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지 않고서는 글을 쓸 수 없다. 생각의 단상을 적어놓은 포스트잇이 책상과 침대 머리맡 여기저기에 어지러이 붙어있다. 잠결에도 애써 몸을 일으켜 적어둔 문장이지만, 지금 읽어보면 그 뜻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여럿이다. 컴퓨터 바탕화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미완의 한글파일은 어지러운 내 생활의 흔적이다.
언죽번죽 기분에 따라 글을 쓰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쉽사리 넘어지고 갖은 심사에 변덕을 부리기 일쑤인 내 몸을 알기에 글을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일관된 행동이라 자위하며 이를 정당화했다. 시작하는 일은 쉬워도 지속하는 일은 어렵다. 오랜 반복으로 어렵사리 만든 습관도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한 순간이다. ‘불퇴전(不退轉)’에 이르지 못한 습관은 그 오랜 시간의 노고를 비웃듯 작은 흔들림에도 빠르게 허물어진다.
글을 쓰는 지금도 두려운 마음이 인다. 나는 내일 또 넘어질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도 마음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넘어졌기에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져도 써야 한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 더디기만 했던 회복의 시간도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언젠가 되돌아가지 않을 ‘몸’으로, 쉽사리 넘어지지 않을 ‘몸’으로 나를 찾아올 그 손님을 기다리고 싶다. “꾸준한 생활양식 속에서 근기있게!” 내 몸에 거는, 실낱같은 마지막 주술이다.
"공기가 없는 곳에 콧물이 불필요하듯이 증상이 없는 곳에 글쓰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모든 필자가 열정적인 만큼 궁졸(窮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디 이말에 오해 없을지니...... 무릇 필자는 세속의 죄인인 것이다. 죄인이므로 그는 필자가 되겠지만, 다른 한편 이 세속에 대한 글쓰기 자체는 그의 죄성(罪性)을 알리는 가장 분명한 신호이기도 하다."(<집중과 영혼>, 751쪽)
저는 위의 문장에 얼은 손이 녹곤 했는데, 진진은 어떠실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始作은 인간만의 능력이자 성취인데, 너무 박절한 평 아니십니까, (당신의 始作을 환영, 환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