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3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토요일 아침, 찻물을 올리고 라디오를 켠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북한산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집 안 청소를 끝내고 컴퓨터를 켜서 수업자료를 확인한다.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휴대폰과 가방을 집어 든다.

천안 아산행 열차에 몸을 싣자 긴장이 풀린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창밖을 바라본다. 수확이 거의 끝난 논에는 흰색의 원형 볏짚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책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다.

 

매달 격주로 천안에 간다. 장숙(藏孰)이 있는 곳이다. 처음 고양에서 시작하여 서울 해방촌으로, 작년에 다시 천안으로 이사를 하였다.

천안으로 옮긴 후에는 결석을 자주 하였다.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게으름이 주는 편안함도 있었다.

 

8월에 삼십여 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했다.

새로 전보 받은 학교에서 사람에 대한 실망이 컸다.

아이는 불러서 가르칠 수가 있지만 마흔이 넘은 어른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일찍 출근해 아무도 없는 교무실에서 《집중과 영혼》을 낭독했다.

점심식사 후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4월의 봄 햇살은 잔인하도록 눈부시고 따사로웠다.

 

시간이 갈수록 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지친 몸을 끌고 다시 천안으로 갔다.

신발을 벗고 장숙(藏孰)의 숙인(熟人)들을 보는 순간, ‘! 왔구나…….’

몸을 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체감하였다

  

정오(正午)에 시작한 공부는 밤 9시에 끝난다. 자정(子正)이 다 된 시간에 집에 도착한다.

 

퇴직 후에는 결석하지 않는다. 약이(約已)라는 학명(學名)을 선생님께서 주셨다.

약이(約已)-낭독(朗讀)과 신독(愼獨), 경행(經行)의 생활양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묶어 삶의 가능성을 실천하라고 하셨다.

 

놀라운 이 생명과 정신의 도정에서 공부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 인간은 이 광대무변한 시공간 속에서 구원의 소식이 될 수 있을까?”

                                                                                                                                              (집중과 영혼서언)

 

공부하기에는 한참 늦은 나이지만 나 자신을 알기위해서, 아니 되기위해서

 

約已, 장숙(藏孰)에 간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8 살며, 배우며, 쓰다(정신의 형식) 더스트 2019.02.02 193
177 134회 별강 <거울방을 깨고 나아가자> 수잔 2022.08.05 193
176 With file 희명자 2020.11.20 194
175 [一簣爲山(17)-서간문해설]答李善述 file 燕泥子 2022.08.21 194
174 물의 씨 1 file 遲麟 2018.11.28 195
173 139회 강강.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 늑대와개의시간 2022.10.19 195
172 [一簣爲山(06)-서간문해설]與盧玊溪 file 燕泥子 2021.07.21 196
171 essay 澹 1. 그 사이에서 肖澹 2022.01.20 196
170 132회 별강 <낭독의 공부> 簞彬 2022.07.07 196
169 (위험한 여자들) #1.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 2013) 2 榛榗 2019.11.19 197
168 장독후기(25회) 2023/05/07 1 簞彬 2023.05.18 197
167 곱게 보기/ 수잔의 경우 file 찔레신 2023.02.05 198
166 125회 별강 <소송하는 여자> 燕泥子 2022.04.01 199
165 방학 file 형선 2019.03.27 201
164 ㄱㅈㅇ, 편지글 1 찔레신 2023.04.28 203
163 121회 별강<부사적 존재와 여성> 내이 2022.02.08 204
162 아직도 가야 할 길... 오수연 2018.10.26 205
161 4月 동암강독 1 file 는길 2024.05.21 206
160 비 오는 월요일의 단상 2 해완 2020.04.20 208
159 <90회 속속 별강> 말(言)을 배운다 侑奏 2020.11.27 208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11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