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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9 22:27

도로시(道路示)

조회 수 290 추천 수 0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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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191029_213537683.jpg


'타이밍을 아는 것이 지혜'라는 그 말을 오래 붙잡고 싶습니다.

때와 장소를 아는 것이 지혜라는 그 말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 질문이

부끄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사용할 것인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걸 아는 것이 타이밍인것인지

그걸 아는 것이 지혜인것인지


궁금했던 질문들이 부끄럽고

꺼냈던 말들은 담을 수 없으니 다시, 부끄럽습니다.

무지에도 힘이 있는걸까요


알아간다는 것은 힘이 생기는 것일까요

힘이 빠지는 것일까요


지난 토요일 시독에서

<On the Move>를 읽으며

'make'라는 단어에 (어떤 장소위치로 힘들게) 가다[이르다] 라는 

뜻도 가진다는 이야기가 남아서, 자꾸 맴돕니다.


'공부로 걷는다는것'

'타이밍',

 '때와 장소',

 '지혜'

'make'까지....


조금, 아주 조금 힘이 빠지는 날입니다.

 

  • ?
    토우젠 2019.10.30 20:46
    “삶을 견디는 것은 모든 생물의 첫번째 의무다.” (프로이트)
    지금도 가끔 그러지마는 내가 했던 말들을 취소하느라 허공에 대고 손사래를 친다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든가 막 ,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응? 뭐, 그렇게 하곤 합니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에 ‘미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고, 나의 부끄러움도 한 숨을 쉬어가곤 하는 것인데, 부끄러운 자의 머리위에 하늘은 조금 더 푸를 것 같기도 하고, 막, 그렇습니다.
  • ?
    敬以(경이) 2019.10.31 21:26
    <공부라는 활동이 단지 인식론적 재능으로 환원될 수 없고 그것은 우선, 그리고 워낙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발견(!)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이 발견에 근거해서 위기를 보다 슬금하게 넘어가는 실천적 미립(경험을 통하여 얻은 묘한 이치나 요령)을 얻는게 중요하다 - 공부론, p.88 -

    토우젠의 댓글을 보니 위의 글이 더 잘 보이고 막, 그렇습니다.
  • ?
    허실 2019.10.31 23:40
    make는 만드는 것이고
    하게하는 것이고
    일으키는 것이고
    가는것이기도 하지요.

    make를 소리내던
    경이의 밝음이 제게도 깃들어 make 하게 합니다.
  • ?
    敬以(경이) 2019.11.01 10:23

    저는 슬픔이 많은 사람인데,
    밝음이라는 말이 제 이름옆에 오게 만든(make)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 지는 것 같습니다.

  • ?
    遲麟 2019.11.05 08:59
    *
    정신분석 자료는 아직 불완전하고, 그것으로는 명쾌하게 해석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인간이 달성한 이 위업의 기원에 대해 추측해 볼 여지는 있다. 이 추측은 공상적으로 들리지만, 원시인은 불과 마주치면 오줌 줄기로 불을 꺼서 불과 관련된 유아적 원망을 만족시키는 습관이 있었던 것 같다. 전설에 따르면, 높이 솟구쳐 오르며 날름거리는 불길은 남근의 상징으로 여겨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오줌으로 불을 끄는 것---소인국을 찾아간 걸리버와 라블레Rabelais의 가르강튀아도 이 주제로 돌아가고 있다---은 남자를 상대로 하는 일종의 성행위이고, 동성인 경쟁자에 대한 성적 권위를 즐기는 것이다. 이 욕망을 포기하고 불을 살린 최초의 인간은 불을 갖고 돌아와서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성적 흥분이라는 불을 끔으로써 불이라는 자연력을 길들인 것이다. 따라서 이 위대한 문화적 정복은 본능을 자제한 보상이었다. 게다가 집안의 화덕에 갇힌 불을 지키는 일은 여자가 맡았다. 여자의 해부학적 구조는 남자와 달라서, 오줌으로 불을 끄고 싶은 욕망에 굴복하기가 애당초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을 해 보면, 야심과 불과 요도성애(尿道性愛)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입증되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프로이트 <문명에 대한 불만> 주24

    *
    슬픔도 불길이었다네
    푸르고도 투명한 불이지
    사람들은 눈물을 흩뿌리네
    축제라네

    밤이 몸을 일으키지
    검은 장막을 펼치지
    불이 꺼지니까

    한 사람은 있어
    불을 가져오지
    집으로 가져오지

    몰래 가져와야 해
    사람들은 잠들고 싶어하니까

    불을 길들이고
    불을 잠재우고
    불을 깨우고

    "최초의 인간"이라네
    푸른 불꽃은 그의 슬픔이지

    빛이라네
  • ?
    희명자 2019.11.07 11:56

    "최초의 詩" 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당신의 슬픔은, 인간의 불꽃은, 어째서 여태 생생한가,

  • ?
    敬以(경이) 2019.11.07 23:57
    불꽃을 살려 빛을 만든 그들처럼
    詩도 누군가를 살릴수 있을까요

    시의 최후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상상도 해봅니다.
  • ?
    敬以(경이) 2019.11.07 23:37
    울고 있느라 슬픔 한번 제대로 못가져왔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댓글을 보니 그 슬픔 가져와 차분히 응해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