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정을 덮친 폭력과 혼돈의 현장에 있어주기를, 골수암으로 자식을 떠나보내던 어미의 기도에 있어주시기를, 아니면, 오래된 상처의 주술적 반복... 스스로 끊을 수 없어 보이던 그(녀)의 상처를 돌봐주시기를.
동일시되었던 만큼 무섭고 간절했던 순간들이었다. 잠이 깨고 기도가 터져나오던 사건들 때문에 어깃장 놓으며 기도를 지웠던 시간을 지나 다시 무릎을 꿇었고 두 손을 모았다. 언제나처럼 신은 부재했다. 덕분에 걸음이 빨라졌다.
“...교회도 안가고 기도도 안 해. 신적인 존재에,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 이전에 나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일어서려고 해” A의 문자를 받아 읽으며, 새삼 부재하던 내 신의 이력에 잠긴다. 선생님께서는 ‘사전’을 찾을 때, 무엇을 모르는 그 순간이 죄 없는(덜한) 순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돌이켜보니 내게는 기도할때가 그래도 죄가 덜한 순간이었다.
신 없이 걷는다. 하지만 이 길 끝에 내 힘으로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는 것을 안다. 아니, 오늘 내 속에도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무능이 변명이 되지 않도록 힘써 걷고 또 걷다보면, 무망(無望)속에 기도를 놓을 수 있을까. 잘 봐주시라, 조금만 도와주시라, 도우려했다는 것을 조금만 알아주시라는 기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