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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류수
“생명과 의식을 키우는 것은 집중과 리듬이다.”라고 단보 선생은 말씀하셨다.

신입 숙인으로서, 처음으로 수묵독성을 하였다. 4층에서 내려와 3층 양재 안쪽 작은 수묵독성실로 향했다. 천장은 낮고, 방석은 높았으며, 4층의 이야기 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그러나 적막한 방이었다. 시간을 맞추고 적경을 시작하였다. 앞서 이야기 한 단보 선생의 집중과 리듬을 내 깜냥껏 이해하면 호흡에 관한 것으로 생각한다. 텅 빈 형식으로 집중, 집중으로써 만들어지는 긴 호흡, 호흡으로 만들어지는 고유의 진동과 떨림으로써 리듬. 응하기 또한 상대의 호흡에 내 호흡이 갈마들어 새로운 리듬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4층의 여러 사람이 만들어 내는 리듬에서 벗어나, 3층의 집중의 형식으로써 들 숨과 날 숨을 바라보며 고유의 리듬을 회복하는 수묵독성의 시간은, 또 하나의 삶의 형식을 체험한 시간이었다. 주변의 소란 속에서 시간을 내어 텅 빈 곳에 앉아서, 숨을 바라보며, 리듬을 회복하며, 내용 없는 텅 빈 형식으로 집중하는 삶의 한 꼭지가 점심을 만들어 낸다.

2. 연이정
단보 선생은 낭독을 내 생각이 아니라 남의 생각인 문장을 읽을 때 ‘쓰인 대로 읽음’으로서 변덕을 부리려는 자아를 길들이고 그 자아를 넘어가기까지를 요구하는 훈련이라 하셨다. 낭독을 새로운 장소라고 할 때 낭독이 “쓰인 데로 읽어라”는 새로운 규칙을 요구하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그곳의 규칙을 지켜야 하고 거기에서 저항을 만나게 된다. 낯선 타자가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처럼 저항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을 때 자기가 혐기성인지 모르다가 물 밖을 나왔을 때 자기가 공기를 싫어한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저항’이란 자아를 키우는 방식으로 자기 자아를 유지하고 싶어 나오는 반응이다. 단보 선생은 자신이 저항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고 소개하시면서 그 이유를 자신이 자신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좋아하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지 않는 자기분열에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와의 불화는 자살하는 행위이고 자기를 돕지 않는 것이고 나보다 더 큰 자아가 나를 돕지 못하게 막는 것이라 하셨다. 낭독, 적경, 경행, 맨 나(맨발걷기&나무 만지기) 등 리듬과 집중을 통해 무의식까지 나를 도울 수 있도록 평소 몸과 마음 훈련이 필요하고, 이들이 서로 통합될 수 있게 해야 한다.

3. 심ㅈ영
선생님께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나온 e=m c^2(c squared) 를 설명해주시며, 질량(mass)에 빛의 속도(c)의 제곱이 곱해지는 것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내게 되는 것을 생활양식의 힘으로 비유해주셨다. 텍스트에서 무언가를 끌어내는 것은 나와 텍스트가 호환되는 것이고 여기에 빛의 속도(c)처럼 생활양식이 붙을 때 놀라운 힘과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늘 내게 "심리적인 삶을 끝내고 생활양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셨다. 지난 10년의 삶은 심리적인 삶을 끝내기 위한 여정이었고 언젠가부터 어느 누구를 봐도 크게 '부럽다'는 감정이 들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여성으로서 심리적인 삶을 완전히 끝내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약간의 의도를 지닌 채, 무심하게 말과 몸을 생활양식에 맞추다 보면 고요함 속에 리듬이, 리듬 속에 고요함이 생길 것이다.

4. 지린
*
지난 속속의 복습을 하면서 책상머리에 새 문장을 적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문장이 적혀 있던 포스트잇은 수거해서 복습공책에 풀로 붙여놓았다.
수년 간 책상머리에 두었던 문장 세 개는 아래와 같다.

1) 정신적 진화가 윤리다.
2) 문학하는 사람의 가장 큰 죄는 글을 못 쓰는 것이다.
3) 내 정신을 믿어야 한다.

새 포스트잇에 새로 써서 책상머리에 세워둔 문장은 아래와 같다.

“平心한 생활은 창의성의 진정한 반려가 된다.”

네 문장 모두 선생님께 얻은 것이다.

*
“대상에 대해서 몸짓을 여리게 들어간다.
대인대물 관계에서 자기의 감성을 찾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다.”

속속 강의 중에 내가 들은 말이다.

“여리게”, “작고 적게”, “에둘러서”, “조심 조심 조심”,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의 실천법은,
기운을 절약하면서 실용적으로 자아를 운신하는 운신법으로도 이해하였다.
일상과 문장에 감성이 풍부해지는 쪽으로, 누림이 가능해지는 변침법으로도 이해하였다.
“平心”이 가능하면서도 보호되는 수행법으로도 이해되었다.

*
“훈련된 사람은 무의식도 자기를 돕는다.”

통합되어나가면서 자기가 자신을 돕는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강의를 해주실 때 내가 들은 문장이다.
나 자신이 나를 돕지 않으려는 지점을 명료하게 헤아려볼 수 있는 실력과,
이 지점에서 조심조심 나를 돕는 방향으로 변침해낼 수 있는 지혜는 그냥 얻어지는 것은 아닐 터,
기나긴 "훈련"이 필요하다.

5. 숙비랑
1)
“낭독은 내가 새로운 장소에 가서 새로운 규칙/자아를 만나는 순간”(단보선생)이다. ‘고정된 텍스트’가 있어 이를 정해진 대로 소리내어 읽어 나아가며 순응하는 시간인 것이다. 텍스트를 읽다 사람이 깊어지면(深化) 순하게 주변에 순화(純化)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듣게 되는 음성은 잡다한 것이 사라지고 남은, 어떤 형식(美)으로서 들려온다. 드물게 아름다운 순간(淨化)이다.
2)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말’(言いたくない言葉)이 있다. 전하려 입을 열면, 사람 안에 간직되어 있을 때의 그 무게를 잃고 껍질만 남긴 채 산화해 버리는 말의 종류이다. 이는 마치, ‘제도와 법률과 권력’이라는 가시적 형식아래, 자주/잘 드러나지 않는 상징적/심미적 무언가들의 ‘있음’을 말해주는 듯 하다.
3)
왜 소리내어 ‘말 할’ 때인가는 (아직)말 할 수 없다. 존재의 형식이 ‘구조적 능기’(라캉)와 관련되어 있고, 이가 음성을 통과 하면서 비로소 존재의 격(인격)으로 ‘훈증’(단보선생)되는 것이라면, 이 순간 개입되는 정신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을 뿐이다.

6. 김ㅅ연
단보선생께서는 '자아가 단련된 사람은 무의식이 자기 자신을 돕는다.'는 개념을 설명하시면서
노인들의 차사고, 반복해서 자행하는 가정폭력, 공부를 못하게 하는 상황을 예로 드셨습니다.
평소 생활과 삶이 통합되어 있지 않아 무의식이 나를 돕지 않는 사람들은
나는 하고 싶지 않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엉뚱한데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자신의 "저항"의 문제를 면밀히 살펴야한다는
가르침을 묵상해보려고 합니다.

7. 단빈
상대성이론 공식에서 에너지와 질량은 등가성을 지닌다. 질량에 빛의 속도 제곱이 곱해지면 폭발적인 에너지를 낸다. 단보 선생께서는 생활양식을 빛의 속도에 비유하셨다. 생활양식을 토대로 생성되는 파급적인 에너지를 상상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자신과의 불화로 소비되는 것들을 끊어내고, 정신의 가능성을 키울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이어가는 공부가 절실한 시점이다.

8. 박ㅇ름
내가 잘 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나에게 익숙한 것이 아닌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단보선생은 평생 안 해보던 것을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실험적 정신으로 15년 전엔가 마음이 생겨 자전거를 배우고, 오토바이를 배우고, 운전면허를 따고, 경비행기 조종을 배우는 등의 시도를 하셨다고 한다. 당시 기대한 만큼의 효과는 안 났지만 탈 건 다 타봤다 하는 결과가 남았다고 하셨다.
나에게 편한 자리에 있으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체로 예상 가능한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곳에서도 실력을 쌓아가며 나름의 유의미한 경험을 얻을 수 있을 테지만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탐구하는 과정이 필요할 텐데 그럴 때 상상하지 못한 영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 도움 될 수 있을 것이다.
단보선생께서는 편한 자리에서 나와야 사건이 생기고 자기에게 유익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물론 잘못하면 그 나름의 비용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인생에 대한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는 편한 자리에서 벗어나, 혹은 편한 자리에 한 발을 걸치고라도 다른 한 발은 그곳이 아닌 쪽으로 향해보는 식으로 새로운 발견을 해보려는 시도가 필요할 것 같다.

9. 여일
1) 공부란 무엇일까
한 숙인은 공부란 어떤 약속을 정하고, 정한 것을 꾸준히 지키는 것이라 했다. 신입 숙인에게 장숙에서 무엇을 배우는가를 말해주고 싶었다.
내 공부의 시작은 선생님의 다르게 사는 생활양식이었다. 다르게 보고 걸으며, 대인대물 관계에서 다르게 응하고 대접하는 단보선생의 생활감성은 서서히 나의 에고를 바꾸는 생활공부가 되었다.

2) E=mc^2,이 공식은 작은 질량이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 존재도 엄청난 힘을 낼 수 있는데, 에고는 자기 자신과 다투느라 힘을 소진한다. 단보선생은 자연상수 c를
생활양식으로 바꿔서 비유를 말씀하셨다. 자기 자신의 여건에 맞게 생활양식을 개발하여 에고와 다투지 않고 오래 멀리 나아가기를 바라셨다.

10. 권ㄷ환
'외모를 말하지 말라'
누군가의 외모를 보고 쉽게 비평하고 누군가를 이래저래 닮았다고 하는 행동은 왜 학인에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누군가를 닮았다고 말하는 행위는, 가만 살펴보면 상대(타자)와의 만남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기약에 맞춰 나를 변화시키려는 태도라기보다는, 내 기존 경험과 식견과 판단으로 상대의 현재(까지의) 모습을 평가하려는 행위로 보인다. 비록 그 평가가 너무나 적절해서, 아주 많이 닮은 누군가를 '잘' 말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상대의 역사성을 대변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상대의 미래 가능성에 초점이 닫혀버리게 되는 효과를 낳게 만든다.

윤리에서 자유로 (닫아야, 열린다)
학인으로서 다른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대화는 만만하고 단순한 행위만은 아니라 그 자체로 실력의 무대일 수 있는 진지한 연극이기도 하다. 따라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무대에서 상대의 미래 가능성을 열어두는 행위(외모를 말하지 않으려는)는 타인과의 만남에서 갖춰야 기본적인 윤리이자 학인의 실력을 나타내는 밑절미가 될 수 있다. ("막스베버는 사회적 모순을 책임윤리와 자유라고 하는 개념으로 풉니다" ... "쉽게 말해서 이건 실력의 자유입니다." 속속 210회, 단보선생) 자신이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자 학인이라 생각한다면, 당연히 상대도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존재로 존중해야 함이 옳다. 나아가 외모를 말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상대를 자기 멋대로 판단하지 않고 조심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책임윤리는 실력을 낳고 그리고 그 실력에서 비로소 대화에서의 자유가 꽃필 수 있을 것이다.

응해서 말하기와 그 소(적)극적 수(능)동성
응해서 말하기는 '응해서' 말한다는 사실로 인해 얼핏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행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응해서 말하기는 실제론 정중동(靜中動)과 같이 자신의 에고와 싸우는(나는 상대를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능동적인 행위이면서 동시에, 동중정(動中靜)처럼 역동적으로 주고받는 대화 안에서도 끊임없이 중심을 낮추려는('조심, 조심, 조심') 적극적 말하기에 가깝다. 따라서 응해서 말하기가 가진 수동성은, 자주 변덕을 부리는 에고로 인해 타락한 마음을 우회하고자 하는 적극적 능동성에서 나타나는 태도이지 나태한 평화나 보수적 소심함에서 비롯된 소극적 수동성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마음을 타락했다는 것이고, 마음을 통과하지 않은 말을 찾는 와중에 이 이야기가 논의되는 것" 장숙강 58회, 단보선생)
결국 수동적이면서 능동적이고 소극적이면서(조심, 조심, 조심) 적극적인 '응해서 말하기'라는 이 연극은, 의식을 형성하는 집중과 리듬을 모두 담고 있는, 不二의 가치를 품은 학인들의 중요 수행이다.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인 리듬과 새로운 훈련인 집중을 통해 형성되니" 속속 210회, 단보선생)

따라서 학인이라면, 내 홈그라운드가 아니라 상대의 영역에서 사고하고, 내 습관에서가 아니라 지금 처한 상황이나 조건 등을 기준으로부터 '출발'하며, 내가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변덕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하고 적절한 말을 해야 한다.

11. 는길
“평등이란 말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봐야 해요.”(단보 선생)
알기-되기-돕기의 밑절미는 ‘살기’ 곧 생활이다. 배운 바, ‘끝’도 없고 ‘평등’도 없다는 관점에서 ‘생활’을 보게 된다. 번지고 전염되고 이어지는 흐름 속에 점(占心)을 찍어 리듬을 살리는 양식을 개발하고, 권리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며 ‘겨끔내기’라는 화해와 진전의 형식을 배워간다. 바람이 불면 무심히 노를 젓다가 춥고 소외되는 순번이 오면 물러나 “잘” 참아낸다. “한 번씩은 소외당하고 춥고 그런 게 인생.”(단보 선생)
평등에 대한 민감성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토크빌은 조건들의 평준화로 나아갈수록 인간이 평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르상티망과 싸우는 어느 정신분석가는 “르상티망은 확실히 불공평하다고 곱씹는 순간에, 무엇보다도 평등에 의해 피해를 봤다고 느끼는 순간에 발생”한다고 한다. “평등을 향한 무해한 요구의 이면에는 흔히 평등주의의 어떤 도착적 형태, 즉 우위에 서지 못한다는 두려움, 이 끔찍한 슬픔의 정념이 감춰져 있다.”(신티아 플뢰리)
평등이라는 것, 이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

12. 아무공
‘나는 저항이 없다.’ 내가 나를 좋아하므로. 내부갈등이란 상대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나를 돕는 나에게 저항하는 것이다(자기와 불화). 엉뚱한 싸움을 계속하게 함으로써 자기를 더 힘들게 한다. 자기가 자기를 돕지 못하게 되고 자기를 죽이게 되는 또 남까지 피해를 주게 되는 그런 일을 반복할 수 있다. 자기가 자기를 모를 때도 자기를 돕게 하라.

13. 독하
'나는 저항이 없다'(단보선생)
'몸을 끄-을-고' 수영장을 등록했다. 저항 없는 몸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다.

14. 임ㅁ애
교재 8장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영성이라는 '고양된(lifted-up)' 느낌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고상한 본성(elevated nature)을 짚는 저자의 시각에 어떤 연대감을 느꼈다. 분열되고 파편화된, 소비하는 인간이 영적인 해악(spiritual harm)을 입는다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인과관계다. "우리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사회 전반 차원에서의 퇴화를 지각하게 될 것.(We would perceive a general society-wide degradation that would be hard to put into words.)“ 하이트가 말한(298쪽) 이 퇴화는 이미 목격되고 체감되고 있다. 다만 현재 우리 사회를 내리누르는 무력감 때문에, 이것이 막연히 붕 뜬 개념으로 이해되는 면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미 세계적 문화 공유 속에 자란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르게 보이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는 이것을 우리 사회의 희미한 희망이라 생각한다. 조금 더 가까운 이해에 도움이 될까 싶어 주요 문장들을 원문과 함께 정리해 봤다.

- 신이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나 장소, 행동, 물체를 신성하고 순수하고 숭고한 존재로 지각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나 장소, 행동, 물체는 혐오스럽고 불순하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지각한다.( Whether or not God exists, people simply do perceive some people, places, actions, and objects to be sacred, pure, and elevating; other people, places, actions, and objects are disgusting, impure, and degrading (meaning, literally, “brought down a step”).
- 제퍼슨이 사용한 ‘고양’이라는 단어는 어떤 식으로건 우리가 ‘위로’ 들어올려지는 느낌을 잘 표현한다.(Jefferson's use of the word "elevate" captures for all of us the feeling that we are lifted "up" in some way.) 반대로 옹졸하고 못되게 행동하거나 물리적으로 역겨운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강한 혐오감을 느낀다.(Conversely, witnessing people behaving in petty, nasty ways, or doing physically disgusting things, triggers revulsion. ) 우리는 어떤 식으로건 ‘아래로’ 끌어내려지는 느낌을 받고(We feel pulled "down" in some way.), 눈길을 돌리고 돌아선다.(We close off and turn away.) 그런 행동은 우리의 고상한 본성과 양립할 수 없다.( Such actions are incompatible with our elevated nature.)

1) 공유된 신성함(Shared Sacredness).
- 가장 강하고 만족스러운 공동체는 뭔가가 사람들을 낮은 차원에서 끌어올려 강렬한 집단 경험을 하게 만들 때 나타난다.(The strongest and most satisfying communities come into being when something lifts people out of the lower level so that they have powerful collective experiences.) 그들은 모두 동시에 신성한 영역으로 진입한다.(They all enter the realm of the sacred together, at the same time.)
- 신성함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단어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따로 떨어진, 또는 ’분리된’이라는 뜻이다.(The Hebrew word for holiness (kadosh) literally means "set apart," or "separated.“)
- 가상 세계에는 사람들이 언제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결정해서 알려주는 일 단위나 주 단위 또는 년 단위의 달력이 없다.(In the virtual world, there is no daily, weekly, or annual calendar that structures when people can and cannot do things.) 끝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모두 각자 자신의 스케줄에 따라 행동한다.(Nothing ever closes, so every one acts on their own schedule.)
모든 개인은 언제든지 거의 또는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무엇이건 할 수 있다.(Everything is available to every individual, all the time, with little or no effort.)

2) 체화(Embodiment)
- 의식에는 몸의 움직임이 필요하다(rituals require bodies in motion.)
사람은 함께 모이고 함께 움직임으로써 종교적이 되도록 진화했다.(Humans evolved to be religious by being together and moving together.)
- 많은 영적 수행은 움직이는 신체와 가까이 있는 신체를 통해서 증폭된다(Many spiritual practices are amplified by bodies in motion and in proximity.)
- 모든 것을 화면을 통해 하고, 게다가 자기 방에 혼자 틀어박혀 한다면, 영적 수행과 함께 진화한 신경 회로를 활성화할 수 없고,(you cannot activate the neural circuits that evolved along with spiritual practice,) 따라서 뒤르켐이 말한 신성함의 영역에 들어가기가 훨씬 어렵다(so it is much more difficult to enter Durk- heim's realm of the sacred.) 살아가기에 더 건강한 방법은 대면 방식 공동 행사에 더 많이 참여하도록 노력하는 것인데, 특히 고양된 목적이나 도덕적 목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especially those that feel as though there is an elevated or moral purpose) 동기화된 움직임을 약간 포함하는(and that involve some synchronous movement,) 공동행사가 좋다.
- 사람은 체화돼 있는 반면, 스마트폰 기반 생활은 그렇지 않다(Humans are embodied; a phone-based life is not.) 화면은 신체적 움직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도록 유도한다(Screens lead us to forget that our physical bodies matter)

3) 고요함, 침묵, 집중 (Stillness, Silence, and Focus)
- 일부 수행은 고요함을 바탕으로 하는데, 사실은 고요함조차도 신체적으로 격렬한 활동이다.(some practices use stillness, although even being still is physically intense.)
- 영적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끝없는 말과 세속적 관심사를 수반한 인간 상호 작용의 잡음과 복잡성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Those seeking spiritual growth are well served by separating themselves from the noise and complexity of human interactions, with their incessant words and profane concerns.)‘
- 만약 고요함과 침묵을 경험하고 싶다면(If we want to experience stillness and silence), 그리고 집중력과 통합된 의식 감각을 발전시키고 싶다면(and if we want to develop focus and a sense of unified consciousness), 눈과 귀로 들어오는 자극의 흐름을 줄여야 한다( we must reduce the flow of stimulation into our eyes and ears.) 그것이 명상이건, 혹은 그저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긴 드라이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건, 항상 뭔가에 귀를 기울이거나(뒷자석에 앉은 어린이의 경우에는) 내내 영상을 보는 대신에 침묵 속에서 조용히 앉아 있을 기회를 많이 찾아야 한다.(We must find ample opportunities to sit quietly, whether that is in meditation, or by spending more time in nature, or just by looking out a car window and thinking on a long drive, rather than always listening to something, or (for children in the back seat) watching videos the whole way.)

4) 자기 초월 (Transcending the Self)
- 자기 초월은 영적 경험의 중심적 특징 중 하나인데, 이렇게 자신에게서 해탈하는 순간은 신경에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 드러났다(Self-transcendence is among the central features of spiritual experience, and it turns out that the loss of self has a neural signature.)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더 조용할 때(When the DMN is quieter), 우리는 자신을 초월한 어떤 것에 더 깊이 연결하기가 쉬워진다(we are better able to deeply connect to something beyond ourselves.)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정의상 모든 관심이 오로지 자신에게만 쏠리는 장소이다(A social media "platform" is, almost by definition, a place that is all about you.)
- 그런 플랫폼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그곳에 고정할 목적으로 설계돼 있으며(It is almost perfectly designed to crank up the DMN to maximum and pin it there), 거의 완벽하게 그 목적을 달성한다.
-소셜 미디어는 심란함을 초래하는 원천이다(Social media is a fountain of bedevilments).
많은 사용자는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이 암암리에 내재돼 있는 당근과 채찍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but it's hard not to be affected unconsciously.)

5) 느린 분노와 빠른 용서 (Be Slow to Anger, Quick to Forgive)
- 『도덕경』은 ’선악 개념(ideas of right and wrong)‘을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으로(as a bedevilment) 규정한다. 지난 35년 동안 도덕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인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간주하게 된 것이 있는데(In my 35 years of studying moral psychology, I have come to see this as one of humanity's greatest problems:), 그것은 우리가 너무 빨리 분노하고 너무 느리게 용서한다는 것이다(We are too quick to anger and too slow to forgive.) 우리는 또한 위선자인데(We are also hypocrites), 남의 행동은 매우 가혹하게 비판하는 반면, 자신의 나쁜 행동은 자동적으로 정당화한다(who judge others harshly while automatically justifying our own bad behavior.)
- 직관이 먼저 떠오르고 나서(Intuitions come first,) 그 다음에 전략적 추론이 뒤따른다는 것이다(strategic reasoning second.)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어떤 사건에 대해 즉각 어떤 직감이 떠오르는데(we have an immediate gut feeling about an event), 그러고 나서 급히 내린 판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사실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and then we make up a story after the fact to justify our rapid judgment) (대게 자신에게 유리하게(often a story that paints us in a good light.))

6) 자연에 대한 경외감 (Find Awe in Nature)
- 2003년에 다커 켈트너와 나는 경외감에 관한 리뷰 논문을 발표했는데, 거기서 우리는 경외감은 동시적인 두가지 지각을 통해 촉발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바라보는 것이 어떤 면에서 광대한 것이어야 하고(first, that what you are looking at is vast in some way), 두 번째는 그것이 자신의 기존 정신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and, second, that you can't fit it into your existing mental structures.). 이 조합은 사람들에게 매우 즐거운 (때로는 두렵기도 한) 방식으로 아주 작은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촉발하는 것으로 보인다(That combination seems to trigger a feeling in people of being small in a profoundly pleasurable ―although sometimes also fearful-way.). 경외감은 믿음과 충성과 행동 변화를 촉발하는 길을 열어준다(Awe opens us to changing our beliefs, allegiances, and behaviors.)
- 사람은 자연에서 진화했다(Humans evolved in nature.) 우리의 미美 감각은 나무와 물이 있어 초식동물이 많은 초원이나 해양 자원이 풍부한 해양 가장자리처럼 우리 조상이 번성한 환경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도록 진화했다.(Our sense of beauty evolved to attract us to environments in which our ancestors thrived, such as grasslands with trees and water, where herbivores are plentiful, or the ocean's edge, with its rich marine resources.) 위대한 진화생물학자 E. O. 윌슨은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는(biophilic)‘ 존재라고 말했는데, “다른 생명 형태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려는 욕구("the urge to affiliate with other forms of life.")가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했다.
- 이메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순간에 취해 자신을 잊어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은 드물다.(Few are open to losing themselves in the moment as Yi-Mei did.)

• 신의 형상을 한 구멍 (THE GOD-SHAPED HOLE)
- 인류는 집단과 집단이 서로 경쟁하는 동시에, 각 집단 내에서 개인과 개인이 서로 경쟁하는 다수준 선택이라는 긴 시기를 거쳤다.(Humanity went through a long period of what is known as multilevel selection in which groups competed with groups, while at the same time individuals competed with individuals within each group.) 가장 응집력이 높으 집단이 승리를 거두었고,인류는 집단의 응집력을 더 증대시키는 적응이 진화했는데(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 모두를 통해), 그것은 바로 종교성(신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을 모두 포함하는)이다.(The most cohesive groups won, and humans evolved ―by both biological and cultural evolution― an adaptation that made their groups even more cohesive: religiosity (including both the fear and the love of gods).
- 즉, 우리 모두에게는 텅 빈 구멍이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채우려고 애쓴다.(There is a hole, an emptiness in us all, that we strive to fill.) 만약 고상하고 숭고한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현대 사회는 금방 거기에 쓰레기를 펌프질해 가득 채워넣을 것이다.(If it doesn't get filled with something noble and elevated, modern society will quickly pump it full of garbage.)
- 우리를 무엇에 노출시키는가가 중요하다.(It matters what we expose ourselves to.) 이 점에 관해 옛날 사람들의 견해는 보편적으로 일치한다. 붓다는 ”생각 자체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를 이루는 모든 것은 생각에서 생긴다.("We are what we think. All that we are arises with our thoughts.") 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내 마음의 질을 결정한다. 내 영혼은 내 생각의 색을 띤다.("The things you think about determine the quality of your mind. Your soul takes on the color of your thoughts.")”라고 말했다.
- 우리는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아야 한다.(We need to take back control of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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