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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노인과 한 젊은이

 

N) 어느 날, 어느 곳에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아득히 지난 일들에 관해 환담하며 나란히 산보하고 있었다. 문득 소크라테스는 집요해 보였지만 그 언설은 정밀했고 주도(周到)하였다. 공자는 그 하아얗게 성긴 수염만큼이나 말이 평담(平淡)하였으나 한편 늘 심장(深藏)한 구석을 지니고 있었다. 공자는 석 자() 발 앞을 내다보면서 눈을 반 쯤 감은 채로 걸었고, 소크라테스는 더러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어대는 열변을 토하기도 하였다. 두분은 노인이었으나 그 기세는 엄정하였고 언변은 도도(滔滔)하였다. 그때 '거세만이(擧世晩耳)'라는 숲 속으로부터 부활한 예수가 나타났다. 그는 아직도 삼십대 초반의 젊은이였다.

 

(세 배역은 그 음성이나 말투로 뚜렷이 구분될 수 있도록 발성해야 한다. 참고로, 소크라테스는 '흐흐', 공자는 '...', 그리고 예수는 '하하', 라고 서로 다른 웃음/謦咳를 발한다.)

 

J) , 두 분 선생님들, 여기에 계셨군요. 소크라테스님의 음성이 여전히 강강(剛剛)하시니 그 영혼의 울림조차 완연해지는군요. 또한 공자님께서도 위이불맹(威而不猛)의 태도가 한결같으시니, 두 분의 어울림은 천세(千歲)의 유택(遺澤)이 되겠습니다. 안녕들 하셨습니까?

 

C)안녕하시오. 예수님. 변덕으로 쏠리는 세정(世情)과 달리, 젊은 분이 이 노인들을 스스로 찾아주니 더욱 반갑소이다.

 

S)흐흐, 예수님! 어서 오시오. 로마인들의 갑주(甲胄)와 장창(長槍) 사이에서 고생이 많았지요? 그래도 원념(怨念)의 기색 하나 없이 맑은 얼굴이니, 참 다행이고 보기가 좋군요.

 

J)하하, 소크라테스님. 평생 외모에 무감하셨고, 육체적으로도 초인적이셨던 분께서 굳이 제 얼굴이 맑다고 하시니 되려 제가 민망합니다. 소크라테스님이야말로 정치적 간계와 종작없는 대중의 쏠림에 쫓겨 연로한 때에 많은 수모를 겪으셨습니다.

 

S)흐흐, 수모라니요. 수모야 예수님이 겪었지요. 나와 공자님과는 달리 예수님이야말로 가르치고 돕던 제자들마저 제 살 길을 찾아 꽁무니를 내빼면서 배은망덕의 꼴을 보였으니! 십자가 위에서 내려다 보이던 세속의 모습이 얼마나 비루하고 슬프던가요?

 

J)아아, 세속이 희망찬 곳이라면 우리같은 이상주의자들이 고생을 자초할 노릇이 아예 없었겠지요인생이야 워낙 어긋남으로 비틀어진 골목이고 심지어 배은망덕의 골짜기로 빙퉁맞은 곳이니까요. 그래도 공자님의 말씀처럼 '군자라면 하늘과 인간을 원망하지 않는 법(君子不怨天不尤人)'이 아니겠습니까.

 

C).... (길고 가느다란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두 분은 나와 달리 군중들의 함성에 떠밀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으나........말하자면 군중이 한 덩어리가 되어 몰밀어가는 자리를 한껏 벗어나는 태도를 보여주셨고.........이로써 인간의 정신이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경지를 몸소 열어보여주셨으니.........개인으로서는 고초를 겪으셨으나, 인류의 자리에서 보자면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서 훗날의 밝은 빛이 되신 셈이지요.......

 

S)흐흐, 공자님께서 우리들의 고초와 수모를 이야기하셨지만, 실은 공자님 자신의 일생도 결코 순탄치 않았지요. 더구나 나야, 내가 평생 살던 아테네 폴리스의 질서와 그 조화로운 제도의 덕을 누리면서 살아왔을 뿐이지요. 그리고 예수님도 카이사르와 빌라도의 체제 저편에서, 형식으로 흘러가던 유대교의 체제를 극복하고자 열정과 지혜를 다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기려 했어요. 그렇지만, 공자님은 조금 다르게 운신하셨던 듯하군요천하를 바삐 주유(周遊)하면서 자신의 학식과 지혜로써 백성들을 돕기 위해 한결같이 출사(出仕)하기를 바랬고, 그같은 모색의 와중에 역시 적지 않은 실망과 고초를 겪었으니까요. 흐흐."  

 

J)그렇습니다. 공자님의 제자인 자로(子路)의 전언에 따르면, 공자님이야말로 '안되는 줄 알면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知其不可而爲之者)', 그래서 스스로 고초를 자초한 분이 아닙니까?

 

C), ...그 점에서야 우리 셋 다 비슷하겠고, 어느 정도는 이상주의를 좇은 것이니까요. 어느 누구도 재물에 욕심을 부리고 세속의 권세을 얻고자 의욕을 낸 게 아니었지요........내게 있어서 출사(出仕)의 뜻이란,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는 고래의 이념을 스스로 따르고자 애쓴 것뿐이니까요........그러니까..음음, 출사라고 하는 것은 수신제가 이후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해서 백성들의 삶을 낫게 하려는 정치적 매개에 불과하였지요.......

 

J)외람됩니다만, 돌아보면 공자님께서 평생 출사하시느라 애쓰신 흔적들이 한편 사뭇 안타깝게 보이기도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공자님께서는 내성(內聖)의 놀라운 경지를 이루신 분인데, 굳이 왕과 제후들의 눈치를 살피시면서, '안되는 일'을 위해 진력하신 게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결과적인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결국 공자님께서는 출사를 위해 천하를 주유(周遊)하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만년에 실망 중에 귀향하셔서 제자들을 키우고 또 지혜의 말씀을 남겨놓으신 일로 해서 후대에 큰 은택을 남기시지 않으셨습니까?

 

C).... 그럴까요. 되는 일은 역설적으로 안되는 일 속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영향사 속에서도 어느 정도 입증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

 

S)하하, 예수님처럼 치병(治病)이나 사악한 귀신들을 쫓아내는 등의 기적을 행하면서, 그 모든 관심을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할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가 있어요. 젊은 탓인지 몰라도, 예수님의 길은 너무 좁고 급진적으로 보이는군요. 내가 보기에는, 공자님의 관심과 열정, 그리고 지혜와 인의(仁義)가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영역은 결국, 그 사이길이지요. 즉 인륜(人倫)이 지배하는 사람의 길, 그러니까, 기적의 길도 아니고 초월의 길도 아닌 그 사잇길, 말이지요.

 

C).... 남의 삶과 생각을 제대로 읽어내는 게 지난지사이긴 해도, ..., 나 역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가만히 살피노라면, 그 젊은 열정과 용기를 가상히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우리네 인생의 정한 자리인 인륜을 제대로 배려하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기우가 생기기도 하지요.

 

J)하하, 제가 식민지 백성들의 궁핍하고 억압당하는 생활에 깊이 공명한 나머지 얼마간 열정이 지나쳤고그래서 일면 수난을 자초한 인상을 주기도 하였으리라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저는 인륜의 근간이나 그 초월론적 토대를 먼저 근심해야 한다고 확신했던 것입니다삶은 삶 그 자체로서만 성립할 수 없지 않을까요? 저는 당대 식민지 민초들의 회색빛 삶에 희망을  이식하고자 다소간 급진적인 공동체 운동을 벌일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세속적 인륜의 성격이나 그 위상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된 것입니다.

 

S)흐흐. 예수님이 속해서 살아왔던 당대 유대인들의 현실을 고려하자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없지요. 척박한 사막의 땅에서 대대로 강성한 이웃들과 갈등하면서 어렵사리 민족 공동체를 꾸려온 이들이니까요. 어쩌면 민족종교가 제시하는 초월적 지평 속에서 희망을 간직해오는 방식이야말로 약자들이 자신의 운명을 갈무리하는 가장 쉬운 길이었을 겝니다. 내가 보기에는 예수님의 급진성에는 우선 젊은 열정과 의협심도 있었으리라고 봅니다. 흐흐. 그러나 대화와 타협, 사회적 제도와 문화를 통해 당대의 모순과 부조리를 개선하기보다는, 다양하게 얽힌 억압적 현실을 초월적 신앙의 차원을 통해서 일시에 타개하려는,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 특유한 종교적 관심의 산물로 보여지기도 합니다. 가령, 이런 식의 초월적 지향은 내가 속했던 아테네 폴리스라거나, 혹은 공자님이 활동했던 춘추전국 시대의 동아시아 대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으니까요.

 

J)제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이른바 초월적 급진성을 외친 것은,  분의 경우와는 매우 다른 당대 현실에 대한 이해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유대 식민지 지역은, 공자님처럼 인의(仁義)의 도()를 펼 수 있는 제도와 권력을 찾아 천하를 배회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님의 경우처럼 이미 당대 최고의 정치사회적 제도를 구현한 폴리스도 아니었지요. 외부적으로는 세계 최강의 로마군대가 우리를 압살하듯 지배하고 있었고, 속으로는 구차한 생존을 위해 스스로 굳어져 가는 종교제도적 타락의 현실이 엄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이중적 굴레를 일시에 벗어나기 위해 급진적인 해법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급진성의 첨병이 되는 길을 좇아서 제 자신을 희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C).... 그 점에 관해서는 나나 소크라테스님도 넉넉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불과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 죽음을  넘어서 인류의 기억 속에 널리 사랑받아온 사실은, '자신의 에고를 넘어서 이윽고 인()을 이룬' 행위의 아름다운 결말이지요. 다만, 나로서는....... 그 인()이 지향하거나 혹은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자리를 인륜(人倫)이라고 여기고 있기에, 예수님의 활동과 그 사랑의 정신이 지나치게 종교초월적으로 치우친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었던 것이지요. .... 말하자면 가족이라는 인륜의 토대를 무시한 채 사랑의 방향이나 가치를 구성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점이지요.

 

S)흐흐. 공자님이 말씀하시는 인륜은 사람살이의 조건과 한계를 따지고 헤아릴 경우에 놓지지 말아야 할 중요한 출발선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인륜의 차원에서만 예수님의 행위를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보이는군요. 예수님의 행위를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 본다고 하면, 그 살신의 동기 속에는 이미 당대의 정치적인 배경이 작동하고 있었고, 또 유대민족의 종교적 정체성과 갈등하면서 보편적 영성을 지향하는 움직임도 명백하였으니까요. 다만 나로서는 공자님의 인륜이 터하고 있는 가족은 너무 사적으로 흘러 공공적 유대에 이르지 못하고그리고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는 공적 현실에 기초한 공동체의 합리적 구성에 이르기에는 다소 관념적인 인상을 주는군요.

 

J)하하, 역시 소크라테스님의 관심영역은 주로 정치적 합리성과 공적 미덕이군요. 손자뻘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국가는 본성상 가족이나 개인에 앞선다는 주장이시겠군요.

 

S)흐흐. 내가 살던 아테네의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의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노릇을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J)하하, 그렇군요. 그리고 공자님께서도 수신제가(修身齊家)에 이어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말씀하셨고요. 우선 우리들 각자의 역사사회적 배경이나 삶의 정황이 서로 상이한 사실이 지적되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다시 말씀드리면, 제 관심의 핵은, 과연 현실은 현실만으로 족한가, 이 땅 위의 삶을 구제하는 차원이 세속의 발명품만으로 충분할까, 하는 의문에 있습니다. 인간의 기원이나 그 미래적 희망을 고려하지 않은 채, 현실 속의 인륜이나 공적 합리성을 챙기는 것만으로 행복에 이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인 셈이지요.

 

C).... 사람으로서 살아가려면 서로 어울려야 하고, 이 어울림의 바탕은 무엇보다도 인륜이지요. 응당 인륜에는 고루하고 보수적인 점도 있긴 하지요. 그러나 인륜을 손쉽게 넘어서려는 운동은 비록 그 겉모습이 매력적인 급진성을 띨 수는 있겠으나, 이 땅 위에서의 생활을 배려하고 돌보는 책임윤리의 면에서는 문제가 있어요. .... 예수님의 종교 공동체 운동은 가족적 가치와 인륜, 그리고, 아무래도 지속가능한 삶의 형식에 대한 합리적인 논의가 부족해보이는군요.

 

S)흐흐, 공자님. 예수님이 활동하던 당시의 팔레스타인 땅이나 그 여건이 아무래도 우리들의 시대와 장소에 비하면 조금 급박하고 옹색하였으니, 이해할만도 하지요. 30대 초반의 예수님이 로마군인들의 압제와 바리새인들의 허식을 목도하는 마당에서 공자님의 중용(中庸)을 외고있을 수는 없었겠지요.

 

C).... 중용의 도는 생활의 도입니다. 사람의 일상생활이 중()과 용()에 의해서 그 잣대와 지남(指南)을 얻지 않습니까? .... 비록 사세가 급작스럽다고 하여도 시중(時中)이 있고, 또 하다못해 위기를 건지는 권()의 도리라는 것도 있지요. 오늘 회동에 부득이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예수님처럼 새로운 종교를 개창하신 싯다르타님도 중도(中道)를 통해서 해탈에 이르는 도리를 말한 바 있지 않습니까? .... 이미 인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따져보았지만, 예수님의 삶과 사상이 얻은 보편성은 아무래도 생활밀착형은 아닌 듯해 보이는군요. 허나, 후세에 보편성을 얻을 사상은 역시 생활에 차분히 박진해야 하지 않을까요?

 

J)하하, 공자님의 말씀에 한편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군요. 공자님의 발씀처럼, 불어괴력난신(不語怪力亂神)하고, 배운 바를 모두 예()로써 집약하고, 또 중용의 도를 실천하면서 인륜을 밝히는 일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나라에 태어나서 그러한 가르침을 얻고 이웃과 더불어 화평하고 어진 삶을 살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혹은 소크라테스님의 경우처럼 합리적인 제도와 풍성한 문화를 꽃피운 땅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지혜를 모을 수 있었더라면, 역시 그 못지 않게 좋았을 테지요.

 

C)....

 

S)....

 

J)실례지만 하던 말을 마저 하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고, 번듯한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지요. 제게 있던 것은 기질처럼 주어진 영성과 상상력, 내 뜻대로 부릴 수 있는 언변, 그리고 병들고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따뜻한 측은지심뿐이었지요. 더욱이 당시의 우리 땅은 세계최강의 로마군대가 지배하던 식민지였고, 우리 민족종교의 지도자들은 겉으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속으로는 예언자적 감성을 잃고 썩어가고 있던 참이었으니까요 제가 살던 땅은 그리스의 아테네가 아니었고, 제가 살던 나라는 예치(禮治)와 덕치(德治)가 중화도 아니었답니다. 아아, 젊은 날의 제 선택은 일종의 운명이었습니다. 저는 그 운명 속에서 신의 뜻을 읽었고, 십자가에서 혼절할때까지 순명하였던 것이지요.

 

C)....

 

S)....

 

 


  • ?
    찔레신 2020.02.20 19:01
    *이 라디오 대본은 속속 72회(3월 14일) 조별토의의 교재(일부)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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