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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443년, 1913년 그리고 1926년

 

1. 박두성, “점짜를 만들어 글을 가르쳐주는 일이 첫째일 것”

조선민족에 이후로는 다시는 실명(失明)하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다행하리요만은 우리가 아무리 눈부신 발전을 할지라도 맹인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면 그들에게 살아있는 값이 있도록 해줄것이 무엇일까. 점짜를 만들어 글을 가르쳐주는 일이 첫째일것이다.

- 박두성, 한글점자(訓盲正音)에 관하여, 성서한국(대한성서공회, 1955.03), p.17


2. 주시경, “한자로 만들면 그 문자의 뜻으로만 풀이하고자하는 습관이 있어”

지금 말로 품사를 '기'라 하였는데(나중에 '씨'로 고침), “기의 갈래 아홉의 이름은 조선어로 만든 것이니, 한자로 만들면 그 문자의 뜻으로만 풀이하고자하는 습관이 있어, 그 정의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주시경, ≪국어문법(國語文法)≫, 박문서관, 1910)"라고 설명하면서, 기 갈래를 ‘임, 엇, 움, 겻, 잇, 언, 억, 놀, 끗’이라 하였는데, 지금말로 옮기자면 ‘명사, 형용사, 동사, 조사, 접속사, 관형사, 부사, 감탄사, 종결사’이다.

- 권재일, 주시경 선생의 말글 사랑과 그 사랑 이어가기, 새국어생활(2014년 가을), p.67


3. 世宗,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 한자)와 이어(俚語, 조선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 (1443년 12월 30일)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 世宗莊憲大王實錄 (世宗25年 12月 30日)

---

맹인들의 세종대왕이라 불린 松庵 박두성(1888~1963). 그가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어 공포한 해 1926년.

한글 문법의 근간을 만든 한힌샘 주시경(1876~1914). 그가 우리글을 최초로 ‘한글’로 이름한 해 1913년(경).

친히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 이도(李裪, 1418~1450). 한글을 쓰는 모든 이가 그에게 빚져있다.

 

해외 출장이 잦았던 시절, 출장에서 돌아올 때 김포 공항에만 내리면 살 것 같았다. 왁자지껄한 우리말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으로 느꼈다.

해서 나는 훈맹정음이, 그를 만든 박두성이 맹인들에게 얼마나 고마운 존재일지를 가늠해 볼 수있다. 그들에게 새 세계를 열어준 분이 박두성 선생이 아니겠는가?

한글날을 즈음하여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선학에의 묵념을 이 세분, 그리고 그 밖에 우리말과 글을 지켜 주신분들에게 올린다. 


(3) 두 이별


1. 떠남 : Fare you well
잘 있거라, 오르팔리스 사람들아.
이날이 다 됐다.
수련꽃이 내일을 두고 닫히듯이 이날이 우리 위에 닫힌다.
•••••
잊지 마라, 나는 다시 너희에게 온다.
잠깐만 있으면, 내 바람은 또 다른 몸을 만들려고 티끌과 거품을 모을 것이다.
잠깐만 있으면, 바람 위에 잠깐만 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을 것이다.
- 칼릴 지브란, "예언자", 함석헌 역(한길사, 1992)
Fare you well, people of Orphalese.
This day has ended.
It is closing upon us even as the water-lily upon its own tomorrow.

•••••

Forget not that I shall come back to you.
A little while, and my longing shall gather dust and foam for another body.
A little while, a moment of rest upon the wind, and another woman shall bear me.
 - Khalil Gibran, The Prophet, Alfred A. Knopf, 1923

2. 보냄 : 汝令好去
五祖와 함께 곧바로 九江驛으로 나아가자 때마침 배가 한 척 있었으며 오조께서는 나에게 '배에 오르라' 하시고는 친히 노를 잡고 저으셨느니라.
"청하오니 화상께서는 앉으십시오. 제자가 노를 젓는 것이 합당하옵니다.”
"내가 너를 건네주는 것이 합당하니라."
"미혹할 때는 스승님께서 건네주시려니와 깨친 다음에는 스스로 건너야 하옵니다. '건넌다'는 말은 하나이나 쓰이는 곳은 같지가 않습니다. 혜능은 변방에서 태어나 말조차 바르게 못하였는데 스승님의 법을 받고 이미 깨쳤사오니 다만 자성으로 스스로 건너는 것이 맞을 것이옵니다."
오조께서 이르셨느니라.
“그렇다, 그러하도다. 이후로 불법이 너로 인해 크게 유행하리라. 네가 가고 3년 뒤에 나는 세상을 떠날 것이다. 이제 잘 가거라."
 - 慧能, "六祖壇經"(德異本), 김현준 역(효림, 2022), pp.32~33.
(祖相送 直至九江驛邊 有一隻船子 祖令慧能上船 五祖把艣自搖 請和尚坐 弟子合搖艣 合是吾渡汝 迷時師度 悟了自度 度名踓​一 用處不同 慧能 生在邊方 語音不正 蒙師付法 令已得悟 只合自性自度 祖云 如是如是 以後佛法 由汝大行 汝去三年 吾方逝世 汝令好去)
---

五祖와 六祖의 이별 장면을 공부할 때였다. 

보내는 五祖와 떠나는 六祖가 서로 나룻배를 저으려는 모습을 상상하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六祖를 彼岸으로 건네주고 홀로 此岸으로 노를 젔던 五祖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彼岸의 六祖는 또 어떠했을까?

사랑도 사람의일이라 맛날ᄯᅢ에 미리 ᄯᅥ날것을 염녀하고 경계하지 아니한것은아니지만 리별은 ᄯᅳᆺ밧긔일이되고 놀난가슴은 새로은슯음에 터짐니다
그러나 리별을 쓸데업는 눈물의源泉을만들고 마는 것은 스々로 사랑을ᄭᅢ치는 것인줄 아는ᄭᅡ닭에 것잡을수업는 슯음의힘을 옴겨서 새希望의 정수박이에 드러부엇슴니다


(2) 自由의 여신상, 美의 여신상

며칠간 내 또래의 할머니에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연주에, 그의 자서전에, 그리고 그의 다큐 "Zhu Xiao Mei, How Bach Defeated Mao"에.


출근한다. 그날의 바흐를 턴테이블에 올린다. 

출근해서 내가 한 첫 일이었다. 월요일 1번, 화요일 2번, 수, 목, 금, 그리고 토요일 6번. 카잘스가 연주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그로부터 15년쯤 후에 또 바흐를 만졌다.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버그 변주곡.
다시 20년이 흐른 올해에 금방 시골에서 밭 매다 올라온 듯한 할머니가 연주하는 같은 노래를 만났다. Zhu Xiao Mei.
지옥 같은 문화대혁명의 흑암을 뚫고 나오도록 한 힘이 바흐에게서 나왔다면 누군가가 말했다던 '뉴욕(?)에 自由의 여신상 대신 美의 여신상을 세워야 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We live only to discover beauty. All else is a form of waiting”
 - Khalil Gibran


(1) 덕후 독하

"보고 싶은 당신,

떠나오던 날 내게 돌아올 날을 물었죠, 나도 알 수 없는 그 날을.
오늘 밤 이곳 巴山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오. 가을 못물도 따라 불어나겠죠.
언제일까요, 촛불심지 잘라가며 당신과 함께 밤 지새워 이야기하면서 
巴山에 밤비 내리는 오늘을 그때라 할 그 때가요.
      某年 某月 
      멀리 巴蜀 땅에서 당신의 隱"
李商隱의 "夜雨寄北" 私譯에 讀霞 對하기를
"보고 싶은 상인,
미륵사지 떠나오던 날, 急雨에 고망 없이 내달리던 당신을 좇아 하염없이 이름을 불렀죠.
오늘 밤 이곳 동백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어요. 涵養池 못물도 따라 불어나겠죠.
언제일까요, 당신의 연주 밤 지새워 음미하던 그 날을 담소하며,
동백에 밤비 내리는 오늘을 옛날이라 할 그 때가요."
---
내가 접한 이름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 讀霞.
그가 내게 처음 한 대거리가 위의 글이다. 
그는 누구인가, 아니 어떤 사람인가?
나에게는 李箱으로 비치기도 하고 Bartleby로 비치기도 한다. 하나 어쨌든 확실한 것은 그가 k선생의 덕후라는 사실이다. 선생의 모든 책을 그는 두 권씩 갖고 있다. 절판된 것도 그렇다. 읽고 또 읽다 보면 책이 헤질 수 있으니 미리 한 권을 더 장만해 둔다고 했다.

讀霞.​
노을을 읽는 이. 
노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고 하니 노을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그 너머의 무엇까지 읽겠다는 것인가?

 (몇 달 후, 그와 나는 동백에서 "그 때"를 "그때"로 만들었다.)
  • ?
    독하 2026.09.12 10:52
    '가장 아름다운 이름'에 '이상'과 '바틀비'까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상인!! 어찌해야 상인의 눈에 씌인 '애정의 콩깍지'를 털어 내고 서늘한 동학의 눈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동학의 위태로운 공부길을 잡아채고 멀리서 동백까지 찾아와 안부를 묻는 상인을 보며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뜻을 몸으로 새깁니다. 방학이 길어진 이참에 답례의 시기를 재보겠습니다. 하루바삐 쾌차하셔서 공부 장소에서 몸 섞으며 대화할 날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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