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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治・大正期から近代日本文学の主流は私小説であり、作家の自我や私生活を描き、人生をいかに生きるべきかを追求する有様を読者に提供することが主な目的といわれてきた。その雰囲気は陰鬱で、陰鬱であることこそが芸術であるという考えかたが一般的だった。そのため、谷崎の作品はしばしば「思想がない」「俗世間との対決がない」「格闘していない」として低い評価が与えられてきた.

(메이지/다이쇼 시대부터 근대 일본문학의 주류는 사소설이며, 작가의 자아와 사생활을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추구하는 양태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 분위기는 음울하며, 음울하다는 것이야말로 예술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타니자키의 작품은 종종 ‘사상이 없다’, ‘속세와의 대결이 없다’,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없다라는 등으로 낮은 평가를 받아왔다.)


しかし、そういった類の私小説中心の文学観から離れたとき、谷崎の小説世界の豊潤さや、広い視野から見た思想(パンセ)、18世紀のフランス文学のような苛酷な人間認識と抽象主義を見せた作品(『卍』など)に高い評価が与えられてもいる。小谷野敦によると、私小説的風土からの断絶を指摘されてきた谷崎は、実は自身の女性遍歴や身辺にひろく材をとりながら、あれらの豪奢な物語群を書きついでいたとしている。

(그러나 그런 종류의 사소설 중심의 문학관에서 벗어날 때, 다니자키의 소설 세계의 풍요로움과 넓은 시야에서 본 사상pensée, 18세기 프랑스 문학과 같은 가혹한 인간 인식과 추상주의를 보인 작품--『卍』등--에 높은 평가가 주어지고 있기도 하다. 오타니에 따르면, 사소설 풍토로부터 단절을 지적받아온 다니자키는 자신의 여성 편력과 신변잡기적 재료를 광범위하게 취하면서 호화로운 이야기들을 적어냈다고 한다.)


三島由紀夫は、野暮なことを嫌った都会人の谷崎は自身の格闘を見せることをせず、「なるたけ負けたような顔をして、そして非常に自己韜晦の成功した人」だと論じている[14]。しかしながら、三島はその谷崎の小説家としての天才を賞揚しつつも、その作品群が激動の時代を生きながらも、あまりに社会批評的なものを一切含まずに無縁であることが逆に谷崎の本然の有り方でないともし、「谷崎氏の文学世界はあまりに時代と歴史の運命から超然としてゐるのが、かへつて不自然」とも述べて、国士が戦時中に自ら戦地に踏み込み、時代を受け止めたのとは対極の意味合いで、「結局別の形で自分の文学を歪められた」作家であると論じている。

(미시마 유키오는, 야생을 싫어했던 도회인 다니자키는 자신의 싸움을 보여주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진 듯한 표정을 짓고, 그래서 극도로 자기도회적自己韜晦 성공을 이룬 인물”이라고 논한다. 그러나 미시마는 그 다니자키의 소설가로서의 천재성을 상찬하는 중에도, 그 작품군이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도 사회비평적인 것을 일절 포함시키지 않는 천연덕스러운 것이 역으로 다니사키의 본연의 존재방식이 아니라고도 하며, “다니자키 씨의 문학세계는 너무나 시대와 역사의 운명에서 초연한 것이 오리혀 부자연스럽다”고도 말하고, 국토가 전시중일 때 스스로 전장을 누비면서 시대를 떠맡은 것과는 대극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결국 다른 형식으로 자신의 문학을 왜곡시킨" 작가라고 논하고 있다.)


文章的には、谷崎が『文章読本』でみずから主張するような「含蓄」のある文体で、いわゆる日本的な美、性や官能を耽美的に描いた。情緒的で豊潤でありながら高い論理性を誇るその文体は、日本文学的情趣と西洋文学的小説作法の交合的なものであり、魅力的な日本語の文章が至りうるひとつの極致であるともいわれる。谷崎の文章は森鴎外や志賀直哉に代表される簡勁な表現とは対極的ではあるが、鴎外と並んで小説文体の理想のひとつとされることも多い。三島由紀夫などは谷崎と鴎外の双方を尊敬し,影響を受けている。

(문장으로 보자면, 다니자키가 『문장독본』에서 스스로 주장하듯이  ‘함축적’인 문체로 이른바 일본적인 미, 性이나 관능을 미적으로 그렸다. 정서적이고 풍윤하면서도 높은 논리성을 자랑하는 그 문체는 일본 문학적 정취와 서양문학적 소설 작법의 교합적인 것이며, 매력적인 일본어 문장이 이를 수 있는 하나의 극치라고도 말해진다. 다니자키의 문장은 모리 오가이나 시가 나오야로 대표되는 간결한 표현과는 대극적이지만, 오가이와 나란히 소설 문체의 이상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미시마 유키오 등은 다니자키와 오가이의 양측을 존경하고 또 그 영향을 받고 있다.)

 
強く美しく(「刺青」の地の文においてこの二つはほぼ等価であると記されている)、そして抗いがたく魅力的な女性と、それに対するマゾヒスティックな主人公の思慕がしばしば作品に登場することから、谷崎と彼の作品は女性礼讃やフェミニズムの観点から論じられることがあるが、これらは谷崎の性愛と肉体に対する興味から発するものだと見るのが一般的である。『家畜人ヤプー』の作者(異説あり)天野哲夫は、谷崎文学はマゾヒズム抜きでは語り得ないと指摘。結婚前の松子夫人にあてた書簡などにもご主人様と下僕の関係として扱って欲しいなどの特異な文面が多く見られる。谷崎の諸作品にはしばしば女性の足に対するフェティシズム(足フェチ)が表れている。

(강하고 아름답게---「刺青」의 지문에서 이 두 가지는 거의 등가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그리고 거역하기 어렵도록 매력적인 여성과 그에 대한 마조히스틱한 주인공에 대한 사모가 종종 작품에 등장하는 것에서, 다니자키와 그의 작품은 여성 예찬이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논할 수 있지만, 이들은 다니자키의 성애와 육체에 대한 흥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축인 야푸』의 작가(이설이 있다)  아마노 테츠오는 다니사키 문학은 마조히즘을 빼면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결혼 전 마쓰코 부인에게 보낸 서한 등에도 주인님과 하인의 관계로 취급해 달라는 등의 특이한 문면이 많이 보인다.,다니자키의 여러 작품에는 종종 여성의 발에 대한 페티시즘(발 페티시)이 표현되어 있다.)


関東大震災以前の谷崎の作風は、モダンかつ大衆的であることが知られているが、谷崎自身はそのことを後悔していたらしく、震災以前の作品は「自分の作品として認めたくないものが多い」と言った。そのために震災以前と以後の作品を文学史でも明確に分け、以前の作品を以後の作品に比して低い評価をすることが通例となっていた。しかし、近年、物語小説の復活の機運と、千葉俊二、細江光らにより震災以前の作品への再評価がなされている。また、後期にあっても『猫と庄造と二人のをんな』『台所太平記』のように大正期的な雰囲気をうけついだ作品を谷崎自身が書きついでいることも鑑み、作者自身の低評価については今すこし判断を保留すべき部分がある。

(관동 대지진 이전의 다니사키의 작풍은 모던하고 대중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다니사키 자신은 그것을 후회했던 것 같고, 지진 재앙 이전의 작품은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지진 재해 이전과 이후의 작품을 문학사에서도 명확히 나누고 이전 작품을 이후의 작품에 비해 낮은 평가를 하는 것이 통례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이야기소설이 부활하는 기운과 치바 슌지, 호소에 히카루 등에 의해 지진 재해 이전 작품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또 후기에 있어서도,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 『부엌 태평기』처럼 다이쇼적인 분위기를 풍긴 작품을 다니자키 자신이 쓴다는 것도 감안해, 작자 자신의 저평가에 대해서는 지금 조금이라도 판단을 보류해야 할 부분이 있다.)


谷崎の特色が顕著な短編小説群は、代表作『刺青』(1910年)における耽美主義、マゾヒズム、江戸文明への憧れと近代化への拒絶、『幇間』(1911年)の自虐趣味、『お艶殺し』(1915年)の江戸趣味と歌舞伎のような豪奢な残虐性、『神童』(1916年)の幼年期に対する憧憬と堕落の愉悦、『人魚の嘆き』(1917年)のロマンティズムや幻想趣味、『異端者の悲しみ』(1917年)のエロティシズム、『母を恋ふる記』(1919年)の母性への憧れと女性崇拝、『鮫人』(1920年)の伝奇趣味などをあげることができる。

(다니자키의 특색이 두드러진 단편소설군은 대표작 『문신』(1910년)에서의 탐미주의, 마조히즘, 에도 문명에 대한 동경과 근대화에 대한 거부, 『幇間알랑쇠』(1911년)의 자학 취미, 『お艶殺し요염한 살인』(1915년)의 에도 취미와 가부키와 같은 호화로운 잔학성, 『신동』(1915년)의 유년기에 대한 동경과 타락의 희열, <인어의 한탄>(1917년)의 낭만주의와 환상취미, <이단자의 슬픔>(1917년)의 에로티시즘, <어머니를 사랑하는 기록>(1919년)의 모성에 대한 동경과 여성숭배, 『인어』(1920년)의 기이취미 등을 거론할 수 있다.)


『途上』や『呪われた戯曲』など、ミステリーやサスペンスの先駆的な作品も残している。谷崎自身が自身の作品を探偵小説扱いされるのを嫌ったことについても、最初の推理小説『モルグ街の殺人』を書いたことでも知られるエドガー・アラン・ポーも推理小説を意図して書いたわけでは無かったことを引き合いに出して論じている。

(『도상』이나 『저주받은 희곡』 등, 미스터리나 서스펜스의 선구적인 작품도 남겼다. 다니자키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탐정소설로 취급받는 것을 싫어한 것에 대해서도, 첫 추리소설 『모르그 거리의 살인』을 쓴 것으로도 알려진 에드거 앨런 포도 추리소설을 의도해 쓴 것은 아니었음을 예를 들어 논하고 있다.)


また、1920年に発表された『藝術一家言』ではその理知的な芸術観や物語論を展開しており、後の芥川龍之介との文学論争を考える上で興味深い。良きライバルの芥川が1927年(昭和2年)に発言した「(小説において)話の筋と云ふものが芸術的なものかどうかと云ふ」疑問に対し激しく『饒舌録』で反論の応酬をしたことは文学史的に有名な論争である(芥川の『文芸的な、余りに文芸的な』を参照)[5]。

(또한 1920년 발표된 『藝術一家言』에서는 그 이지적인 예술관과 서사론을 전개하고 있으며, 이후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와의 문학논쟁을 생각해보면 매우 흥미롭다. 좋은 라이벌인 아쿠다가와가 1927년(昭和2년) 발언한 “(소설에서) 이야기의 줄거리라는 것이 예술적인 것이냐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 격렬하게 『요설록』에서 반론의 응수를 한 것은 문학사적으로 유명한 논쟁이다(5).


三島由紀夫は、その芥川の自殺が、その後の谷崎文学に与えた「逆作用」の影響を指摘し、芥川の芸術家の敗北の死を目の当たりにした谷崎が、「持ち前のマゾヒストの自信を以て、『俺ならもつとずつとずつとうまく敗北して、さうして永生きしてやる』と呟いたにちがひない」として谷崎の文学変遷を論じ、谷崎がニヒリズムに陥ることなく、俗世への怒りや無力感にとらわれずに身を処して「おのれを救つた作家」だとしている[15]。

(미시마 유키오는  아쿠다가와의 자살이 그 이후의 다니자키 문학에 준 ‘역작용’의 영향을 지적하고, 아쿠다가와의 예술가적 패배로서의 죽음을 목격한 다니자키가 “천성적인 마조히스트의 자신감을 가지고 ‘나라면 훨씬 더 줄기차게 멋있게 패해하고, 그래서 영생해 보겠다 ’고 중얼거릴 게 틀림없다”며  다니자키의 문학적 변천사를 논하고, 다니자키가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또한 속세에 대한 분노나 무력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운신하면서 ‘나 자신을 구한 작가’라고 했다.)

 

関西移住後の代表作は長編が中心となり、ここで谷崎の物語作家としての質的な転換が起こる。『痴人の愛』(1924年)は長編における豊かな風俗性と物語構造の堅牢さがはじめて実を結んだ作品であり、特に風俗描写の問題は大正期諸作の総まとめとして、また戦中戦後の作品への手法論的な影響として大きな意味を持つ。傑作として名高い『卍』(1928年-1930年)、『蓼喰ふ虫』(1928年-1929年)は、いわゆる「夫人譲渡事件」などに題材を取った長編というべき作品だが、現代風俗を扱いながら男女愛欲のさまを丁寧に描き、性愛の底知れぬ深遠を見せて、しかも、それが一皮めくれば文明や社会とつながっているという状況を描いた傑作である。手法論としてもすでに吉田健一らが指摘するとおり、昭和初期に勃興したモダニズム文学の影響を受けている。また、この両作から谷崎の文体は目に見えて優れたものとなり、日本の土着的なものが残る関西文化への牽引が見られるものとなっている[5]。 

(간사이 이주 후의 대표작은 장편이 중심이 되었고, 여기서 다니자키의 이야기 작가로서의 질적인 전환이 일어난다.,『癡人의 사랑』(1924년)은 장편에서의 풍요로운 풍속성과 서사구조의 견고함이 처음으로 결실을 맺은 작품으로, 특히 풍속 묘사의 문제는 다이쇼기 여러 작품들의 총정리이며, 또한 전쟁 중/후 작품에 대한 기법론적 영향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걸작으로 이름 높은 『卍』(1928년~1930년), 『여뀌먹는 벌레』(1928년~1929년)는 이른바 『부인양도사건』등에 소재를 둔 장편이라 할 만한 작품이지만, 현대풍속을 다루면서 남녀애욕의 사정을 정성스럽게 그려 성애의 바닥모르는 심원을 보여주고, 게다가 그것을 한 껍질 벗기면 문명이나 사회와 결부된 상황을 묘사한 걸작이 된다. 기법론으로서도 이미 요시다 켄이치 등이 지적한 바와 같이 쇼와 초기에 발흥한 모더니즘 문학의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이 두 작품에서부터 타니자키의 문체는 눈에 띄게 우수해졌고, 일본의 토착적인 것들이 남아 있는 간사이 문화를 진작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倚松庵」(神戸市東灘区)。1936年(昭和11年)-1943年(昭和18年)にかけて居住し、『細雪』の冒頭部をここで執筆した。『乱菊物語』(1930年)、『吉野葛』、『盲目物語』、『武州公秘話』(すべて1931年)はいずれも当時の谷崎が関心を持っていた歴史物である。舞台や時代を変えつつも、大正期以来の耽美主義、マゾヒズム、残虐性、ロマン趣味、幻想趣味、エロティシズム、女性崇拝などが受継がれている点が注目される。

(<기송암>에서 1936~1943년 에 걸쳐 거주했고 <세설>의 앞대목을 여기에서 집필하였다.

『乱菊物語』(1930年)、『吉野葛よしのくず』、『盲目物語』、『武州公秘話』(모두 1931年)는 모두 당시의 다니자키가 관심을 가졌던 역사물이다. 무대나 시대를 바꾸어가면서, 다이쇼 시기 이래 탐미주의, 마조히즘, 잔학성, 로맨스 취미, 환상취미, 에로티시즘, 여성숭배 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こうした一連の作品からの成果が『蘆刈』(1932年)や『春琴抄』(1933年)の女人像の造型だといえるだろう[6]。特に正宗白鳥を脱帽させた中編『春琴抄』は谷崎的な主題をすべて含みつつ、かなり実験的な文体を用いることで作者のいわゆる「含蓄」を内に含んだ傑作となっており、その代表作と呼ぶにふさわしい。

(이 일련의 작품에서 얻은 결과가 ‘<蘆刈あしかり>’(1932년)와 ‘<춘금초>’(1933년)의 여인상의 조형이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특히 마사무네 하쿠쵸를 감탄하게 만든 중편 <탄금초>는  다니사키적인 주제를 모두 포함하면서 상당히 실험적인 문체를 사용함으로써 작자의 이른바 ‘함축’을 내포한 걸작이 되고 있으며, 그 대표작이라 부를 만하다.)


『陰翳礼讃』(1933年-1934年)、『文章読本』(1935年)と二つの批評により、みずからの美意識を遺憾なく開陳するとともに当時の文明を高度に批評した。この時期のしめくくりとなるのは『猫と庄造と二人のをんな』(1936年)である。あたかも大正期の谷崎がよみがえり、『卍』、『蓼喰ふ虫』の文体によって書いたかのような佳品である。

(<그늘예찬>(1933년~1934년), 『문장독본』(1935년)과 두 비평을 통해 스스로의 미의식을 유감없이 개진함과 동시에 당시 문명을 고도로 비평했다. 이 시기를 매듭지은 것은 ‘<고양이와 쇼조와 두 사람의 여자>(1936년)이다. 마치 다이쇼기의 다니자키가 되살아나 , <卍>, <여뀌먹는 벌레>의 문체에 의해 쓴 것 같은 가품이다.)


戦中・戦後の谷崎の活動は『細雪』と『源氏物語』現代語訳の執筆に代表される。『細雪』は1942年(昭和17年)ごろより筆を起こし、翌年に雑誌『中央公論』に掲載されたが、奢侈な場面が多いとして1回で掲載禁止となり、以降発表を断念。この年に私家版上巻のみを出版して、戦中何度かの断続を経ながら書き継いだ。1947年(昭和22年)ごろには下巻の相当な部分まで完成し、1948年(昭和23年)に全編の出版が終了。これによって谷崎の名声は揺るぎないものとして確立される。一方の『源氏物語』は、1939年(昭和14年)から『潤一郎訳源氏物語』として発表されるが、中宮の密通に関わる部分は削除された。戦後手を入れ1951年(昭和26年)に『潤一郎新訳源氏物語』を、文体を刷新した『潤一郎新々訳源氏物語』が1964年(昭和39年)に刊行し、決定版となる。

(전쟁중, 전후의 다니자키 활동은 『세설』과 『겐지 이야기』의 현대어 번역의 집필로 대표된다. <세설>은 1942년 경부터 붓을 들어 이듬해 잡지 《중앙공론》에 실렸지만, 사치스러운 장면이 많다고 해서 한 차례 게재금지되었고, 이후 발표를 포기했다. 같은 해에 자비출판으로 상권만 출판되었고, 전쟁 중에는 몇번인가 단속(斷續)을 겪으면서 계속 씌어졌다. 1947년(소화 22년) 경에는 하권의 상당 부분까지 완성되었고, 1948년 에 전편의 출간이 종료되었다. 이로써 다니자키으 명성은 흔들림없이 확립되었다. 다른 한편 <겐지 이야기>는 1939년부터 <준이치로 역 겐지이야기>로서 발표되었지만, 중궁의 밀통에 관한 부분은 삭제되었다. 전후에 다시 손을 대어, 1951년에 <준이치로 신역 겐지이야기>를 냈고, 또 문체를 쇄신한 <준이치로 신신역 겐지이야기>가 1964년에 간행되어 결정판이 된다.)


戦後の代表作としては、ほかに母恋いと近親相姦的愛欲の系譜である『少将滋幹の母』(1949年)、『夢の浮橋』(1959年)がある。『鍵』(1956年)は抑圧される性欲と男女の三角関係をテーマにし、『卍』、『蓼喰ふ虫』の系譜の総決算といえる。さらに、『瘋癲老人日記』(1961年-1962年)の迫りくる死の恐怖と愉悦が被虐的な愛欲に重ねあわされた境地もきわめて優れたもので、その文体論的な実験は谷崎の戦後における到達点の一つを示している[11]。

(전후 대표작으로는 이 밖에 어머니 사랑과 근친상간적 애욕의 계보에 속하는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1949년), <꿈의 부교>(1959년)가 있다.『열쇠』(1956년)는 억압받는 성욕과 남녀의 삼각관계를 주제로 하며 『만』, 『여뀌먹는 벌레』의 계보의 총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미친 노인의 일기』(1961년~1962년)의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愉悅이 피학적인 애욕에 휩싸인 경지도 매우 탁월한 것으로, 그 문체론적 실험은 다니자키가 전후에 도달하는 지점 중 하나를 보여준다.)


『現代語訳 源氏物語』、『作品集』・『全集』[20]は、中央公論社(現:中央公論新社)で文庫判も含め様々な版が刊行された。

(<현대어역 겐지 이야기>, <작품집>, <전집>은 중앙공론사(현, 중앙공론신사)에서 문고판을 포함해서 다양한 판현으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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