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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래의 책들에서 인용한 것으로, 8월 중에 있을 헤겔강의의 텍스트가 됩니다. 헤겔강의는 2~3회 정도 계속될 예정이며, 얼마 전에 공부한 칸트, 그리고 내 책 <집중과 영혼>에 개진된 몇몇 주제와 관련해서 들으면 좋습니다. 헤겔강의가 있을 동안에는 그간 계속해온 '지적 전기물의 공부'를 잠시 중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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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헤겔과 그의 시대>(월트 카우프만)

B. <Hegel>(F. Beiser)

C. <헤겔철학과 현대의 위기>(찰스 테일러)

D. <헤겔>(찰스 테일러)

F. <헤겔, 또는 스피노자>(피에르 마슈레)

G. <정신현상학>(헤겔)

F. <Wilhelm Meister>(J.W. von Goe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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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학이란 사유 속에서 파악된 그의 시대다(헤겔)

1-1. Hegel is often given credit for introducing historicism into philosophy, for making it integral to espistemology. It is very important to see, however, that, for all his historicism, Hegel refused to accept its relativist sonsequences.(B)

1-2. 철학은 그 자체로 대중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도 아니며 대중을 위하여 마련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성에 대해, 따라서 더 나아가 인간집단의 지리적-시류적 제한을 의미하는 건전한 상식에 전적으로 대립함으로써만 철학이 된다...철학은 실제 민중이 철학으로까지 고양될 가능성을 인정해야지 스스로 민중 쪽으로 내려가서는 안된다. 그러나...무엇에 대해서도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무엇이라도 자기에게는 사정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중이 형성되어 있는 자유와 평등의 시대에는 가장 아름다운 것과 최선의 것조차 평준화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A)


2. 무엇보다도 헤겔은 독일문학의 위대한 시대를 모두 체험했다. 레싱은 1729년에, 괴테는 1749년에, 실러는, 1759년에, 그리고 헤겔은 휠덜린, 베토벤과 더불어 1770년에 태어났다. 헤겔의 이런 시절에 괴테의 짧은 질풍노도의 시대의 걸작인 <괴츠(Götz)>와 <베르테르(Werther)>가 출간되었고, 헤겔이 종교에 대한 자신의 초기저작에서 다른 어떤 작품보다 자주 인용했던 레싱의 <나탄(Nathan)>도 그러했다. 괴테와 실러의 원숙한 작품이 모두 출간되었을 때 헤겔은 그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였다. 괴테의 <파우스트, 단편>가 발표되어 비록 불완전한 형태였지만 그때까지 씌어진 최대의 독일희곡으로 환호 속에서 받아들여졌을 때 헤겔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A)


3. 헤겔은 칸트와 낭만주의를 단일한 체계 내에서 통합하려고 하였다.(A) 

3-1. It is indeed a very common mistake of Hegel scholarship to regard ideas as disctinctly Hegelian that are in fact

common to the whole romantic generation. Hegel's absolute idealism, his organic conception of nature, his critique of liberalism, his communitarian ideas, his vitalized Spinozism, his concept of dialectic, his attempt to synthesize

communitarianism and liberalism---all these ideas are sometimes seen as uniquely Hegelian; but they were part of the common romantic legacy.(B)

3-1-1. Hegel's grand achievement was to synthesize the Aufklärung with some of the currents of romanticism, creating a romanticized rationalism or a rationalized romanticism.(B)

3-2. 1770년대의 젊은 독일 지식인들에게 이 두 이념, 즉 표현과 철저한 자유는 커다란 영향을 발휘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정체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만들었던 독일 사회의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낡은 질서가 붕괴하고 프랑스 혁명(1789)의 충격으로부터 새로운 절서가 대두하고 있다는 느낌에 의해 더욱 배가되었다...(그리고, 프랑스가 정치혁명의 모국이라고 한다면, 위대한 정신혁명은 독일 이외의 어디에서 수행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 두 이상, 즉 철저한 자유와 표현적 충만을 통일하기를 희망했다...이에 칸트 사상의 비판적 성격에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 ~ 1803)는 비호의적이었다...헤르더는 칸트의 선험적 연구에서 주체를 분열시키는 또 하나의 이론을 보았을 뿐이었다. 칸트는 헤르더의 역사철학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으며, 표현설의 강력한 전개에 대해 거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이 두 경향의 통일이라는 과제를 떠맡은 사람들은 그들의 후계자들, 즉 헤겔을 포함한 1790년대의 세대였다.(C)

3-3. 사유와 감성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철저한 자유와 종합적인 표현이라는 두 개의 이상 사이의 분열로서 예리하게 표현되었다. 이 대립은 한편의 사유-이성-도덕성, 그리고 다른 편의 욕망-감정 사이의 대립, 가장 충실한 자기 의식적 자유와 공동체적 삶 간의 대립, 혹은 자기의식과 자연과의 친밀한 교류 사이의 대립이었다. 또한 이것은 자연을 관류하는 무한한 생명으로부터 유한한 주체성의 분리와 칸트의 주관, 그리고 스피노자 철학의 실체간의 대립이기도 했다.(C)

3-4. 인간은 오히려 우주적 정신의 자기표현---그것의 최초의 자기표현은 자연이다---을 완결시키는 데 있어서 매체다...그러나 이는 인간을 넘어선 어떤 초월적 체계에서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우주적 정신은 인간에 있어서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에 자연이 정신을 즉 자기의식을 실현하는 것으로 향하는 반면에, 의식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연을 정신으로서 또한 자기자신의 정신과 동일한 것으로 보려고 하는 자연 파악을 기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들은 새로운 자기이해에 도달한다. 그들은 자신을 우주의 개별적 단편이 아니라 오히려 우주적 정신의 매체로 보는 것이다...그리고 이 두 가지는 인간의 근본적인 정체성이 정신의 매체라는 데 있는 이상 서로가 서로를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헤겔이 발전시킨 것도 결국은 이러한 종류의 사상이다. 비록 헤겔의 정신(Geist)이 종종 '신'이라고 불리워질지라도 또한 헤겔이 자신은 기독교 신학을 명료하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을지라도 그것은 전통적 유신론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들과 전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신이 아니며...이와 반대로 그것은 인간을 통해서만 정신으로서 현존할 수 있는 정신이다.(C)

3-5. 우리는 우리의 가장 근본적 본성이 우리가 '정신'의 매체라는 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완전한 통찰을 획득할 때 우주에 관한 우리의 인식도 일변하게 된다...또한 우리가 완전한 인식에 도달하면 '정신'도 또한 자신의 가장 완전한 자기 표현에 따라서 자유에 도달한 것이 된다.(C)

3-6. 가장 완전한 자율과 최대의 표현적 통일을 결합하려는 열망은 헤겔의 철학적 노력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 점에서 그는 동시대의 낭만주의자들과 일치했다. 헤겔의 차이점은 헤겔이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취했다는 데 있다.(C)

3-7. 근대 혁명 이후에 절대적인 것은 인간의 자유 그 자체가 되었다. 이런 절대적 자유에의 열망은 여러 이익단체들의 조정을 위한 도구로서의 공리주의적 사회에 대한 깊은 불만의 산물이다. 공리주의적 모델의 사회는 정신적 사막, 혹은 기계로서 체험되며, 정신적인 것을 표현해주지 못한다. 그 사회 속의 규제와 훈육은 절대적 자유를 원하는 이들에게 견딜 수 없는 억압으로 느껴진다...헤겔은 이러한 열망을 이해하고 있었으며, 근본적 자율에의 요구를 이론의 중심 부분으로 삼았다. 그는 루소로부터 마르크스를 거쳐 전개되는 절대적 자유에의 이런 열망의 발전사에서 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헤겔은 루소와 칸트의 근본적 자율에의 요구를 헤르더에게서 유래하는 표현주의적 이론과 결합한 것이며, 이것이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불가결의 배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근본적 자율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였다.(C)

3-7-1. 마르크스주의를 내가 표현주의적 전통이라고 불렀던 것에 위치지워 해석하는 데에 반대할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주의는 그 이상이지만, 마르크스주의에서 이 차원을 捨象해 버리고도 이 마르크스주의와 그것이 갖는 영향력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어느 누구도 청년 마르크스가 헤겔을 통해 표현주의적 열망을 계승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1840년대 초기에 이 열망은 급진적 계몽주의와 결합해 대단히 강력한 마르크스주의적 종합을 낳게 되었다. 청년 마르크스는 우선 인간은 자신의 의도대로 자연을, 그리고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고 생각한 점에서 급진적 계몽주의의 계승자다. 그리고 현존 질서의 비인간성을 비판하고 있는 점에서도 계몽주의의 계승자다...그러나 마르크스가 착취와 압제의 근거로 비난하는 신화는 낡은 종교가 아니라 고전 경제학자들의 이론에 반영된 원자론적, 공리주의적 계몽철학이다. 확실히 종교는 오히려 비교적 가볍게 취급되고 있다. 왜냐하면 종교는 '냉혹한 세계의 감성, 인간을 桎梏하는 사슬 위에 핀 꽃, 부정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불가결한 위안'인데, 그러한 부정한 세계는 실은 역사의 현 단계에서는 부르주아 공리주의 철학에 의해 직접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의 가공할 위력은 그가 이러한 급진적 계몽주의를 표현주의적 전통과 결합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에 따르면 자연의 변용은 인간의 변용이다. 인간이 소외를 경험하는 이유는, 계급 사회에 있어서 그의 노동과 그 생산물 즉 변형된 자연이 그로부터 박탈되고 이를 통해 그에게 저항하고 대립하면서 그 자체의 (자립적인) 원동력을 갖는 소외된 현실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외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표현주의적 사상에 기초를 둔다...따라서 마르크스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근대 문명에 관한 표현주의적 비판의 공통적인 주제들을 거의 모두 수용하면서, 표현을 무시하고 소유를 인간의 주된 목표로 삼는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C) 

3-8. "보편적-절대적 자유는 어떠한 적극적 사업도 행위도 낳을 수 없었다. 거기에는 부정적인 행동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것은 파괴의 광포에 지나지 않는다...이러한 부정적 자유가 실현하기를 바라는 것은 오직 추상적 이념 이외에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정신현상학>)  헤겔의 견해에 따르면, 테러, 혹은 파괴적 광포는 절대적 자유에의 추구에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다...따라서 그것은 파괴 속에서만 그 자신에 충실하다고 느낀다...따라서 프랑스 혁명에 대한 헤겔의 분석은 그것을 계몽주의의 궁극적 귀결, 그것이 갖고 있는 내적 모순의 극치라고 보고 있다.(C)

3-9. 많은 사람들이 이 근대사회의 부적합성에 대해 심각하게 느끼고 있으며, 이 느낌은 근대사회에 대한 낭만주의적 저항에 근원을 둔 것이다. 18세기 말 이래 근대문명을 俗惡하며 凡庸과 순응을 낳고, 소심한 이기주의적 인간을 배양하며 독창성과 자유로운 표현 그리고 모든 영웅적 덕목들을 질식시키는 것으로, 또한 비루한 안일(erbärmliche Behagen)에 집착하는 것으로 고발하는 불만 세력이 끊임없이 존재해왔다. 이러한 종류의 비난 또한 예감은 가장 뛰어난 또 가장 민감한 정신의 소유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리고 부르주아 문명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많은 저술가들과 예술가는 말할 것도 없고, 드 토크빌,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이 상당히 온건하고 건설적인 비평가들로부터 니체와 소렐과 같은 격렬한 아웃사이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상 조류에 의해서 제기되었다...이러한 비판적 조류는 18세기 말의 표현주의적 사조에 그 근원을 두고 있으며, 또 그것이 아직도 계속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근대적 정체성이 거의 확립되지 못했다는 것을 반영한다...심각한 표현주의적 불만은 파시즘의 득세에 일조했고, 또 현대 서구의 여러 나라들의 '체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항의 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계속된 낭만주의적 혹은 표현주의적 저항이 왜 헤겔의 이상에서 자신의 철학적 표현을 발견할 수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 해답의 하나는 그것이 저항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헤겔의 통찰은 정신과 화해한 세계에 대한 것이지만, 낭만주의적 정신은 근대사회와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C)

3-10. 성장하는 근대사회의 일원으로서든 혹은 사회 해체의 목격자로서든간에 낭만주의자들의 후계자들은 소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역사를 '정신'의 전개로 볼 수 없다. 동시에 그들은 자연을 더 이상 '정신'의 발현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근대과학 기술의 증대하는 자연지배는 끊임없이 확대되어 가는 과학 지식의 영역과 함께 18세기 말의 표현주의적 사조의 절정인 정신적 힘들, 또는 신적 원리의 현현으로서의 세계라는 견해를 추방해 버렸다. 레싱을 유혹하고 헤르더를 거의 압도하였으며, 괴테와 낭만주의자들의 공유재산이었던 '표현적 범신론',  즉 질풍노도의 시대의 '스피노자 주의'는 근대문명의 확립에 따라 그 의미를 잃게 되었다.(C)

3-11.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이 우주적 정신의 담지자이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자율성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정신과 정신의 자기 실현에는 이성을 위한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그의 세대 중에서 헤겔만이 아주 명료하게 보았고, 또 끝까지 유지했던 중심적 통찰이다. 이에 반해 이런 통찰을 가지지 않은 낭만주의자들은 神이 떠난 세계에서 절망적인 추방에 처하거나 아니면 자연과 신의 통일을 직관과 환상이 교차하는 희미한 지역에서 발견할 뿐이었다.(D)



4. 실러와 마찬가지로 헤겔의 주된 관심사는 처음부터 '인간을 그 전체성에 있어서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A)

4-1. 헤겔 체계의 특성은...비판철학적 시각에서 존재와 인식을 분리시키려는 게 아니라, 아름다운 전체의 포괄적 통일을 획득하고자 한다. 그것은 인식의 혼란을 폭로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정신세계의 한계, 모순, 그리고 이율배반에 대한 명료성을 획득하려 하지도 않는다. 이와 반대로, 이러한 혼란을 일소하고 그 모순을 화해시켜려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아름답고 살아 있는 조화로서의 우주'이다.(A)


5. 헤겔은 에리히 프롬처럼 예수의 태도와 가르침이 인간적이었다는 식의 타협적, 상투적 문구를 용인하는 대신, 계몽주의 혹은 19세기 자유사상가들도 거의 하지 못한, 예수의 태도와 가르침의 '실정적', '권위주의적', '비합리적', 그리고 순수하게 도덕적이지 않은 측면들을 들춰내고 있다...헤겔은 인간주의적 종교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영속적으로 확신하고 있다. 분명히 그는...기독교에서 구원을 기대하지 않듯이 이후에도 결코 종교에 희망을 걸지 않는다(A)

5-1. 헤겔에는 신은 죽었다. '오로지, 이 정신의 왕국의 축배에는 절대정신의 영원성의 거품이 끓어넘친다.' 이를 우리 식으로 옮기자면 피안에 어떤 궁극존재란 없다는 것, 정신은 어떤 또 다른 세계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영원한 정신은 이 세계의 탐구 속에서, 달리 말하면, <정신현상학>이 불러낸 온갖 정신들의 탐구 속에서만 발견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등이 된다. '개념적으로 파악된 역사'가 필연적으로 신학을 대체한다.(A)

5-2. 인간과 달리 신에 있어서 표현은 현존의 조건이다...유신론이라 부를 수 있는 견해를 헤겔은 부인한다. 이 견해는 세계를 우주로부터 분리해 있는 초월적 신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헤겔의 견해에 의하면 이것은 '구체화의 원리'와 상충한다. 세계 없이, 즉 어떤 외적인 구체화가 없이 신은 현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정신은 (필연적으로) 세계를 정립한다. 그래서 "세계가 없다면 신은 신이 아니다."(<종교의 개념>)(C)


6. 헤겔을 사로잡은 문제는 <정신현상학> 속의 연속성이다. 즉, 인간이 세계를 이렇게, 저렇게 이해하게 되는 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가, 하나의 관점에 도달하는 도정은 어느 정도로 그 관점을 정당화시키고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차례로 등장하는 각각의 고유한 관점이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며, 또 일관성있게 주장되자마자 왜 더 이상 지탱될 수 없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관점은 다른 관점에 자리를 내어주는 식으로 진행하다가, 최후의 가장 포괄적 관점에 도달해서 이전의 모든 관점들이 통합되는 것이다. 그의 도정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최하의 기만으로 가득한 수준에서 최고의 가장 철학적인 경지로 고양되는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리해서 독자들은 <정신현상학>을 읽어가는 중에 금욕주의, 회의주의, 기독교정신, 계몽주의, 소포클레스, 칸트 등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에 도달하는 단테의 여정과 겨룰 수 있을 법하며, 쾨테의 <파우스트>와도 간단하지만 아주 면밀하게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A)

6-1.헤겔은 단순히 자기 자신만의 철학을 쓰는 데 안주하지 않고, 인간이 도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사유해왔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본질적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주석을 통해 자신이 어느 정도 칸트나 피히테, 크루크나 슐체, 섹스투스(Sextus)나 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었는가를 과시하는 그런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며, 때로 호메로스나 괴테를 칭송함으로써 저자의 교양수준을 약간씩 드러내는 책을 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보인다...그는 필히 그들의 견해를 차례차례 극복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즉, 모든 신념은 보다 더 포괄적인 견해의 부분이라는 점과 또한 모든 견해에는 인간의 현실을 포함하는 어떤 관점이 요구된다는 점을 명심하고서, 하나의 현실적인 전체가 되고자 노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A)

6-2. 헤겔의 분류는, 비록 다윈이 그의 <종의 기원>을 발간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의 가슴 속에 진화에 대한 관념을 심어놓기 50년 이상 전에 행해졌지만, 발전론적(진화론적)이었다. 아마 헤겔은 유형을 거듭해서 바뀌어가는 괴테의 전개과정에 영향을 받은 것같다. 괴테의 전개과정은 일상적 의미의 '논리적' 연속이 아니라 <정신현상학> 서문의 첫 부분에 있는 씨앗-꽃-열매로 이어지는 그런 논리적 연속을 시사한다. 즉 헤겔은 유기적 필연성을 가정한다. 헤겔이 볼 때 자신이 고찰하는 견해 중 어떤 것은 옳고 어떤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성숙한 단계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며, 따라서 이들은 그들의 성숙도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위계적 계열을 좇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A)

6-2-1. 의식은 실행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기계가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되는 진화 경향의 극치다.(리차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6-3. 우주의 근본구조는 '정신(Geist)의 구현과 표현'이라는 사실에 의해 규정된다. 그것은 가장 낮은 무생물의 형식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를 관통하여 인간에 이르는 존재의 위계를 포함한다. 물른 그런 다음 정신의 실현을 위해 인간은 발전해가야만 한다.(D)

6-3-1. (헤겔은) 세계가 실은 정신에 의해 정립되었다는 사실을 보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은 이 작업을 하는 것이 그의 주요 작품의 핵심을 이룬다. 헤겔은 우리가 세계의 구조를 검토할 때 그것이 정신으로부터의 流出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변증법적 논증은 이러한 사실을 우리에게 보인다. 세계 속의 사물들은 모순적이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도달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물들을 이들이 의존하는, 혹은 그 일부나 측면으로 참여하는 보다 크거나 심오한 실재의 부분들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변증법은 우리가 이러한 자기 유지적, 혹은 절대적 실재에 대해 만드는 불만족스러운 개념들을 넘어서 점차 몇몇 단계를 통과해 올라간다...이 정신적 실재는 항구적으로 세계를 자신의 필연적 구현체로 정립하며, 또한 자기 자신에게 귀환하기 위해 항구적으로 자기를 부정한다.(D)


7.이른바 헤겔주의적 변증법의 고식적 사고를 <정신현상학>에서 발견하려는 이들이라면 불행하게도 이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목차에서는 3단계적 배열에 대한 확고한 성향을 볼 수 있다...그러나 이렇듯 수많은 3분법이 정-반-합으로 제시되거나 연역된 것은 아니며, 헤겔의 사고가 절대지로 향한 사다리 위로 발전 상승하는 것은 이러한 종류의 변증법을 수단으로 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회의주의는 금욕주의의 반정립이 아니며, 헤겔 자신은 이런 식으로 회의주의를 제시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오히려 헤겔은 금욕주의의 옹호자가 금욕주의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보다 더욱 진지하게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이 금욕주의를 그 '논리적' 귀결점에 이르기까지 밀고 나아갈 때 금욕주의가 도달케 되는 정신의 형태를 바로 회의주의로 보면서 회의주의를 도입하는 것이다....즉 (하나의) 관점과 태도가 진지하고 불가피하게 채택되지만 다른 성격의 관점과 태도로 변화하고 만다는 관점과 태도의 정중동(靜中動)의 논리 속에서 헤겔 변증법을 깨달을 것이다.(A)

7-1. 괴테가 그의 거대한 교양소서러 <빌헬름 마이스터>에서 다음과 같이 썼을 때 괴테는 <정신현상학>의 변증법 정신에 근접하고 있으며, 혹시 그것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을 지도 모른다. "오류를 멀리하지 않는 것이 인간교사의 의무다. 오류에 빠진 자를 인도하는 것, 심지어 가득찬 오류의 잔을 비우도록 하는 것이 교사의 지혜다. 자신의 오류를 단순히 음미하는 자는 긴 시간 동안 이 오류의 맛과 함께 지내면서 이것을 진귀한 행운인 양 기뻐하겠지만, 오류를 완전히 삼켜 없애버린 자는 그가 미치지만 않는다면 이 오류를 인식하고야 만다."(A)

7-2. 변증법이 헤겔에게는 없다...정립, 반정립, 종합, 이라는 용어는 헤겔에 의해 빈번히 사용되지 않는다. 이 용어들은 피히테에게서 더욱 특유한 것이다. 우리는 갈등을 통한 발전, 전적으로 의도치도 않는 소산을 낳기도 하는 인간 열정의 추진력, 갑작스런 역전이라는 아이러니 등등을 부각시키고 있는 세계와 인간 및 역사에 관한 한 관점과 마주치게 된다. 만일 이것이 변증법적 세계관이라고 한다면 헤겔철학은 변증법적이다. ..헤겔 자신은 변증법을 결코 어떤 일을 예언코자 사용치는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는 생각 자체를 일축했다는 사실은, 헤겔 변증법이 결코 우리가 과학적 방법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는 구성되지 않았으며, 헤겔의 연역논리는 명백히 사후적인 것이라는 점을 쉽게 설명해준다. 다른 말로 하면, 헤겔의 변증법은 발견의 방법이 아니라 서술의 방법이다.(A)


8. 헤겔의 의하면, 공동체는 또한 개인들에 대해 '본질'이며 '궁극적 목표'다..."인간은 모든 것을 국가에 빚지고 있다. 그는 국가에 있어서만 자신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은 그가 소유하는 모든 가치, 모든 정신적 현실을 국가를 통해서만 소유한다....국가는 시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시민들은 어떤 부분도 목적도 아니며 어떤 부분도 수단이 아닌 유기적 생명체에 있어서처럼 전체의 계기들이다."(헤겔, <법철학>) 국가 혹은 공동체는 보다 높은 생명을 갖는다. 그것의 모든 부분들은 유기체의 부분들처럼 서로 연관되어 있다. 개인은 자신과 별개의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그의 정체성의 근거인 보다 커다란 목표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보다 커다란 생명에 있어서만 자기 자신일 수있기 때문이다.(C)

8-1. 헤겔은 인륜성의 테제와 이와 관련된 인륜적 실체, 즉 인간이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는 정신적 생활로서의 공동체라는 관념으로써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첫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적 생활과의 관계에 있어서만 확보될 수 있으며 소외된 개인의 사적 자기규정에서는 확보될 수 없다. 둘째, 이러한 공동체는 비밀집회, 혹은 사적 회합이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최소한의 자족적 인간의 영역, 즉, 국가이지 않으면 안된다. 세째로, 국가의 공적 생활은 그것이 표현하는 여러 규범과 이념이 단순히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외려 국가는 '이념' 즉, 사물들의 존재론적 구조를 표현한다. 다른 한편으로 이는 헤겔이 '절대 정신'이라고 부른 의식의 형태로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인간이 갖는 본질적 관계를 회복하는 불가결한 방식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며, 또한 공동체의 생활에 의한 절대정신과의 이러한 현실적 관계는 절대자와의 의식적 일체성(이는 또한 그 자체로 절대자의 자기동일성을 뜻한다)에서 복귀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본질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C)

8-3. 정신의 완성은 이성을 충분히 실현하고 구체화하는 공동체의 성장을 필요로 한다. 정신은 자기이해에 도달하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 정신은 자신의 개념에 적합한 정신적 공동체를 현존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목표는 정신이 자기자신에 대한 의식에 도달하는 것, 또는 세계를 자기자신에 일치시키는 것(die Welt sich gemäß)이다."(<역사 속의 이성>) 이처럼 역사는 이성과 일치하는 공동체에서 극치를 달한다. 혹은 자유를 구체화하는 공동체에 있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계의 궁극적 목표는 정신이 자신의 자유를 의식하는 것, 따라서 이러한 자유의 최초의 완전한 실현이기"(<역사 속의 이성>)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자유는 개인적이며 부정적인 자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는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본질, 즉 이성에 따르는 데 있어서 갖는 자유이다. 다른 한편, "개인의 임의적인 선택(das Belieben)은 자유가 아니다. 욕구의 특수한 요소에 죄우되는 자의는 제한된 자유다."(<역사 속의 이성>) 실로 이성에 따르는 것은 국가의 보다 커다란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국가에 있어서 인간은 이성적 현존을 갖기"(<역사 속의 이성>) 때문이다. 모든 중요한 역사적 발전은 국가라는 공동체들 내에서 일어난다...역사에 종말을 도래시키는 것은...자유와 이성에 완전히 일치하는 공동체이다.(C)

8-4. 세계사는 정신의---그것의 최고의 형태에 있어서---신적이고 절대적인 과정, 즉 정신이 자신의 진리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의식에 도달하는 단계들을 통한 진행의 서술이다. 이러한 단계들의 형태들이 세계사상의 민족 정신들, 인륜적 생활의 성격, 정체(正體), 예술, 종교, 그리고 과학이다.(<역사 속의 이성>)

8-5. 헤겔이 파악한 근대 민주제의 딜레마는 간단히 말해, 평등과 전체적 참여라는 근대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동질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을 전통적 공동체로부터 분리시키지만 일체성의 거점인 공동체를 대신할 아무 것도 제시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차이와 개성을 경시하고 심지어 파괴할 전투적 민족주의라든가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일체성을 회복하려고 하기 쉽다. 그것은 어떤 이들에게는 일체성의 거점이 될 것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말 못하는 소외를 겪게 할 것이다. (헤겔은 민족주의를 거의 중시하지 않았다...헤겔에게 있어서 민족에 대한 충성으로서의 민족주의는 충분히 이성적이지 않았고, 따라서 국가의 건설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할 수 없었다.)(C)



9. 보편적인 이념은 배후에서 공격받을 우려가 없으며, 또한 손상되지도 않으면서, 특수한 정열로 하여금 투쟁에 가담케 하여 쇠약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념이 정열로 하여금 자신을 위해 일하게 하며, 이념을 현존시키는 정열이 바로 그것 때문에 손상되고 해를 입는 그러한 방식으로 일하게 하는 것을 이성의 교지(List der Vernunft)라고 부른다.(<역사 속의 이성>)

9-1. 자신의 개인적 야심이 '정신(Geist)'의 관심사와 일치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명감에 충만해 있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그들의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도 그렇게 느낀다..."그의 행위는 시대가 즉자-대자적으로 요구한 것을 본능적으로 실현시켰다...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특수한 목적이 세계 정신의 의지라는 실체적 내용을 포함하는 역사상의 위인이다. 이 내용이 그들이 갖는 권력의 참된 원천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이고 무의식적인 본능 속에 있다."(헤겔, <대논리학>) 따라서 세계사적 개인의 위대함은 그들이 세계 정신이 도구라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또한 다음 단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최초로 감지하고 그것을 명확히 하는 사람이다."(C)


10. What touching examples there are of faithful servants who have sacrificed themselves for their masters ! How finely Shakespeare has portrayed such figures ! In such a case loyalty is the striving of a noble disposition to become like a greater personage. Through constant attachment and love the servant comes to resemble his master, who otherwise is only justified in seeing him as a paid servant. Indeed, these virtures are only for the lower classess; they can't manage without them, and they suit them well. He who can buy himself offf easily will equally easily be tempted to dispense with gratitud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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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찔레신 2020.06.25 12:25
    *<속속>은 한 동안 아래와 같은 순서로 진행됩니다.

    <마테오 리치> ⇒ <현장법사> ⇒ <조선, 1894년> ⇒ '헤겔 강의' ⇒ <정약용> ⇒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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