다면 환경자원의 과도한 착취는 어떻게 진행되었던가. 저자는 이렇게 진술한다. “500년이 넘도록 우리 서구 세계의 부유한 인간들은 생태적 전격전으로 자연을 복속시키고자 했다.”(308) 저자 자신이 “암울하고 추악한” 서구 세계의 후예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파트에서 다른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서구 사회가 진보와 현대성을 추구하면서 자연과 완전히 단절됐다는 고정관념에 가려진 바이오필리아의 흔적을 발굴한다.(307) 실천 의지를 보호할 재서술의 시도가 아닐까 한다. 일단 산업혁명의 본고장인 영국에 한하여 바이오필리아의 흔적을 이렇게 예시한다. “왕립조류보호협회 회원 수가 120만명”, “정원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2000만명”,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 시리즈물의 높은 시청률 등. 그 밖에도 영국 내에는 동식물 착취를 금지하는 강고한 목소리가 있고, 노동 자원으로만 보던 동물을 삶의 관점으로 다르게 대해온 것, 식물 분류체계가 인간 중심이 아니라 대상 중심으로 변해온 것도 바이오 필리아의 자취라고 본다. 그는 자신의 공동체를 향하여 이렇게 호소한다. “우리는 심미적 만족감을 위해 깔끔한 정원을 바랐고, 함께한다는 즐거움을 위해 순종적인 애완동물을 원했다. 그렇게라도 했기에 우리는 실낱같으나마 생명애적인 자아를 유지하고 키워나갈 수 있었다."(313)
생명애의 실천적 주체는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와 다르게 동아시아 전통에 속한 이들은 어떤 관념을 매개로 "살아있는 세상"과 화해할까. 일단 저자는 '가능성'의 관점에서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재서술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영국 내 수백만 명의 정원사와 자연애호가들은 잠재적 생태 세력이다.
(3) 위기 대응
저자는 ‘아사비야’나 ‘생명애’는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를 보완하려면 하나 더 추가되어야 하며 그것이 ‘위기 대응’이라는 역량이다.
저자는 <위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오롯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담대한 결정을 요구하는 비상사태”.(316) 여기서 담대한 결정을 내릴 정치적 주체로 “정부”가 상정된다. 따라서 과제는 “정부가 위기에 대응해 신속하고 혁신적인 정책 변화를 끄집어내도록 자극”할 조건 형성에 있다.
역사적으로 민첩한 위기 대응은 “전쟁, 재난, 혁명, 파괴적 변화”라는 네 가지 맥락에서 촉진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생태 비상사태는 혁명이나 전쟁, 특정 재난으로 분류하기에는 모호하다. 생태 비상사태는 사후적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이 벌어지기 이전에 조치”를 취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집단적 위기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파괴적 변화’라는 맥락에서 길을 모색한다. 즉, 의도적으로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변혁의 기회를 촉발시키자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파괴적 변화의 연결고리 모델”로써 변혁의 역동을 구조화한다. 삼각형으로 된 이 모델의 각 꼭짓점에는 ①위기 ②파급력 있는 사회운동 ③선구적인 새로운 사상이 놓여있다. 첫 번째 꼭짓점인 ‘위기’는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정치적·경제적·기술적·생태적 분열” 사태이다. 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게 하는 것은 파급력 있는 두 번째 꼭짓점, ‘사회운동’이다. 저자는 거듭해서 “사회 지배세력이 무시” 하는 위기를 증폭시킨 사회운동의 파급력을 강조한다. 정부를 공황 상태로 몰아넣어 1833년 노예제 폐지법을 이끌어 낸 ‘1831년 자메이카 노예 반란’과 같은 급진파 운동이 한 예이다. 세 번째 꼭짓점에는 ‘사상’이 자리한다. 사회를 재편할 “새로운 생각, 세계관, 정책 아이디어”가 그것이다. 위기는 기존의 사고 범주와 판단 기준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진실을 인식하도록 돕는다. (323) 따라서 위기 국면에서 “지배적이고 오래된 사상은 유동적이고 불확실한 상태에 처할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사상은 잠재적으로 그 자리를 차지”(323) 할 기회를 얻는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에 의하면, 위기가 발생할 때 취해지는 조치는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사상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이렇게 저자가 고안한 ‘위기-사회운동-새로운 사상’이라는 모델은 “우리의 집단행동에 실질적 역할을 부여” 하며 정부의 결정을 자극할 실천적 연결고리를 의식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인류 역사 대부분은 주변의 물리적∙자연적 세계에서 변화하는 상황을 이해하거나 적응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324)이었음을 지적하며,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동시대 지성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아사비야〉로부터 “격동의 미래를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결속의 힘”을 배우자. 이를 분열시키는 “극심한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바이오필리아〉 본능을 일깨워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고려한 재생 경제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의 정책 변화를 유도하고 촉진시킬 수 있으며 〈새로운 사상을 뒷배로 한 사회운동〉을 만들어 낼 수 있다.(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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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은 〈문명 붕괴〉의 마지노선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주제를 다룬다. 개인을 넘어 집단적 주체가 되어야 풀리는 문제의식 속에서, 얼마나 이 위기를 자기화해서 생활을 재편하고 이로써 연대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조금 더 깊은 층위에서는, 과연 책임의 영역에서 〈미래〉라는 시간성을 어떻게 대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빚진 존재로서의 책임을 상상하게 한다. 이에 가라타니 고진의 사유를 참조한다. “미래 세대는 현재의 우리에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들은 철저히 무력한 타자이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와 윤리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미래의 타자’를 현재의 결정에 참여시키는 일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자본의 축적이나 물질적 풍요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 즉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가능한 지구’ 그 자체이다. 이를 망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대한 현재 세대의 약탈이다.”
자기 앞가림을 하지 못하면서 미래의 타자든 지구든, 돕겠다고 중뿔나게 나서는 일은 삼가고 삼가야 하지만, 어떤 책임을 알게 되고 받아들이는 일이 자기 구제의 과제와 얽혀있는 지점이 있다. 〈생태적 비상사태〉 혹은 〈문명 붕괴〉라는 저자가 채택하고 설파하고 있는 현실에 관하여 학인의 입장(立場)을 세워보도록 하자.
* 프린트물을 일괄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