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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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속 공부의 시작은 자기소개였다. 장숙의 개숙식에 초대받았을 때 손님이지만 역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 식으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까지 해왔던 자기소개를 떠올려보았다. 주로 취업을 위한 이력서(履歷書)에 필요한 자기소개였다. 성장과정, 학창시절, 가족관계 등, 살아온 시간과 살면서 맺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과거로부터 현재로까지 이어지는 발자취(履歷)와 앞으로의 다짐을 곁들였던 자기소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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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는 자신에 대한 자신의 재서술(redescription)이다.
이후로 계속된 자기소개는 내 안에 끊임없는 질문을 불러왔다. 공부자리에서 준비되지 않은 채 갑작기 자기소개를 맞이했을 때의 몇 번의 당황스러움은 점차 자기소개를 준비하게 했고, 때로는 글로 써서, 때로는 마음속으로 자기소개를 준비했다. 2주간의 생활에서 일어난 변화나 사건들을 말할 때도 있었고, 학인으로서의 나의 생활을 반성할 때도 있었고, 그냥 단지 2주간의 느낌에 대해, 속속에서 공부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질문이 끊어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물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서술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말로 구성된 사람인가? 나의 자기소개는 지금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나는 변화에 집중하고 있는가, 과오에 집중하고 있는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가, 내가 재서술하고 있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다짐 속에 그려지는 미래의 나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인가? 학인으로서 자기소개를 공부의 형식으로 가져간다고 할 때 나는 그 의미에 맞는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가? 자기소개라는 형식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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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은 물음의 수행 그 자체가 새로운 공부 길을 열어낸다. 좋은 물음은 새 문을 열어내고(賢問開門), 절실한 물음은 삶을 문제시(切問近思)하듯이 자기소개를 통해서 만나는 물음은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공부하는 학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공부였다. 속속을 떠나 잠시 방학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가끔 속속을 떠올리며 속으로 자기소개를 하곤 했다. 비록 혼자 하는 자기소개였지만, 속으로 해보는 자기소개는 타인을 배제하는 속성에 있는 자기-생각이라는 틀 속에서 나와 다시 말해, 나의 ‘생각’에서 나와 너의 ‘사실’에 다가가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자기소개를 통해서 나는 바깥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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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자기소개
공부자리에서 나의 자기소개의 주제는 ‘나는 왜 공부하는가’, ‘왜 나는 공부자리에 있고자 하는가’ 이다. 매 공부모임마다 공부를 준비하며, 공부자리에 앉아서, 내가 여기 있는 이유와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환기한다. 과거에 얽매인 내가 아니라, 현재의 상황과 조건에 매몰된 내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일, 그 질문, 그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재서술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