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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찌로오가 웃음을 참으며 "도대체 당신은 누구죠?" 하고 물어 보니 사나이는 갑작스레 진지한 얼굴로 "나는 산고양이님의 마부여." 하고 말했습니다.  미야자와 켄지(宮澤賢治), <도토리와 산고양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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藏孰에는 [자기소개]가 있습니다. 요구되거나 요구하는 내용은 전혀 없이, 텅 빈, 그 환한 곳으로 스스로, 홀로, 나아가, 내가 누구인지 말해야 하는 공부의 한 형식으로, 그 형식만 있는, 자기개시의 순간이기도 한, [자기소개]가 있습니다.  "藏孰工夫는 영원한 자기소개다."라는 문장을 써보겠습니다. 나의 자기소개는, 그 형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그 장소와 그 선생님과 그 숙인들이 있는 것으로, 그 형식과 약속을 지켜주며 있는 것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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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이 끝난 뒤에 작성해 보는 후기 또한 [자기소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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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遲麟 2019.04.07 09:34

    * 모임이 끝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마터면 인생지사일장춘몽(人生之事一場春夢)이라고 읊조릴 뻔했다. 4월의 천산족 모임은 [그] 일장춘몽의 춘몽(春夢)과 비슷할 듯한, 달콤하고 환하고 아련하고, 서글픈 고통으로 쓰고, 연분홍 기미가 감싸고 휘감고 있었는데, 봄이었다, 얼어붙어 있던 것들 풀풀 풀리고 휘휘날리면서, 破約하고, 破約하고, 破約하면서, 꽃피면서, 멀리 가고자 하였고, 나는, 모임 주관자로서의 책무를 쉽게 포기했다, 나는 반성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깊이 듣고 거기에 應해서 말하지 않고, 봄의 [幻]처럼 아름다운, 하고 싶은 말들, 말들, 말들, 많이 하여서 만들어진 세계는, 세계인가 아닌가, 쉽게 가볍게 들뜨고 들떠서 약속과 텍스트를 떠나 멀리 멀리 나비처럼 날아다니는 돌아다니는, 맴맴, 맴도는 말들은, 돌아갈 줄을 모르고, 다시 텍스트로!, 좀처럼 돌아가지 않는 말들은, 마침내 텍스트를 잃어버리고 잊은 말들이, 무의식적으로 증상적으로 잃어버려서 얻게 되는 해방으로, 해방감으로 근근이, 펼쳐놓았던 세계(世界)는 경계없고, 없는 세계이며, 춘몽, "세계없음"이었다, 그 명쾌한 [一場春夢]말이다. 나는 모임주관자로서 반성하고 반성하면서, 세계는없고, 春과 夢만 남아 있는 그 자리를 깊은 밤에 홀로 돌아보는 것이었다, 반성하고 반성하면서, 春과 夢이 없는 쪽으로 가는 것이로구나, 하는 결론으로 반성을 마무리하면서, 인생지사일장춘몽을 차마 입에 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아직도 꿈의 취기는 남아 있고, [幻]의 그토록 애잔한 아름다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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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燕泥子 2019.04.07 20:54
    마침 방학이었고 오랫만에 만난 장숙은 편안했다. 배가 고팠고 너무 달콤하여 모든 신경감각을 마비시키는 듯한 빵을 먹으면서 기쁨으로 가득해졌다.
    방학동안 해방감에 들떠서 책을 멀리하고 고작 일본어를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생각이 점점 사라지고 무언가 열심히 붙들었던 목표나 결심들도 희미해졌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학교생활을 챙기거나 요가를 가는, 그저 정해진 일상을 빈틈없이 하기에도 바빴고 여기 어떤 시간에 속속의 공부를 배치해왔었는지 되려 의아해졌다. 그만큼 그동안의 속속의 공부는 벼락치기로만 근근히 유지해왔다는 자각에 나의 공부 길은 아직 한참 멀고 이제껏 겨우겨우 다만 공부자리에 앉아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직 길게 자리를 옮기지 못한 내가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가서였을까. 장숙이었고 천산족 공부자리였음에도 마치 오랫만에 옛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았다. 잠시의 공백이 주는 이 기묘한 애틋함은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는데 남편의 친구들의 부인들을 아주 오랫만에 만났을 때였다. 공백은 나도 그들도 마치 남편이 아닌 우리들이 동창이었기라도 한 것 처럼 반갑고 애틋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해야 할 말보다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고 잡다한 과거의 얘기들을 더 많이 한 밤이었다. 
     
     하필, 우리가 윤독한 집중과 영혼의 대목은 경(敬), 또 하나의 집중이었다. 소인은 스스로 더욱 자신의 버릇에 고착되고 남에게는 날로 괴로움을 더한다고 했고(下愚不移) 소인은 틈만 나면 제멋대로 구는 행태에 못하는 짓이 없다(小人閑居爲不善 無所不至) 는 문장을 읽으면서 나를 대한 듯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간만이 절망'이라는 하한선으로부터 '단번에 깨쳐도 즉시로 부처와 같아지는 것은 아닐(頓悟而卽不同佛)' 수밖에 없는 상한선의 세속을 오락가락하며 공부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절감하겠지만 안팎으로 스며든 오랜 버릇들을 매 순간의 근신과 집중으로 제어하고 범례와 공의를 좇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집중과영혼, p124>

    다시 속속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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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우젠 2019.04.08 01:23

    이미 당도한 낭독자는 소란을 가라앉히고, 음관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빈 방의 첫 낭독 소리가 푸드덕거리는 새의 날개를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의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곳은 가야할 곳이었다. 그러나 상상을 통해서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이라면 아직 먼 곳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내 가장 가까운 곳에 만성이 되어버린 곪은 부위가 있기에 이런저런 상상도 망상일 뿐이다. 밥 먹는 것도, 말하는 것도, 숨쉬는 것도 낭독도 오직 행하는 데에 있을 테다. 안다, 알고 있다. 여전히 알고만 있다.
    그러나 밀물이 썰물이 되었다가 다시 바다가 되는 순간을 만나기도 했고, 아직은 멀리 있는 백골의 얼굴을 설핏 만나본 것도 같다. 그리고 긴 시간 끙끙대던 질문을 던져보는 귀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다시 생각하면 우습고 민망한 내 말들을 몰래 주워오기도 했다.
    또한 함께 쪼아먹었던 빵맛을 쉽게 잊을 수는 없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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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소자 2019.04.08 16:17
    봄맞이 장숙 대청소가 있던 날 적포도주 몇 방울이 옷자락에 떨어졌다.
    포도주 얼룩은 가능한 빨리 세탁해야했지만
    어차피 늦어버렸고
    섣불리 아무 세제로 빨았다가는
    영영 얼룩을 지우지 못할 수도 있으니
    제대로 준비물을 갖추기까지 얼룩진 옷을 한켠에 둔 채 바라만보고 있었다.
    얼룩 하나로 마음은 무거워져 갔고 일주일이 흘렀고 다시 장숙에 갔다.
    오랜만의 천산족 모임. 윤독을 했고, 합평을 했고, 외국어의 소리에 대해, 선택하지 않는 것에 대해, 쉽게 선택하는 것에 대해,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수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장숙 냉장고에는 1/3쯤 남은 오래된 백포도주가 있었다.
    이미 산화되어 마실 수 없는 상태였지만
    내게 필요했던 것. 작은 생수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와
    대청소날 묻은, 이미 말라버린 적포도주 얼룩을 흔적 없이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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