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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잘 살아야 외로움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단단하고 합리적인 ritual(의례)이 있다면
외롭지 않습니다.
생활 및 관계를 바꾸려는 과정에는 '다르게 만지기'가 필요합니다.
처음 만지는 것, 그것이 처음 시작입니다.
하루살기에 성공하려면
처음 만지는 물건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합니다. (선생님)
무언가를 정성껏 잘 만지는 것,
잠에서 깰 때 조심스레, 정성껏 램프등을 켜는
선생님의 의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만지기'라는 소소한 행동을 다르게 해봄으로써
공부의 차원을 넘어 수행으로 나아갈 수 있음에 대해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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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야만 꽃이다'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고
숨길 때에 비로소 드러나는 극적인 아름다움!
인간의 행동 또한 그러하기에
간단한 오해는 푸는 게 좋고, 품어야 유익한 오해가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에게는 오해의 욕망이 있기에 사람과의 사이에서 오해는 필연적인 행위인 듯 합니다. 오해를 품어가면서 긴 생활로 풀어내기 위한 그런 실력을 키워가는 것이 학인의 과제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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虛室生白(허실생백)
마음을 비워야 신이 온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알면서 모른체 해야 알 수 있는 앎이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미래를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모를 때에 선물같이 찾아오는 것이 있습니다.(선생님)
'미래의 일, 저 너머의 일이 나의 어떤 동작으로 인해
생길 수 있다면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을 궁리해 볼 수 있다'는,
것이 공부의 지향임을 알게 되고, 선생님께서 또 한걸음 앞으로 끌어내어 주시는 듯 하여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내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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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의 존재론, 개입의 인식론
오래도록 선생님께서 공부하신 '알면서 모른체 하기'에 대한 사례를 들어주셨습니다.
꿈과 생시, 삶과 죽음, 사물과 인간, 정신과 육체가 연결되어 있는
'불이의 존재론'
양자역학에서 관찰자가 변수로 작용하듯이
신비체험도 자신의 개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공부하였습니다.
'개입의 인식론'
다만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자신의 개입을 모를 뿐이지요.
'이미 /언제나 개입하고 있기에 불이'라는 앎을 향해 나아가고자
공부를 이어갑니다.
和顏順辭齊容
일상에, '곱게 보'는 시선과 의례적으로 정성들여 '다르게 만지'는 실천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타성에 젖은 일상의 자동성을 끊어내고, 매 다르게 만지는 순간마다 '새롭게 시작되(한나 아렌트)는 진적한 생활을 알게 하였습니다. 주변자리에 항상 두어 함께하는 사물들과도, 생활의 자리에서 더불어 식생(食生)하는 달큰한 '살'들과도, 조금은 시선의 밖에 있어 만남이 적은 여타의 사린들과도, 곱게 바라보고 다르게 만짐으로 매 순간 시작되는, 그 사이/관계 속, '연극적 실천'의 지평 또한 열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