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하늘이 무척 높고도 맑아, 공부하는 중간중간 조금은 긴 여백이 허락되기를 바라는 시간이었습니다.
미처 돌보지 못한, 여름을 지나며 탁해져가는 금붕어들의 놀이터가 가벼운 가을 단비로 저절로 맑아지기를 바랍니다.
때로 ‘그대’들에게 직언의 화살을 내리꽂고 그 화살을 쏜 자신이 낯설어 관계가 어색해졌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평인(評人)의 시간에, 비스듬히 말해 타자의 가슴에 가 닿는 말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화자와 청자 모두로부터 발하는 빛이었으며, 우리가 손톱만큼이라도 더 현명해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희랍으로의 회귀 또한 아렌트를, 그리고 우리를 조금 더 현명해지도록 했고, 할 것입니다.
고대로의 회귀를 통해 우리 삶이 선 자리를, 과거의 사람들이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았던 ‘인간의 조건’을, 톺아보는 공부는
숙인(孰人:누구인가?)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숙인으로 살아가는데 더없이 소중한 토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Tell all the truth but tell it slant
EMILY DICKINSON
Tell all the truth but tell it slant — 말하라, 모든 진실을, 하지만 비스듬히 말하라
Success in Circuit lies 성공은 에두르는 데에 있다
Too bright for our infirm Delight 우리의 허약한 기쁨에게 너무 밝은
The Truth's superb surprise 진실은 너무 큰 놀라움이니
As Lightning to the Children eased 친절한 설명으로
With explanation kind 천천히 아이들의 눈을 밝히듯
The Truth must dazzle gradually 진실도 차츰차츰 광채를 발해야 한다
Or every man be blind — (모든) 사람들이 눈멀지 않도록
인간적 숨결을 머금은 비평의 형식은 타자를 향한 존재론적 정성(精誠)이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그 정성은, 시간성을 입고 장소에 빚지며 지며리 개입하고/되는 공부(인간의 일)에 의해 발효된 관계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도, '(모든) 사람들이 눈멀지 않도록 비스듬하게', 상냥하면서도 '존재를 치는 빛'을 잃지 않으며,
유현(幽玄)하지만 적중함으로, '애써 배운 희망'의 관계 형식을 마중하게 합니다.
(매사 아름다운 시와 그 시가 빛나도록 바라보는 시선의 선물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