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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09:15

NDSL(1) 긁어 부스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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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SL. 2024-02-03.

 

긁어 부스럼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은 그냥 놔두어도 될 것을 공연히 건드려서 화()를 만든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속담이다. 이 속담은 극히 보수적이면서도 극히 급진적인데, 기존 질서의 가려운 곳을 긁거나 즉 비판하거나 마땅히 살펴 그 가려움을 해소해 주면,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부스럼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보수적이며, 괜히 긁기만 하면 부스럼이 생길 뿐이니 아예 그 가려움의 근원을 훼파해야 함을 에둘러 드러낸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이 속담의 실천학은 대강 이런 것이다: 긁으면 부스럼이 난다. 그러므로 긁지 않거나 혹 긁었으면 부스럼을 상대해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처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공부로서의 만지기에 대해서도 어떤 이중적인 지혜를 일러주는 바가 있다. 사물을 가만히 만진다는 것은 하나의 덕()일 것이다. 사물이란 부득이 사람의 폭정 아래 내맡겨져 있기에 그를 잘 만진다는 것은 그와 다르게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이며 그의 물질성을 공대하는 형식이다. 타자를 만진다는 것은 애무(愛撫). 레비나스에 의하면 모든 것이 거기에 있는 세상 속에서 결코 거기 있지 않은 것과 놀이하는 방식”(윤리와 무한, 86)이 애무다. 애무로써 타자를 만지는 주체는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타자를 가만히 만진다는 것은 일종의 삼가는 행위, 즉 신()이 될 수 있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모르면서도 당신을 만진다. 그 행위 속에 어찌 조심스러움이 깃들어 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실력 있는 애무란 그 사실을 경애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를 만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가령 피부병은 계속해서 내 병을 만지라고 신호한다. ‘아토피(atopy)’처럼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을 동반하는 피부병은 거절할 수 없는 손님으로 찾아와 자신을 어떤 특정 형식, 오직 긁는 형식으로 만지라고 명령한다. 마침내 그 명령에 복종하여 긁기 시작하면 가려움은 특이한 종류의 통증이 되고서야 멈추는데, 그러면 이제는 그 환부의 밑이 가렵기 시작한다. 긁는 것은 끝이 없고 피부에 난 병은 뿌리가 없다. 모든 피부병은 긁으면 극심한 부스럼을 일으킨다. 만지면 절대로 그 병을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피부병은 내가 나를 만지는 방법은 오직 나를 절대 만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셈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사물과 타자를 만지는 나의 손에 관한 하나의 무서운 진실도 드러내준다. 어쩌면 그들을 만지지 않는 것이 가장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그들을 만지지 않고서는 어찌할 수 없다면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손에는 가시가 있다.

 

1308/공백 제외 1010

유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