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회 속속에서는 K 선생님의 부재 속에서도 늘 해온 형식에 따라 운신하며, 매 순간 동학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오직 응해서 말하는 가운데 가을 해가 저물고 가을 달이 비추었습니다.
선생님이 안 계신 자리에서 『인간의 조건』을 끝내게 되어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연니자, 초담, 하이당 선배의 안내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숙인 각자의 소회를 나누는 자리가 풍성하였습니다. 여기, 같이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합니다.
- 아렌트가 언급하는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문제 의식에 공감
- 장숙 공부를 통해 다른 길을 걸을 수 있는 개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 장숙 공부와 폴리스의 유사성과 차이점
- 노동, 자본과 사회적으로 불화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의 가능성, 소비에 끌려가지 않는 실력을 길러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아렌트 개념과 선생님 이론의 대결, 어울림이 흥미
- 노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아렌트의 맥락을 고려할 때, 노동에서 해방되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장숙에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까?
공부하지 않는 그들을 비난하거나 다르게 말할 수 없다. 단지 우리가 하는 공부에 감사할 따름이다.
- 정치에 대한 이해가 달라졌다. 정치를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정치인이 탁월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탁월한 정치인은 누구인가?
- 실천적 행위로서의 정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실천 영역에서 기술에 휩쓸리지 않으며 살 수 있으려면?
우리의 공부가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 있을까? 행위의 전제조건은 행동과 다르게 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 노동자로서 동질화, 단일화되는 현상에 맞서 다원성을 회복하는 것으로서의 공부, 고립되지 않고 각자 바깥 현장을 가지고 일상에 서 공부하는 행위가 정치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
『인간의 조건』 조별 토론 시간이 짧지 않았는데도, 결국은 짧아, 조별로 논의된 내용들에 대해 공유할 시간이 살짝 부족하여 후기에 상세한 내용을 담지 못해 송구합니다.
아렌트는 “긴장감, 목표에 대한 집중력, 좋은 것에 대한 본능적 감각, 본질에 대한 탐구, 심오함 등으로 인해 일종의 마법적 분위기를 풍겼다.”
(『인간의 조건』, 28쪽, 이하 인용 문장은 모두 같은 책에서 가져 왔습니다)
이 문장을 더듬으며, 『인간의 조건』을 통해 아렌트의 숨결에 다가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고대 그리스에서 인간의 조건의 으뜸이었던 행위와 말이 개현(開顯)되는 장소인 폴리스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었던 공부였습니다.
“네가 어디에 가든 너는 폴리스가 될 것이다.”(290쪽)
이 말은 오직 행위와 말을 통해 자신의 탁월성을 증명했던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이 만들어간 현상의 공간으로서의 폴리스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엄밀히 말해 폴리스는 지리적 위치를 가진 도시국가가 아니며, 사람들이 함께 행위하고 말함으로써 생겨나는 사람들의 조직”(289-290쪽)이었습니다. 또한 “그리스인에게 폴리스는 개인적 삶의 무상성에 대항하는 무엇보다도 분명한 보증서이며, 죽을 운명인 인간에게 불멸성을 보장하는 공간.”(130쪽)이기도 합니다.
자, 이제 폴리스라는 장소와 장숙이라는 장소의 어떤 겹침이 보이나요?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지 않고도, 인간 행위과 정신(말)으로 현상되는(appear) 어떤 장소. 그 장소에서의 어울림이 다시 장소의 깊이를 더하는 중층의 장소. 우리의 배움터인 장숙에서 오래된 미래의 공부자리의 가능성이 설핏 보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