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을 아는 것이 지혜'라는 그 말을 오래 붙잡고 싶습니다.
때와 장소를 아는 것이 지혜라는 그 말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 질문이
부끄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언제 사용할 것인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걸 아는 것이 타이밍인것인지
그걸 아는 것이 지혜인것인지
궁금했던 질문들이 부끄럽고
꺼냈던 말들은 담을 수 없으니 다시, 부끄럽습니다.
무지에도 힘이 있는걸까요
알아간다는 것은 힘이 생기는 것일까요
힘이 빠지는 것일까요
지난 토요일 시독에서
<On the Move>를 읽으며
'make'라는 단어에 (어떤 장소위치로 힘들게) 가다[이르다] 라는
뜻도 가진다는 이야기가 남아서, 자꾸 맴돕니다.
'공부로 걷는다는것'
'타이밍',
'때와 장소',
'지혜'
'make'까지....
조금, 아주 조금 힘이 빠지는 날입니다.
지금도 가끔 그러지마는 내가 했던 말들을 취소하느라 허공에 대고 손사래를 친다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든가 막 ,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응? 뭐, 그렇게 하곤 합니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에 ‘미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걸 보고, 나의 부끄러움도 한 숨을 쉬어가곤 하는 것인데, 부끄러운 자의 머리위에 하늘은 조금 더 푸를 것 같기도 하고, 막,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