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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렸던 천산족 모임의 작문시간(오후3시30분~4시30분)에 적어 보았던 몇 문장을 옮기면서,
한두 마디 덧붙이는 것으로 모임 후기를 대신 할까 합니다.
저는 어제 이 문장들을 쓰면서 여리고 부드러우면서도 민감한 감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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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온천역 앞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습니다.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들 중,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이 여섯이었습니다.
청바지를 입고 있지 않은 사람도 여섯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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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플랫폼에 서 있는 데, 어떤 여자가 전화통화를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내 옆을 지나갈 때, "정말 창피해" 하고 말하는 소리가 봄바람처럼 나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 여자는 흰색 윗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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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역에서 출발하여 용산으로 향하는 무궁화호가 온양온천역에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아버지를 뵈러 갔을 때, 아버지는 내게 익산역을 지나가는 기차들의 시간표를 주셨습니다.
기차시간표를 만지작거리고 계시다가 내 눈길이 거기에 머물자, "이것 줄까?" 하셨습니다.
나는 "네, 주세요." 하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종이에 인쇄된 그 "익산역기차시간표"는 제 집 냉장고 냉동실 문에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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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도 한 점 온기와 한 점 빛은 있는 법이고,
찾아내보자면 우수수수 쏟아져내리는 법이니,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서, 거의 침묵으로라도,
끊임없이 무너져가는 삶을 찬양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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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 혼자 가야겠어." 신발주머니를 펼치며 로즈는 마음 먹었다.
마틴이 나와 함께 가주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갈 거야.
버지니아 울프 『세월』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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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 문장에 나오는 로즈는 아직 어린 소녀입니다.
위 인용 문장이 나오는 대목에서 로즈는,
상상의 힘으로, 어린아이들은 나다닐 수 없는 가로등 켜지는 저녁거리로 튕겨나가듯 나갔다가,
자신을 향해 알 수 없는 제스처를 해보이는 낯선 남자가 있는 풍경에 들어섰습니다.
로즈는 달렸고, 달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상상의 힘으로,
자신이 지나왔던 이상한 낯섦과 공포에서 빠져나와 어린여자아이의 부드러운 감성을 회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