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가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발제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나름 '문학적으로' 읽은 <A good man is hard to find>의 클라이맥스를 글로 작성해 올립니다. 

*
할머니가 부적응자의 총구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클라이맥스는 단순한 신학적 깨달음이나 도덕적 반성의 현장이 아니다. 그것은 남부 백인 중상류층 특유의 안일하고 매끈한 언어 습속이 자신의 사유 체계로 결코 포섭할 수 없는 무자비한 타자를 맞아 파산하며, 자신이 평생 경멸해 온 하층민의 거친 파열음과 생체적 비명 속으로 완전히 미끄러져 떨어지는 ‘계급 언어의 생체 음향학적 파산극’이다.


부적응자를 처음 맞닥뜨렸을 때 할머니의 대사는 조지아주 지주 계급 특유의 안온한 완곡어법과 관념적 완충지대로 감싸여 있다. "You're not a bit common! I know you come from nice people!"이라는 구절에서 드러나듯, 단어들은 모음 중심의 부드러운 연결과 유연한 비음으로 배열되어 독자의 시선이 텍스트 표면에 매끈하게 연착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신이 상류층(Nice people)임을 환기하고 상대에게 계급적 신사성을 호소함으로써, 포획 불가능한 타자의 얼굴을 익숙한 자기 진영의 문법 안으로 무력화하려는 관념적 무장이다.


그러나 숲속에서 아들과 손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첫 번째 총성이 울려 퍼지는 순간, 이 매끈하던 모음의 결에 첫 번째 균열이 간다. "Pray, pray," she groaned. "Read the Bible, pray!"에서 확인할 수 있듯, 문법적으로 완결된 교양의 언어는 해체되고 두 입술을 강하게 다물었다 터뜨리는 양순 파열음(/p/, /b/)의 연쇄 폭발(Pray, Bible)이 대사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품위 있는 상류층 어휘력을 잃어버린 몸이 타자라는 거대한 미지의 벽 앞에서 생존을 향해 입술을 짓밟으며 기계적 타격음을 쏘아대는 조음적 긴장 상태로 전환된 것이다.


마침내 죽음이라는 타자성의 압도적 현전이 턱 밑까지 다가왔을 때, 할머니는 상류층의 가치와 계급적 완곡함을 완벽히 포기하고 자신이 조롱하던 세속적 거래와 거친 자음의 폭격 속으로 완전히 미끄러져 떨어진다. "Listen," the Grandmother shrieked. "I got to give you all the money I got!"이라는 절규는 계급 언어의 완벽한 추락을 증명한다. 목구멍 뒤 연구개를 쾅 치는 거친 /g/ 소리와 혀끝을 치경에 단단히 밀착시켰다 튕겨내는 /t/ 소리가 문장 전체를 도배한다(got, give, got to). 더 이상 "좋은 가문(Nice people)"을 호소하지 못한 채 "돈(Money)을 줄 테니 살려달라"는 가장 저열한 물질적 거래로 추락한 신체는, 타자의 생체적 조음 방식이자 부적응자가 구사하던 거친 자음 타격음(I got!)을 그대로 모방하며 그와 동일한 파열음의 비명을 질러댄다.


결국 총구 앞에서 전개되는 할머니의 대사는 모음의 매끈한 연착륙(Nice people)에서 양순 파열음의 긴장(Pray, Bible)을 거쳐, 연구개와 치경 파열음이 난무하는 하층민 조음의 모방(I got to... I got!)으로 이어지는 정밀한 발성적 이행을 보여준다. 오코너는 관념적 수사학 뒤에 숨어 있던 상류층의 가식적 무늬(Manners)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타자의 무자비한 얼굴 앞에서 어떻게 미끄러지고 부서지는지를, 인물의 어휘 뿐만 아니라 혀와 입술, 성대가 겪는 ‘조음 부위의 물리적 낙하’를 통해 텍스트의 피부 위에도 각인해 놓았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무늬(manners)로 살핀 <A good man is hard to find>의 클라이맥스 new 독하 2026.10.14 11
404 오코너의 소설은 원문으로 읽어야... 2 독하 2026.10.13 83
403 플래너리오코너 원문과 번역문 비교 file 벨라 2026.10.09 74
402 플래너리 오코너 - 1900년대 초반의 미국 남부지역의 생활상에 대한 보고서 file 연이정* 2026.10.08 70
401 FLANNERY O'CONNOR 생애 발제 file 이보 2026.10.08 70
400 <불안세대> 9장, 10장 발제 2 독하 2026.09.16 265
399 <불안세대> 11장, 12장 발제 簞彬 2026.09.16 184
398 처음으로 무엇이 생긴 날 file 장숙藏孰 2026.09.12 201
397 얼핏 보기, 힐끗 보기 3 1 상인 2026.09.10 310
396 불안세대 2부 발제(김수연) file 벨라 2026.08.14 235
395 『내일을 위한 역사』 10장, "문명 붕괴를 피하는 방법" 발제 1 는길 2026.07.30 282
394 내일을 위한 역사_6장 발제 file 如一 2026.07.09 254
393 내일을 위한 역사 7장 발제 file 簞彬 2026.07.08 216
392 그것을 알아보는 file 는길 2026.07.04 310
391 결정론(우주)과 비결정론(생명): 모순의 합치 1 file 독하 2026.09.08 289
390 비평의 자리(교통 공간, 원초적 비평, 세속적 비평) file 孰定而匪 2026.07.02 244
389 쑥쑥(7) 쑥쑥에서는, file 장숙藏孰 2026.07.01 232
388 내일을 위한 역사 4장 발제("소셜미디어를 길들이는 방법: 인쇄문화와 커피하우스의 탄생") file 소영광 2026.06.27 251
387 내일을 위한 역사 3장. 소비주의에서 벗어나는 방법 file 연이정* 2026.06.24 291
386 중국과 중국어(4) 1 file 이보 2026.06.24 260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1 Nex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