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에는 드라마와 음악 작품, 온갖 종류의 마술이 공연되는 극장이 있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두 나라와 수백 년간 관계를 맺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극장이 무엇인지도 전혀 모른다. 수도인 서울에도 연극 무대가 하나도 없다. (169쪽)
중국이 아닌 다른 민족을 이웃으로 두었더라면 오늘날 조선인들은 기본 교양과 교육에서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다. 이 나라는 수천 년 동안 오직 중국하고만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거대한 중국 제국은 조선인들의 정신적인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에서는 옛 경전을 연구하고 아는 것 그리고 수백 년이나 된 오래된 저작들이 아직도 학식의 최종적 권위로 여겨지는데, 조선의 사정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언어와 문학에 대한 연구나 지리와 자연에 대한 지식은 완전히 경시되고 있다. (210쪽)
하지만 이때에도 조선의 ‘학자’들은 현재 수많은 중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중국어, 즉 현대의 공용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전혀 발음할 수도 없고 말해온 적도 없는, 왜곡되고 장식이 많으며 부자연스러운 문어(文語)를 쓴다. 그래서 이 글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읽어야 한다. 이처럼 전혀 불가능한 언어로 조선인들은 문집을 쓰고, 이 문집을 중국의 옛 현인들의 말과 역사적인 예들, 속담, 선례로 가득 채우는데,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211쪽)
(의제)
왜 우리는 우리를 자화상화하지 못하는가?
조선의 ‘학자’들은 옛 중국 현인들의 이야기들로부터, 그 이야기를 빌려와서 자신들의 글을 썼고, 사유했다.
스스로가 “살고” 있는 <조선>으로부터 사유를 건져 올리는 것이 아니라, “1894년 이미 중국으로부터도 고립되었고 절대적으로 추상화된 관념”으로 사유했다. 이들의 사유도구(언어와 전거가 되는 이야기)는 <조선>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유방식으로 그들의<조선>은 끊임없이 비교당하면서 배척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배척하게 되는 기이한 지점에 놓이게 되었다. 자신들의 사유구조에서 자신과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이 완벽하게 소외되었다. 사유가 있는 자화상화은 불가능했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조선>의 일상에서 주고받는 말(음성)은 사유를 공급받지 못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구조화 해낼 힘을 공급받지 못했다. 인간은 <말/극장> 앞에서 스스로를 대면하게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산문으로의 자화상화가 더딘 까닭이다. 우리는 지금도 스스로 사유하기를 어려워하며 끊임없이 이방의 사유법을 찾아 헤매면서, 우리에게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는 세계관을 찾아 헤맸고, 그것을 학습했다. 우리는 분열되어 있다. 자화상화를 하면서, 스스로를 가리키면서 정신의 성숙을 도모하는 변태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이 분열의 현기증을 이야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