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와 비합리 너머 초합리의 종교로
지난 속속에서 살펴본 서양 역사 속의 종교는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며 탈주술화(종교적 합리주의)의 과정을 거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고통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신에게 청원하여 얻은 구원재는 직접적인 습득이 가능한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의미를 가지는 심리적 비일상성(종교의 비합리성)이었습니다. ‘경험과학의 합리주의가 발달할수록 종교는 비합리적 영역으로 축출’(264쪽)되었고, 그 결과, ‘종교적 세계상과 주지주의적 세계상의 근본 지향점이 가진 불가피한 상이성에서 발생하는 궁극적인 내적 긴장은 결코 사라지지’(265쪽)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종교에서는 자만에 찬 오성의 공격에 대해’(266쪽) ‘구원종교의 인식은 오성과는 다른 영역에서 진행되며 그 성격과 의미에 있어서 오성이 수행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이질적이고 상이하다’(266쪽)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구원종교가 제공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 또는 규범적으로 타당한 것에 대해, ‘오성의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의 카리스마에 의거하여’(266쪽) 세계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포착하여 궁극적 입장을 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신비적 체험이 가진 절대적인 전달불가능성(신비적 체험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이 체험을 사건으로 일어나게 하는 수단만 있을 뿐, 적절하게 전달하고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은 없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신비적 체험의 전달불가능성의 형식은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인 ‘직관’의 형식과 유사합니다. ‘무의식이 정성한 다한 의식에 주목’하여 초의식을 향해 가듯, 구원종교의 세계 인식은 과학의 합리적 프리즘을 통과하되(종교의 비합리성 인식), 오성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오성과 함께, 오성을 넘어, 깨달음의 카리스마에 의거하여) 발전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