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윤수〈시인〉 |
옛 시절, 멀리 군에 간 연인과 전화 통화를 하려면 한국통신에 시외전화 신청을 해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겨우 부대 전화와 연결되었다. 어렵사리 통화가 돼도 통신 상태가 나빠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서로 고함치듯 말해야 했다. 때로는 전화가 툭툭 끊기곤 했는데, 그 아쉬움은 고전이 되어 아직도 해당화 향기처럼 은은하다. 이보다 훨씬 앞 시대에 살았던 스콧 니어링은 미국 경제학자이며 반전·반자본주의·자연주의자였다. 그의 아내 헬렌은 구순이 넘은 남편 건강을 염려해 비상 연락망으로 전화를 설치했는데, 그들은 전화기를 헛간에 두고 꼭 필요할 때만 사용했다. 니어링은 전화에 대해 "어느 때든 부르면 모습을 보여야 하는 하인처럼 사람을 불러대는 방해물이자 훼방꾼"이라고 했다.
나는 작년 중순까지 최저 용량 휴대폰을 사용했다. 그 기종은 천방지축 말을 듣지 않고 수시로 마비되었다. 그래서 당시 최신 폰으로 바꾸었다. 여행 때 길 찾기와 사진 찍기가 긴요해서였다. 나는 집중해야 할 때 혹은 집에 있을 때나 잘 때 곧잘 휴대폰을 꺼놓는다. 휴대폰이라는 괴물을 먼저 잠재우지 않으면 그것이 야기하는 많은 유혹을 뿌리치거나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휴대폰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철학과 인문학의 대가로 저명한 그분은 애초에 삐삐가 없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휴대폰을 구입한 적도 없다. 휴대폰 없이도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는 그분은 오히려 휴대폰이 오염시키지 않은 청정한 삶의 시간을 누리신다. 또 한 분은 제주도 우도초중등학교 영어 선생님인데, 고향이 호주인 외국인이다. 우연히 섬에서 만나 잠시 얘기 나누다가 연락처를 물으니 휴대폰이 없다며 e메일 주소를 적어주었다. 나는 두 분 다 부럽다.
코로나19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비극과 달리 현대인은 휴대폰 없는 시대로 돌아가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휴대폰은 반려견 같은 반려폰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가끔 휴대폰을 반려(返戾)하고 싶다. 휴대폰의 순기능 이면에는 유무형의 역기능도 심각할 정도로 많다. 휴대폰이 우리의 무엇을 지배하고 빼앗아 가는지, 담배의 폐해를 포장지에 끔찍하게 명시하듯이 휴대폰 사용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도 매뉴얼에 첨부해야 하리라. 폰을 꺼놨다고 심한 오해를 받은 적이 몇 번이나 있지만 그래도 나는 휴대폰의 노예나 식민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아, 그리운 해당화 향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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