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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조선, 1894년 여름>을 읽고, 지난 81회 속속 공부를 토대로 하여 생성된 의제입니다.


  

1.

<조선, 1894년 여름>을 통해 전해지는 당시의 조선은 총체적인 무기력의 상태였습니다. 조선 남자들은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버는 것이 무의미했고, 관료에 대한 불신은 깊었으며, 결코 미학적인 관심이 생길 수 없는 불운의 시대였습니다.

스스로를 타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기 인식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런 내부적인 무기력은 결코 타자와 대면할 수도, 타자를 통하여 자기 인식에 나설 수도, 자체적인 탐구와 담론을 생산할 수도 없는 상태로 전락시키고 맙니다.

1894년 조선에 없다고 저자가 나열했던 것들이 2020년 대한민국에는 과잉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무기력은 충분히 극복된 것일까요. 무기력을 상쇄시킬, 이 나라 국민의 자의식에 각인된 주효한 성공 경험은 무엇이었으며, 정말 자의식을 개화하고 변혁시킨 성공 경험이었는가를 평가해보았으면 합니다. 지금도 조선의 무기력과 외상이 잔존한다면, 이러한 것들이 시민과 개인의 상처로 되먹임 되어 표출되고 있는 지점()도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2.

속속의 교재로 <일본 정신의 기원>이란 책이 있었고 <일문 문화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책도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인론이 활발하게 논의되어 왔다고 합니다. 일본 정신이라는 것이 특별하게 있어서 그것을 말한다기보다, 말함으로써 일본적인 것이 조형되고 생겨난다고 전제해보면, ‘한국의 정신이란 것은 없다기보다, 말하지 않음, 시도가 빈약한 상태에 놓여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발화되지 못하면 하나의 목소리가 지배하게 되는데, 일본(조선총독부)조선인론*’이 지배(통치) 이데올로기로 사용된 데에는 그러한 우리 쪽의 공모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듯합니다.‘한국인론이 없음으로써 생겨나는 문제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스스로한국인론을 담론화 하지 못()한 이유를 되짚어 보았으면 합니다.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 (다카하시 도루 지음, 구인모 옮김, 동국대학교출판부, 20100820일 출간)를 요약한 블로그 참조 https://blog.naver.com/ioveguswn/221830692071

 

 

 

3.

한국인 특유의 관계 형식을 이해하고 비평하되, 이 땅에서 공부하는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새 길로, <동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문제에 대해 우리의 언어로 사유하고 새 길을 내는 개념과 실천을 알고 있는 것, 혹은 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해 보았으면 합니다. 개념을 매개로, 특수성은 보편성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