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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는길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유심을 잘하는 것이 무심을 얻는 길'(단보선생)


<속속> 공부 중에 내게 가장 어려운 공부는 청소와 식사 시간 등에 요구되는 '현복지'(단보선생)다. 이는 유심과 무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하였다. 동학의 존재론적 비평을 통해 얻은 작은 자득을 글로 남긴다. 유심과 무심에도 분별이 필요하다. 유심이라고 공부길에 모두 해로운 것은 아니며, 무심이라고 공부길에 모두 이로운 것도 아니다. 자폐적 순환 고리를 이루는 유심은 '열역학적 공회전'에 가까워 피해야 하지만, 몸의 변화를 위해서는 유심의 개입이 반드시 요구된다. '유심을 거치지 않은 무심'은 '무관심'과 다르지 않은데, 이는 타자와 응하기 위한 마음의 상태로서 부적절하다. '본능'이 아닌 '인간의 일'에 요구되는 무심은 반드시 유심을 거쳐야 한다. 달리 말하면, '다르게 걷거나(去去去)', '다르게 행하기 위해서(行行行)'는 의식으로서 말의 개입이 요구된다. '초월로서 무심'이라는 응하기 실력에 앞서 '해석으로서 유심'의 반복된 개입이 요구되는 셈이다. 유심은 무심으로 건너가기 위한 사다리 역할로 필히 요구되지만 언젠가 스스로 소외될 운명이다.


'약속', '낭독적 삶', '자발적 복종', '연극적 실천', '이기는 버릇' 등속의 배운 개념들은 '자기 명령', '텍스트(타자의 말)', '역할'이라는 유심이 틀로 작동하며 무의식(무심)의 지형을 바꿔 나가는 공통된 형식을 띤다. 마찬가지로, 무관심이 무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유심의 개입을 요구한다. 내가 보인 응하기의 서투름은 무관심을 무심으로 오인한 탓이 크다. 달리 말하면, 이는 늘상 강조한 '공대'라는 '수동적 긴장'(단보선생)이자 '동적 평형 상태'(Non-Equilibrium Steady State, NESS)를 외부 자극을 차단한 '정적 평형 상태'와 혼동한 탓이다. 무관심의 상태는 (조건부) 열린계인 몸을 외부 자극을 차단하는 닫힌계로 기울게 만든다. 생명이 항상성 유지를 위한 '동적 평형 상태'(열린계)를 잊고 '정적 평형 상태'(닫힌계)로 치우치면 외부와 응하기가 부재하게 돼 죽음의 상태와 다름없게 된다. 무관심이라는 외부 자극의 차단은 결국 고착이라는 노화로 향할 수밖에 없다. 노화는 생체 에너지가 에고라는 자폐적 순환 고리에 갇혀 비생산적으로 산일(Dissipation, 일리야 프리고진)되는 닫힌계에 가깝다. 몸의 항상성을 조율하는 신경망이 에고라는 증상의 덩어리에 갇히게 되면 필경 항상성을 잃고 병증으로 드러나게 된다.


'무심은 유심을 잘하는 일이다.'(단보선생) 달리 말하면, 유심은 스스로를 타자성에 노출시키며 '수동적 긴장'을 기반으로 타자성을 내재화하는 매체 정치를 이끄는 일이다. 공대는 안정성이 아닌 타자성을 요구한다. 외부 자극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실내화라는 '안정성의 역설'을 맞아 정신이 자라는 공부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타자성에 노출시키는 '자기 명령'(단보선생)을 요구한다. 낯선 타자를 만나 다르게 응하지 못하면, 새로운 행위 패턴은 창발되지 않는다. 새로운 패턴이 창발되지 않으면 정신은 자라지 못하고 고착을 향한다. '다르게 걷고(去去去)', '다르게 행하지(行行行)' 않으면 '새로운 앎(知)'도 '새로운 깨달음(觉)'도 없다. 그렇기에 학인은 동무(同無)로서 ‘구이경지(久而敬之)’의 대상으로 옮아가야 한다. 자본과 기술의 시대에 서로를 도울 수 없는 사유의 하나가 인간으로서 걷고자 하는 길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지만, 공부길에 도움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타자성을 잃지 않도록 간단없이 공부를 이어나가야 한다. 동무는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단보선생)라는 존재론적 겸허를 기반으로 시간성을 매개삼아 묵묵히 '조각난 지혜'(단보선생)를 내재화하며 삶을 변화시키는 비용을 요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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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如一 2026.08.19 12:41
    ‘다르게 걷고(去去去)', '다르게 행하지(行行行)' 않으면 '새로운 앎(知)'도 '새로운 깨달음(觉)'도 없다.

    독하, 단상을 흥미롭게 읽습니다. ‘다르게’ 걷거나 행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습니다. 생활에서 ‘다르게’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지 곰곰히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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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하 2026.08.20 07:56
    여일, 이렇게 유심으로 동학의 글에 응해주어 고마워요. 일상의 작은 일부터 다르게 걷고, 다르게 행하려는 마음을 내고 지키는 일은 일종의 '거대한 퇴행'(단보선생)의 연습이에요. 증상이라는 몸의 역사성을 애써 거슬러 올라가 다른 가능성의 씨앗을 살피는 일이지요. 이는 엔트로피에 순응하려는 물질성(열역학적 관성)에 대한 명확한 거부인데 정신적 존재인 생명의 힘은 이에서 연원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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