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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버릇' (k 선생님)


'다르게, 쉼없이' (k 선생님)


k 선생님은 일상에서 '다르게, 쉼없이' 행하신다. 이를 신뢰하고 나 또한 일상의 변화를 주며 몸공부를 하고 있다. '왼손으로 마우스 사용하기', '왼손으로 젓가락질 하기' 등의 몸공부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표를 장대하게 정하지 말고 '이길 수 있는 (사소한) 습관'부터 시작하는 데 있다. 이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전복되는 과정이 누증되면,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바뀌는가'가 이 글의 관심사이며, 이를 뇌과학적으로 풀어보려는 것이 이 글의 취지다. 내가 공부하는 하나의 방식은 선생께서 먼저 얻은 '조각난 지혜(k 선생님)'를 몸으로 모방하고, 그 효험을 신뢰 삼아, 이를 과학적으로 재서술하는 방식으로서 이루어진다. 기저 의식에서 이루어지는 몸의 절차화된 습관은 차마 그악스럽다. 이는 '통상의 공부는 왜 실패하는가'와 '사람이 왜 쉬 바뀌지 않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몸이 바뀌려면 피질 기저에서 절차 기억으로 이루어지는 신경망의 패턴을 전복해야 한다. 그러나 수(십) 년 간 반복한 몸의 습관을 전복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이길 수 있는 (사소한) 습관'부터 바꿔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의 '응하기'(k 선생님)가 피질 기저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자극-반응'과 대뇌 피질에서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감각-표상'의 상호 작용에서 이루어진다면 이를 선용하여 '못난 꼴(Locked-in Ego)'을 '본(本, Coordinating Ego)'으로 바꾸어 나가는 간단없는 과정이 공부다. 이는 '자득'(k 선생님)이 부르는 메타화된 쾌락을 매개해야 하는데, 이 쾌락이 신경학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를 살피려 한다. 이는 크게 대별하면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대뇌 피질의 기능인 '운동 억제(Veto)' 회로의 가소성이 강화되는 단계다. 운동을 억제하려는 신경 회로가 두꺼워져 거대한 에고를 꺾는 저항값이 낮아지는 단계다. 둘째는, '자득'을 매개한 메타 쾌락의 형성과 이 신경 회로의 활성화 단계다. 어색함과 불편함이 동반되는 마찰의 과정을 도파민 분사의 전조로 인식하는 상위 보상 회로의 구축을 말한다. 셋째는 조향의 메타 절차가 기억되는 단계로 '이기는 버릇' 그 자체가 기저 의식의 패턴으로서 새겨지는 단계를 말한다. 


첫 번째 단계는, 전전두엽(PFC)-기저핵(Striatum) 회로의 가소성이 강화되는 단계로서 이를 위해서는 '못난 에고(Locked-in Ego)'를 제동하는 '운동 억제(Veto)'의 반복 사용을 요구한다. '다르게, 쉼없이'란 이를 위한 것이다. 에고는 '하던 대로', '마음대로' 작동하므로 이를 막아서는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운동 억제' 회로를 강화할 수 없다. 전전두엽과 기저핵을 잇는 신경 회로가 반복 사용되면, 기저핵이, '관성을 멈추고 우회로를 트는 조향 알고리즘' 자체를 하나의 덩어리(Pattern)로 엮어 '상위 절차'로 메타화한다. 대뇌 피질이 담당하는 '운동 억제'와 '조향'은 에너지를 상당히 소모하는 직렬 방식의 소프트웨어적 연산이다. 이런 '운동 억제'와 '조향'의 행위가 일상에서 반복되면, 뇌는 효율성에 입각해 이 프로세스 자체를 기저핵의 메타 회로로 이전시킨다. 메타 회로가 생성된 이후에는 운동을 조향할 때 전전두엽이 일일이 근육과 감각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기저핵에 새겨진 '조향 스위치'를 활성화하는 것만으로 거대한 에고의 궤적을 저항 없이 억제시킬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단계는, '메타 쾌락의 형성과 활성화 단계'다. 이는 뇌가 낡은 고착 상태(Locked-in Ego)에서 오는 저항 없는 일차원적 쾌락을 벗어나 신체적 마찰 과정과 운동 억제의 불편함을 상위 보상으로 전환해 내는 도파민 재배선 과정이다. 이 프로세스는 뇌의 보상 예측 회로에서 일어나며, 세 가지 절차로 진화한다. 이 진화 과정은 욕망이 의욕으로 진화하는 과정과 상통한다. 첫 번째 절차는, 마찰의 인지 및 예측 오류의 발생이다. 오른손으로 젓가락질하던 사람이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할 때, 뇌의 중뇌 변연계는 익숙한 '자극-반응' 회로가 막힌 것을 감지한다. 뇌의 기저핵은 편안함을 기대하고 예측했지만, 실제는 극심한 저항과 불편함이라는 물리적 마찰에 직면한다. 이때 뇌의 편도체와 전대상피질(ACC)은 이를 '오류'로 규정한다. 대개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저항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낡은 오른손(Locked-in Ego)'으로 회귀한다. 반면, 반복된 행위로 역치를 넘어서게 되면 '메타 쾌락'이 싹트기 위한 신경학적 전제 조건이 갖춰진다. 


두 번째 절차는, 도파민 보상 체계의 전환이다. 반복된 행위로 마찰의 저항을 뚫게 되면 '운동 억제'가 성공했다는 신호가 발생한다. 전전두엽의 이 신호는 복좌핵과 배측 선상체에 자극을 주어 도파민을 분사시키도록 촉발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뇌는 도파민 분사 알고리즘을 수정한다. 일차원적 '편안함'에 도파민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마찰의 과정을 '운동 억제'로 뚫어낸 바로 그 직후에 더 많은 도파민을 분사하도록 보상 체계를 전환한다. 마지막 절차는, 이 과정을 기억화해 자동화하는 절차다. 마찰의 과정과 도파민의 분사가 반복을 이루면 이는 효율성에 입각해 하나의 패턴으로 새겨지고 자극에 의해 자동으로 활성화된다. 낯선 상황, 어색한 동작, 혹은 에고가 꺾이는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올 때, 뇌는 이를 '피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곧 도파민'이 터져 나올 전조 증상으로 재해석한다. '신경적 오류-가치 전환-메타 쾌락'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인간은 관성적 도파민의 노예에서 벗어나 자신의 뇌와 신체를 능동적으로 조율(Coordinate)하는 공부길의 쾌락을 맛보게 된다.  


세 번째 단계는, 조향의 메타 절차 기억화 단계다. 일상에서 낡은 관성을 꺾어내는 미세한 신체적 '운동 억제'가 반복될 때, 자신의 못난 꼴을 멈춰 세우고 방향을 틀어 우회하는 알고리즘 자체가 뇌의 물리적 하드웨어인 기저핵에 상위 절차 기억으로 완전히 각인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특정 행위 하나('왼손으로 마우스 사용하기')를 새로 익히는 차원을 넘어, 고착된 에고(Locked-in Ego)의 관성을 무력화하고 상황에 맞춰 신경망을 조율하는 에고(Coordinating Ego)로 이행하는 신경학적 과정을 말한다. 삶에서 축적된 낡은 습관(절차 기억)이 유입된 외부 자극에 의해 저항이 낮은 고속도로를 타고 물리적 반응을 사지로 쏘아올릴 때, 대뇌 피질이 이 자동화된 출력을 감지하는 즉시 억제 신호로 막아 세운다. 눈 깜짝할 사이 운동 출력이 저지되며 뇌 내부에서는 익숙함이 멈춰 서는 '물리적 마찰'과 '공백'이 발생한다. 직렬 브레이크(Veto)가 걸린 상태에서 전전두엽은 활동 전위의 흐름을 고속도로가 아닌 우회로로 강제로 이동시킨다. 초기에는 에너지 소모가 증가해 불편함과 피로감이 수반된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멈추고(Veto), 신호를 우회시켜, 새로운 출력을 내보내는 '억제-조향'의 연산 패턴이 일상에서 무수히 되풀이되면, 이 프로세스 자체를 하나의 '상위' 신호 패턴으로 묶어서 채택하기 시작한다. 채택이란 주체성을 띤 말을 과학적으로 바꿔 말하면, 저항이 낮아져 전복되었다는 의미다. '이기는 버릇'으로서 각각의 행동이 패턴으로서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부 회로(고속도로)의 출력을 차단하고 신호를 억제하고 조율하는 우회 알고리즘 자체'가 기저핵이라는 하드웨어적 절차 기억으로 새겨진다. 이 과정이 끝나면, 전전두엽의 연산 에너지가 비약적으로 절감된다. 대뇌 피질이 일일이 개입하여 근육을 조정할 필요 없이, 기저핵에 각인된 '조향 스위치'를 켜는 것만으로 하부 회로의 전압이 즉각 재배치 된다. 뇌의 '운동 억제(Veto)' 임계값이 낮아지면서 일상의 미세한 저항을 넘어 트라우마, 습속, 본능적 공포라는 거대한 에고의 관성이 밀려와도 눈 깜짝할 사이(0.1초 안팎)에 매끄럽게 우회할 수 있는 신경학적 유연성이 확보된다. 


'다르게, 쉼없이'를 행하며 '이기는 버릇'을 몸에 익힌다는 말 속에 앞서 설명한 신경학적 변화가 내함된다. 몸이 쉬 바뀌지 않는 사유가 여기에 있다. 공부는 머리로 관념을 습득하거나 이론을 언어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이 아니다. 몸을 바꾸는 공부는, 관성에 갇힌 에고(Locked-in Ego)를 멈춰 세우고 주어진 상황에 맞춰 조율된 에고(Coordinating Ego)를 뇌와 신체에 물리적으로 각인하는 '물리적 마찰'이 필수로 동반되기 때문이다. '듣기'와 '낭독'을 거쳐 타자의 말과 소리가 청각 피질과 조음 기관을 통과해 물리적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닫힌 뇌에 타자성이라는 '외부 노이즈'를 강제로 삽입한다. 이 과정이 전전두엽의 '운동 억제(Veto)'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리게 되는데, 이는 공부의 시작이다. 이를 기반으로 일상 속 생활 양식을 미세하게 거스르는 공부를 반복해야 한다. 거대한 트라우마나 묵은 습속을 단번에 꺾으려는 시도는 실패하기 십상이다. 대뇌 피질의 억제 임계값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변화는 가능한 변화의 축적 속에 도래한다'.  


'공부(工夫)'의 본뜻은 관념적 유희가 아니다. 공부는 장인의 길과 같이 실천적이라는 말이다. 이는 '다르게, 쉼없이' 시간과 공을 들여 몸이라는 물리적 배치를 바꾸어 내는 노동을 말한다. 서재나 연구실이나 상담실에서 자신의 꼴을 깨달았다고 해서 몸이 바뀌지 않는다. 머리로 아는 깨달음(Software)을 뼈와 근육의 절차로 각인(Hardware)하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행할 때 밀려오는 어색함, 불편함, 생소함을 불쾌한 오류로 규정하고 낡은 습관으로 도망치게 되면 몸은 바뀌지 않는다. 진짜 공부는 이 마찰의 순간에 뇌를 멈춰 세우고 '다르게, 쉼없이' 행하며, '이기는 버릇'을 체화하는 데 있다. '욕망의 계선'을 넘어야 '하이얀 의욕'(k 선생님)이라는 꽃이 핀다. '공부는 오래하는 것'(k 선생님)일 수밖에 없는 사유가 여기에 있다. 잠시 잠깐 공부 자리를 소비하는 행태로는 '꽃은 피지 않는다.' "지혜를 남에게서 건네받을 수 없고, 가장 훌륭한 스승에게 접근한 제자도 필경은 '뒷전'에서 배운다"(k 선생님)는 말처럼, '메타화된 쾌락'을 얻는 과정을 오롯이 스스로 행하여 '자득(自得)'하지 못하면 공부길에서 낙오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