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였는지, 어디서였는지 잘 기억이 안나요. 스물 한 두 살쯤, 처음 만난 언니는 정말 말이 빠르고 개념어를 많이 사용해서 나는 언니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잘 안 들렸어요. 한참 지나고 나중에야 ‘언니가 한 말이 이 말이었나’하는 정도로 언니의 말을 못 알아들었죠.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기도 했고 스스로 활자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늘 책을 보고 철학을 전공한 언니이기에 나는 사실 언니의 말을 이해하려는 시도도 못했어요. 단지 열심히 귀 기울여 들었을 뿐이었죠.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듣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말들도 많았지만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언니가 하는 말은 심오해서 내가 새겨들어야할 것만 같았어요. 그런 나에게 어느 날 언니의 말이 또렷하게 들렸어요. 버스 정류장이었을까요. 우리는 같이 앉아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언니가 나에게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었어요. 나는 잘 모르겠다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선 ‘언니는요’ 하고 물었던 것 같아요. 언니는 ‘진리를 알고 싶어’라고 했어요. 처음으로 제대로 들은 언니의 말이었어요. 제대로 들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는 말이었어요. 언니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는 것 아니었나? 언니가 알고 싶은 진리란 하나님의 뜻일까? 언니는 다른 진리를 구하는 것일까? 대체 진리란 뭘까? 언니의 답은 처음 무한을 만난 어린아이처럼 나를 끝도 없는 생각으로 이끌었어요.
그렇게 삼십년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났네요.
학교 다닐 때 다니던 교회가, 골목이 다 사라져버려 눈 감고 다니던 그 길도, 그 교회도 찾을 수 없었던 어느 날 언니가 그랬죠. ‘그때가 있었을까?’라고. 처음부터 이 나이였던 것 같다며 그때는 있었을까 물었어요. 내가 언니의 말을 들어도 모르던 때, 언니가 진리를 알고 싶다고 했던 그때가 정말 있었을까요? 그 즈음 내가 k님과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자 언니는 ‘철학, 재미있지, 재미있겠다’라고 얘기해주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지천명을 앞두고 새롭게 공부를 만나고 통과하면서 나의 삶을 다시 이해하는 글쓰기라는 과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쓸 것인가, 하나의 주제아래 연결성을 가지는 글쓰기는 어떠해야하는가라는 고민을 할 때, 글의 내용보다 먼저 형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을 때 언니가 떠올랐어요. 진리를 알고 싶다는 말로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던 언니, 나보다 먼저 지천명을 지난 언니에게 쓰는 편지로 나의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동안 부딪혔던 공부하면서 느꼈던 느낌들, 알게 된 것들을 편지로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글이 서투른 저에게 편지는 조금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언니, 또 편지할게요.
남의 복 시기하여 혼자 슬퍼하다가도
너를 문득 생각하면 노고지리 되는고야
첫새벽 하늘을 솟는 새. 임금인들 부러우리
-셰익스피어 <소네트29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