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강-2021년 11월 13일 115회 속속 지린
경험가설
*이름
나는 각각 세 가지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나는 그 이름에 얽혀 있는 각각의 다른 과거로 구성되어, 그에 따라 조금씩 다른 정서를 느낍니다. 저기요, 또는 이봐요, 손님! 등의 이름 아닌 것으로 불릴 때도 있습니다. 그때에도 나는 그 부름에 응해서 대답을 하거나 반응합니다. 그러나 그 체제는 상황이 끝나면 곧 흩어지면서 해제됩니다. 나는 더 많은 이름을 갖는 것이 가능합니다. 각기 다 다른 나무의 이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나무의 이름처럼, 헤아릴 수 없는 다른 이름들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 개의 이름 바깥은 거의 없는데, 거기에는 아직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부를 수가 없는 까닭으로, 시간이 머무를 수 없는 탓입니다. 이름이 세 개나 있더라도 나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실재로, 단 한 개로 밖에는 불릴 수가 없는 그 단 하나의 이름일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를 때, 내가 그를 돌아볼 때, 나는 그 이름으로만 유지되는 존재가 됩니다. 나는 그 이름의 경계 안으로 모두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 순간은, 다른 이름은 모두 사라져야 가능하며, 이름 없는 영역도 가능성으로 사라집니다.
*대상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이지만, 늘 내가 모르는 곳에서부터 옵니다. 모르는 곳에서부터 당신이 와서, 내가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나는, 당신은 늘 내가 모르는 곳으로부터 온다는 변할 수 없는 조건 앞에서, 당신을 모른다는 어둠과 내 앞에 당신이 있다는 분명함으로 현기증을 느낍니다. 나는 당신을 부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당신(이름)을 부를 뿐입니다. 이것은 그물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모르는 당신은 가능성으로 밀려나갑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 부름에 대답을 하는 것으로 다가옵니다. 그물은 언제나 당신을 포획하지 못하고, 밀려나가던 가능성이 마침내 방향을 바꾸어, 우리의 만남과 대화에 예비 된 시간으로 재빨리 진을 치고 있습니다.
*시작
시작은 가능성의 개현이고 창조이며 분명하게 없었던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필연적인 것입니다. 당신은 내가 당신을 아는 것으로 속박되어 있었으나, 그 속박을 징검돌 삼아 내게 모르는 곳에서 가져온 말을 전해줍니다. 그것은 빛인데, 당신이 모르는 곳에서 와서 생겨나는 내 안의 어둠을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속박으로부터 늘 해방되고 있었다는 증표이고, 그것은 창조이자 시작인데, 내가 저 앎의 징검돌을 건너 온 당신의 말을 듣는 순간, 몰랐던 세계가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낯설고 전혀 새로운 세계입니다.
"모든 가설은 경험"이겠구나, 이런 경험을 서술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경험도 가설이군,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