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속’과 ‘속속’ 사이, 밀양 선생님 댁에서 <동암강독>이 열립니다.
선생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 배움을 청하며, 공부란 '그곳'으로 가려는 애씀이라는 것을 상기하였습니다. 대구와 천안 등지에서 모인 8人의 회원이 <차마, 깨칠 뻔하였다>를 읽고 있어요.
(2회 동암강독 中)
선생님께서 몇 갈래로 강독을 해주셨고, 각기 독서하며 풀리지 않았던 부분을 질문하였습니다. 어둡던 곳이 환해지기도 하였고 환해질 때까지 품어야 할 문장을 만나기도 합니다. 삶의 실질을 이루고 있는 작은 자리, 그곳을 여는 질문(門)을 배우기도 하였어요.
“너는 죄 없이 만질 수 있는가.”
삶을 구성하는 갖은 활동 중에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것이 ‘만지기’이니, ‘만짐’에 대한 나름의 윤리와 철학이 생성되어야만 했습니다. 하루의 첫 만지기에 정성을 모으는 모습을 힘껏 상상하며, <곱게 만지기>라는 배운 말로써 중심을 낮추어 봅니다. ‘말하기’도 일종의 말(言)로 '만지기’라는 말씀이 생각나, 글자를 잘 만지듯이 낭독하려는 새로운 실천의 자리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이름‘으로 불려진 ‘어떤 존재’는 분명,
불려지는 순간 마다 남다른 빛을 띄며 살아날 것임으로,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이 아름답게 여겨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름을 가진자들을 부를 수 있다는 귀함.
어떤 이에게 불려질 수 있다는 귀함.
더해서 이름을 기휘하는 귀함, 까지.
유독 부르고 싶은 이름들이 많아지는 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