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두 보따리
1. 보따리 하나 : 해월 최시형(1827~1898)
그는 성리학 이데올로기의 조선에서 이단으로 지목을 받아 끝없이 잠행하면서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다녔다. 그래서 제자들이 붙여준 별명이 '최보따리'다. 또 하나의 별명이 있는데, ‘해월 선생’이었다. ‘선생’과 ‘보따리’ 두 별명은 상반되는 듯하지만, 해월 최시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선생의 이미지는 동학 지도자로써 보여준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 성주현, "해월 최시형 평전", 2021, 선인
2. 보따리 둘 : 한힌샘 주시경(1876~1914)
그는 한글 교육을 하기 위해 항상 바쁘게 돌아다녔는데, 강의에 필요한 책들을 큰 보따리에 넣고 다니면서 ‘주보따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주시경은 1911년 최초의 국어사전인 ‘말모이’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1914년 39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 함박웃음 94호, 2021. 6, 국립한글박물관
---
나이들어 뜻을 기리고자 찾아간 묘소가 둘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서울 현충원의 주시경 선생 묘였다. 공기처럼 물처럼 그냥 주어진듯 여기던 말과 글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이를 지킨 선열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맨 앞에 선 분이 주시경 선생이었다는 것을 새로 알고 나서였다.
제자들이 차디찬 감방에서 나날을 보내는데 자신은 따뜻한 방에 잘 수 없다고 하며 냉골에서 지냈다는 해월. 스승 수운의 도를 퍼뜨리고자 삼십여년을 보따리 하나 메고 도바리 생활을 하며 곳곳에서 포교하던 그. 인간적으로는 베드로보다 더 따뜻하고, 통찰로는 바울보다 더 깊어 보이는 것은 나의 단견일까?
(4) 1443년, 1913년 그리고 1926년
1. 박두성, “점짜를 만들어 글을 가르쳐주는 일이 첫째일 것”
조선민족에 이후로는 다시는 실명(失明)하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다행하리요만은 우리가 아무리 눈부신 발전을 할지라도 맹인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면 그들에게 살아있는 값이 있도록 해줄것이 무엇일까. 점짜를 만들어 글을 가르쳐주는 일이 첫째일것이다.
- 박두성, 한글점자(訓盲正音)에 관하여, 성서한국(대한성서공회, 1955.03), p.17
2. 주시경, “한자로 만들면 그 문자의 뜻으로만 풀이하고자하는 습관이 있어”
지금 말로 품사를 '기'라 하였는데(나중에 '씨'로 고침), “기의 갈래 아홉의 이름은 조선어로 만든 것이니, 한자로 만들면 그 문자의 뜻으로만 풀이하고자하는 습관이 있어, 그 정의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주시경, ≪국어문법(國語文法)≫, 박문서관, 1910)"라고 설명하면서, 기 갈래를 ‘임, 엇, 움, 겻, 잇, 언, 억, 놀, 끗’이라 하였는데, 지금말로 옮기자면 ‘명사, 형용사, 동사, 조사, 접속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종결사’이다.
- 권재일, 주시경 선생의 말글 사랑과 그 사랑 이어가기, 새국어생활(2014년 가을), p.67
3. 世宗,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 한자)와 이어(俚語, 조선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1443년 12월 30일)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 世宗莊憲大王實錄 (世宗25年 12月 30日)
---
맹인들의 세종대왕이라 불린 松庵 박두성(1888~1963). 그가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어 공포한 해 1926년.
한글 문법의 근간을 만든 한힌샘 주시경(1876~1914). 그가 우리글을 최초로 ‘한글’로 이름한 해 1913년(경).
친히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 이도(李裪, 1397~1450). 한글을 쓰는 모든 이가 그에게 빚져있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시절, 출장에서 돌아올 때 김포 공항에만 내리면 살 것 같았다. 왁자지껄한 우리말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으로 느꼈다.
해서 나는 훈맹정음이, 그를 만든 박두성이 맹인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지를 가늠해 볼 수있다. 그들에게 새 세계를 열어준 분이 박두성 선생이 아니겠는가?
한글날을 즈음하여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선학에의 묵념을 이 세분, 그리고 그 밖에 우리말과 글을 지켜 주신분들에게 올린다.
(3) 두 이별
•••••
五祖와 六祖의 이별 장면을 공부할 때였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업는 눈물의源泉을만들고 마는 것은 스々로 사랑을ᄭᅢ치는 것인줄 아는ᄭᅡ닭에 것잡을수업는 슯음의힘을 옴겨서 새希望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2) 自由의 여신상, 美의 여신상
며칠간 내 또래의 할머니에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연주에, 그의 자서전에, 그리고 그의 다큐 "Zhu Xiao Mei, How Bach Defeated Mao"에.
출근해서 내가 한 첫 일이었다. 월요일 1번, 화요일 2번, 수, 목, 금, 그리고 토요일 6번. 카잘스가 연주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다시 20년이 흐른 올해에 금방 시골에서 밭 매다 올라온 듯한 할머니가 연주하는 같은 노래를 만났다. Zhu Xiao Mei.
지옥 같은 문화대혁명의 흑암을 뚫고 나오도록 한 힘이 바흐에게서 나왔다면 누군가가 말했다던 '뉴욕(?)에 自由의 여신상 대신 美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1) 덕후 독하
"보고 싶은 당신,
"보고 싶은 상인,
언제일까요, 당신의 연주 밤 지새워 음미하던 그 날을 담소하며,
동백에 밤비 내리는 오늘을 옛날이라 할 그 때가요."
내가 접한 이름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 讀霞.
讀霞.
노을을 읽는 이.
동학의 위태로운 공부길을 잡아채고 멀리서 동백까지 찾아와 안부를 묻는 상인을 보며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뜻을 몸으로 새깁니다. 방학이 길어진 이참에 답례의 시기를 재보겠습니다. 하루바삐 쾌차하셔서 공부 장소에서 몸 섞으며 대화할 날을 그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