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나무 (1)
1. 진화는 점진적인가? 단속적인가? - 말의 진화를 중심으로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인류는 오랫동안 거대한 규모의 실험을 계속해 왔다”라고 썼다. 아마도 인류가 농경을 통해, 그들 자신에게 유용한 동식물의 신품종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 착안한 말일 것이다.1) 바로 이 거대한 규모의 실험 중에서 말은 진화적 추세의 단골 사례 중 하나다. 말은 소목과 관목의 연한 나뭇잎을 따먹다가 풀을 뜯어 먹는 종으로 변하였다.2) 이런 말의 진화의 과정은 화석기록을 통해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초기의 말의 형태는 어땠을까? 말의 조상인 에오히푸스(Eohippus)에서 현생 말인 에쿠우스(Equus)가 되기까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초창기 말 연구는 1926년 미국 고생물학자 윌리엄 매튜가 발표한 ‘말의 진화 : 기록과 해석’이란 논문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 논문에서 매튜는 그 당시까지 수집한 데이터를 갖고 말 진화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을 제시했다. 또한 매튜는 이런 진화 패턴을 단순화한 그림으로 정리했다.
<그림 1 > 윌리엄 매튜의 말 진화도 3)
이 그림은 번역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그림 2>로 소개된다.
<그림 2> 말의 진화도 (출처 : 에듀넷)
<그림 2>의 말의 진화 과정을 보면 말의 조상의 크기는 고양이 정도 크기였다. 그러나 몸의 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졌고, 머리의 골격 변화를 보면 뇌의 크기가 점차 커지면서 주둥이가 길어지고 치관이 높아진다. 동시에 발이 발굽으로 변하면서 발가락을 잃어버린다. 마치 말의 진화 과정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점진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2>와 같은 직선적인 계통도는 "종은 항상 진보한다"는 개념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즉, 멸종한 종들은 환경에 뒤쳐졌기 때문에 도태된 것이고 살아남은 종들은 좀 더 좋은 형질을 갖게 된 완성형의 종으로 적응해왔다는 것이다. 다윈은 생명의 진화가 누구도 살아서는 목격할 수 없을 정도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장중하고 정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다윈의 진화론을 점진론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4)이다. 말의 화석 기록은 바로 이런 진화의 점진적인 과정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사례처럼 보인다. 정말 풀을 잘 뜯는 말이 연한 나뭇잎을 따먹는 말과의 경쟁에서 성공함으로써 진화해왔을까? 연한 나뭇잎을 먹는 말의 종은 도태된 것일까? 다른 포유류들과 마찬가지로 말의 진화도 몸의 크기가 커지는 일관된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 역시 화석자료가 제공해준다. 1940년대에 들면서 말과 관련된 화석자료 데이터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고생물학자들은 이 많아진 화석 데이터를 보고 점진적인 계통도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메소히푸스(Mesohippus)가 마이오히푸스(Miohippus)로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들은 400만년동안 공존하였는데, 이들 화석 종들은 400만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 완전히 구분되었다. 심지어 와이오밍주의 한 지층에서는 메소히푸스 3종, 마이오히푸스 2종, 현생종의 화석이 같이 발견되기까지 하였다. 다른 문제도 있었다. 일단 말과 관련된 화석 종들을 보았을 때, 이들이 언제나 덩치가 커지고 발가락수가 감소하고, 치관이 커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가 없었다. 조사한 24쌍 중의 조상-자손관계의 종들 중에서 5쌍의 종에서 크기 감소를 발견하였다. 최악의 경우는 나니푸스(Nanippus)라는 종인데, 이들은 에쿠스(Equus)다음으로 가장 최근에 살았던 종임에도 불구하고 조랑말보다도 작은 소형의 크기였다.
<그림 3> 말의 계통수 5)
<그림 3>은 McFadden, Bruce가 2005년도에 "Fossil Horse - Evidence of Evolution."에서 소개한 말의 계통수 그림이다. 이 계통도를 자세히 보면 화석 종들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5) 굴드는 이에 대해 이렇게 주장한다. ‘말의 진화 역사에서 한때는 생존 방식과 크기 면에서 서로 다른 많은 종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중 몇 종들만 살아남게 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살아남은 종들은 우연히 평균적으로 큰 덩치를 가진 것들이었다.'6)고 말이다.
다윈은 한 종과 다른 종의 과도기적인 형태는 분명 존재하며, 단지 그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설명을 시도했다.7) 화석기록은 불완전하다. 많은 종들은 실제로 몇몇 지층에서만 화석으로 발견된다. 게다가, 몇몇 그적이고 유명한 예외들을 빼면 동물들의 딱딱한 부분들(가령, 껍질, 뼈, 그리고 이빨)만 화석화 된다. 그래서 일부 변화들은 분명히 감지될 수 없을 것이다. 진화적 변화는 화석 기록의 틈새들 때문에 실재보다 더 단속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존재했던 중간 단계의 변화들이 화석으로 말미암아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8) 다윈도 화석상의 기록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심하게 불연속적으로 보인다는 사실 때문에 몹시 괴로워했다.9) 화석을 조사해 보면, 긴 시간에 걸쳐 느린 속도로 진행되던 형태 변화가 갑작스럽게- 거의 순간적으로-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시기에 의해 단절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닐스 엘드리지(Niles Eldreage)와 스티브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이야기하는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이 그것이다. 칼세이건과 앤드류안은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에서 ‘진실은 모든 것이 한꺼번에 변하는 대격변과 느리고 착실한 변화라는 마치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는 양극단을 모두 포용하며,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것 같다.’라며, 점진론과 단속평형설 사이의 논의에서 한 발 물러선 태도를 취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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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칼세이건, 앤드류안,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사이언스북스, 2021. p.103.
2) 킴 스티렐니, 장대익 역,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 몸과마음, 2002. p.122.
3) 말의 진화,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1&contents_id=13197
4) 장대익, 「다윈의 식탁」 바다출판사, 2015. p. 172.
5) 스뀡크, 말의 진화론,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sinhj2003/80133421198
6) 킴 스티렐니, 위의 책, p. 123.
7) 칼세이건, 앤드류안, 위의 책, p.112
8) 킴 스티렐니, 위의 책, p. 125
9) 장대익, 위의 책, p. 173.
10) 칼세이건, 앤드류안, 위의 책, p.160
"나에 대한 비판자 중에는 나를 두고 '네, 그는 아주 훌륭한 학자입니다. 그러나 논리적인 추론은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종의 기원>이 단 하나의 주제에 대한 기나긴 논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유능한 사람을 한 명 이상 설득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에 대한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찰스 다윈, 『자서전』
저는 이번 교재 발제를 준비하면서 이제 막 다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답니다. 선생님께서 니체의 말을 인용해서 알려주셨던, '진리를 오래 견디는 정신'으로 표상해 보곤 해요.
글을 읽으며 슬몃, '화석 자료'나 기술과 더불어 논증되고 진화하는 과학 이론과 다르게, 인문사회과학 이론은 무엇을 매개삼아 진화(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이 생기기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