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8 147회 속속
‘말(言)’을 하기 위하여 나는 무엇을 했는가
유재
제가 감히 말하기를 주제로 자득을 나누게 되니 매우 겸연쩍습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을 하기 위해서는 입(口) 위에 네 개의 층을 쌓아 내어(言) 마치 입의 탑을 만드는 듯 해야 할테니 자격여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자신의 탑을 소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두 가지 하지 않기와 두 가지 하기를 소개합니다.
1. 무엇보다 저는 잡담(雜談)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자 합니다. 잡담은 말의 기운을 흩뜨립니다. 때에 따라 적절히 말하고 침묵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의 기운을 따르는 것입니다. 잡담은 필시 다변과 관련되어 있고, 그 근본을 따지자면 잡다하고 번다하게 ‘구경하는’ 형식의 말입니다. 말을 아끼지 않고 아무 말이나 하며 자신이 힘써 관계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좋고 나쁨을 말하는 것은 자신이 하는 말의 힘과 의미를 흩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옛 현인들은 잡담의 주제가 될 만한 것들을 멀리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가령 H. D. 소로우는 ‘뉴스’를 멀리하라고 했고, 이덕무는 ‘일상생활의 화젯거리’나 ‘바둑이나 장기, 색(色)이나 술과 안주, 출세와 좌천’ 등 온갖 잡다한 일들을 멀리 하라 했지요. 물론 현대 도시인으로서 저는 주제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든 말할 수 있다 여깁니다. 다만 무엇에 대해 말하든 그것을 궁구(窮究)하여 말의 기운을 모아내어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경할 수 없도록 말을 한다면 그것은 설사 사소한 뉴스라도 결코 잡담이 아닙니다.
2. 저는 책선(責善)하지 않으려 합니다.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충고이고 조언일 수 있는지 저는 알지도 못할뿐더러 알 수도 없습니다. 자아중심적이고 도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판단기준으로 ‘이런 것이 옳다, 이렇게 하라’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것이기도 하지만 매우 위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말하는 자의 부족함이 문제는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운명의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관점에서는 옳고 그른 것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인물됨을 가다듬어 가며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갑니다.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또 훌륭하면 훌륭한대로 그가 형성해가는 캐릭터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 ‘연극하듯이’ 말하려고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려면 제가 이 말하기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혹은 맡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당연히, 미리 정해진 역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대화가 종료된 후에는 제가 어떤 역할이었는지가 보일 것입니다. 이것을 연습하기 위해서는 4명으로 구성된 토론실습을 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간 관계상 간략히 소개하자면, 먼저 동일한 주제에 대해 논하고 있는 책을 두 권 이상 정하고 찬반이 갈라설 수 있는 논제를 정합니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뽑기와 같은 것을 통해 찬성과 반대를 정합니다. 정해진 책 속에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만 찬성과 반대를 주장합니다. 상대편도 반드시 책 속에 있는 내용을 근거로 해서만 이에 대해 응답합니다. 따라서 책을 아주 잘 읽어야 합니다. 왈츠를 추듯이 번갈아가면서 찬반의 근거 3가지를 말하고, 상대방은 그 근거 3가지에 대해 재반박합니다. 같은 것을 번갈아 행합니다.
4. ‘준비(準備)’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물론 우선은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내게 ‘말해야 할 때’가 찾아왔을 때, 그때를 위하여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속속은 매우 특수한 형태의 대화장소입니다. 물론 조별토의가 있긴 하지만, 한 자리에 있을 때는 10명이 훨씬 넘는 규모의 사람들이 함께 있으며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무언가를 배우며 자신에게 말의 기회가 왔을 때만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꺼내기는 매우 어렵고 공부의 흐름을 잘 살피다가 기회가 왔을 때 그 흐름을 어지럽히지 않는 한에서 할 수 있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할 수 있는 노력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준비입니다. 좋은 한문의 문장들을 함께 읽고 해석하는 강독시간의 문장들에서부터 준비를 시작합니다. 나름대로 배우고 느낀 바를 예습하며 적바림하고 가능하다면 그 문장의 작가들에 대해 알아둡니다. 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재를 매우 철저히 읽고 그 교재의 여러 부분들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서 써 둡니다. 그러한 준비들을 가지고 연극에 임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무조건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어야 하지만, 준비되어 있을 때 좋은 역할을 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연극과 준비의 관계는, 말이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말하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내게서 온 것도 아니고 내 소유도 아닌 것이 언어의 자리 같습니다. 오늘 부족한 대로 저의 생각을 나누며 저도 저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다잡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