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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진이 푼크툼이 되는 순간

 

                                                                                                           숙인 지윤경

 

오늘 같은 밤이면 그대를 나의 품에 가득 안고서 멈춰진 시간 속에 그대와 영원토록 머물고 싶어.

                                                                                                        박정운, <오늘 같은 밤이면>가사의 일부

 

Time goes by without a break. We gather and disperse by fate that we never know the full depth and meaning of.

But the beauty of the moment lasts forever if only we understand we've been always and already engaged in the realms unknown 

but trustworthy.

시간은 쉬지 않고 지나간다. 우리는 그 깊이와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운명에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그리고 이미 알 수는 없으나 믿을만한 영역에 관여해 왔다는 것을 이해하는 한, 순간의 아름다움은 영원하다.

                                                                                                                                                        장숙홈페이지, K 선생님

 

쾌락의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사실, 혹은 쾌락의 순간은 이미 구성적으로 이별을 예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단하는 것은 어렵고 또 불쾌하다. 그러나 어긋남의 세속속을 살며 공부하는 자로서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쾌락이라는 도드라진 행운의 순간은, 바로 그 주변의 빔()을 희생함으로써만 근근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하는 것이다.

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K 선생님, 142

 

 

2년 전 많이 아팠을 때의 일입니다. 그 해 여름, 부모님 두 분의 팔순과 칠순이 동시에 있어서 아픈 와중에도 뭔가 특별한 기억을 선물해 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것 저것 궁리를 하다가 그동안 모아온 사진들로 사진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 며칠동안 사진 파일을 찾기 위해 노트북을 뒤지기도 하고 인화하여 앨범에 정리해둔 사진들을 스캔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작업을 하던 첫날부터 마음속에 쉬 다스려지지가 않는 파동이 느껴지기 시작하다가 급기야는 가슴이 꽉 막히며 크게 울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이 언제든 열어보실 수 있게 하려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인데, 왜 그리도 눈물이 나는 일이 되고 말았는지, 눈물을 넘어 어떤 슬픔이 밀려와 사진 고르는 작업을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사진책을 만드는 일은 지금까지도 미완의 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주했던 깊은 슬픔의 근원은 사진 속의 부모님은 갓 태어난 첫 아이를 안고 더는 행복할 수 없는 표정으로 미소 짓고 계신데, 지금은 칠순 팔순을 맞는 나이에 이르셨구나. 사진 속 그분들은 카메라에 포착된 순간부터 영원한 삶을 얻었는데, 현실의 부모님은 죽음을 향해 조금씩 이동하고 있구나.’ 하는 어쩌면 인간사 당연지사인 것을, 사무치는 슬픔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사진에 대한 슬픔, 혹은 두려움은 그 때 시작되었던 듯합니다. 그 정서는 사진이라는 표현 매체가 태생적으로 가진 특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령 이렇다고 할 수 있지요. 전쟁 등의 사건을 알리거나 기록하기 위한 보도 사진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보통 한 가족 안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은 기분이 좋거나 특별히 기념해야 할 좋은 일들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그 찬란했던 순간을 기억할 때 쯤에는 과거의 그 기쁨과 행복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진 삶 속에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요? 우선 물리적 시간으로만 보아도 그 사진 속의 피사체보다는 늙음을 향해 가는 나이일 것이고 행복의 감가상각이라는 말도 있듯, 모든 찬란한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말이지요. 그렇다면 나중에 이것을 다시 보기 위해 사진으로 남긴다는 것은 이미 본래적으로, 삶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회한 -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늙을 수밖에 없고, 최고의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오는 을 내포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마음으로 과거의 사진들과 마주하자니 추억을 소환하여 잠시 행복해지기는커녕, 아무 일 없이 살 때는 그 아무 일 없는 안이한 삶이 일러주지 않은 생의 비극적 의미를 사진을 통해 알아버린 것 같아, 사진이라는 표현 매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작년, 다시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고, 일상에 여유가 생기면서 많이 빠진 체중이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제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가끔 핸드폰으로 제 얼굴을 찍어보곤 했습니다. 2년 전 마음 그대로였더라면 감히 사진을 찍는 행위를 더 이상은 하지 않았을 터인데, 건강이 회복되며 생긴 마음의 여유가 사진에 대해 넉넉하고 긍정적인 시선을 다시 보내도록 했나 봅니다. 그 사이 시간에도 과거의 사진은 그대로인데 변한 것이 있다면 저의 몸과 마음의 상태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제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동일한 사진이라도, 읽고 해석하는 방식이 달라졌던 것이지요. 이것은 어쩌면 문학에서의 독자반응비평처럼 일편 당연한 듯하기도 하지만, 개인의 호오나 감정의 소용돌이 너머, 투명하고 일관된 시선으로 사진을 볼 수는 없을까요? 사진의 미덕이 순간의 행복을 영원으로 잡아두는 것이라 할 때, 그 아름다운 찰나를 영원으로 붙들어 놓는 사진에 대해 언제나 한결같은 고운 시선을 보낼 수는 없을까요?

롤랑바르트는 사진에 관한 에세이집인 카메라 루시다(밝은 방)에서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이란 개념쌍으로 사진을 설명합니다. 스투디움이란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해석의 틀에 따라 사진을 읽어내는 방법을 이릅니다. 스투디움의 요소가 강한 사진을 보는 사람은 그 사진을 통해 평균적인 문화교양인의 정서나 그간의 문화를 통해 길들여진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통상 그것은 구경꾼의 관점에서 사진들을 스쳐 지나가며 느끼는 가벼운 호의의 감정을 가리킵니다. 반면 푼크툼이란, 사진에 보는 이의 개인적 취향이나 경험, 잠재의식 등이 연결되어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강렬한 자극을 말합니다. 푼크툼은 라틴어로 뾰족한 도구에 의한 상처, 찌름, 작은 구멍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바르트의 비유에 따르면 푼크툼은 화살처럼 사진에서 떠나와 사진을 보는 사람을 관통할 수 있는 뾰족한 부분으로,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깊은 상처와 흔적을 남깁니다. 이처럼 예리하고 뾰족한 푼크툼은 우리 깊숙이 침투해서 존재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푼크툼은 스투디움의 익숙함을 깨뜨리거나 밋밋한 스투디움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삶의 진실을 보여주는 작은 구멍의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푼크툼은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기에, 사진 감상자가 사진에서 스투디움을 찾으려 할 때, 그와는 반대로 푼크툼이 불현듯 우연히 엄습할 수도 있습니다.

롤랑바르트의 이 두 개념틀을 따라가자니, 저에게 가족 사진은 스투디움이었을까, 푼크툼이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사진을 촬영했던 행위는 가족의 행복을 바라고 누리는 소박한 마음에서 출발하였고, 또 인화되어 나온 사진을 두고두고 찾아보았던 때만 해도 그 사진들은 스투디움을 담고 있는 사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을 겪어내며 세월의 더께가 쌓인 제 마음과 경험의 눈에 동일한 사진 속에서 스투디움이 아니거나 스투디움을 넘어선 푼크툼을 보게 되는 순간이 왔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푼크툼이 그 명료함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조금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런 일은 오랫동안 사진을 보지 않고 지내다가 나중에 그것을 돌이켜 생각해 볼 경우다.

카메라 루시다, 열화당, 2262.

 

, 한 사진 안에 스투디움과 푼크툼 중 어느 것이 절대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은 사진 감상자의 눈을 거치며 스투디움을 담은 사진이 되기도 하고, 푼크툼을 담은 사진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글을 구상하게 된 최초의 의도, 모든 사진 속에서 깊은 슬픔을 보았던 그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결국 모든 사진은 푼크툼이 될 운명에 처해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진은 이미, 항상 어떤 결핍, 불가능이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현재화하여 영원성을 확보하기 위한 의도로 고안된 것이 사진이라고 할 때, 과거의 행복했던 시간을 재소환하려는 사진의 의도와는 달리, 사진이 상기시키는 것은 모든 좋은 시간은 이미 지나간 시간이라는 것, 우리는 사진으로 영원을 획득하려 하지만 실은 사진을 통해 영원한 것은 없다는 냉정한 인식에 이르게 되며, 이런 깨달음이야말로 사진이 우리에게 주는 푼크툼인 것입니다.

 

(처음에) 나는 문화적 흥미의 영역인 스투디움과 때때로 이 영역을 가로질러 찾아오는 그리고 내가 푼크툼이라고 부른, 어떤 예기치 못한 얼룩말 같은 줄무늬를 구분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나는 이제 세부와는 다른 푼크툼(또 다른 상처 자국)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이미 형태는 없지만 강렬한 이 새로운 푼크품, 그것은 바로 시간이며, 노에마(그것은-이미-존재했음)의 애절한 강조법, 순수한 표상이다.

카메라 루시다, 열화당, 39105.

 

이제야 부모님의 칠순과 팔순에 맞추어 사진책을 만들려고 하던 때에 느꼈던 깊은 슬픔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미 존재했음이 사진의 본질이기에 모든 사진에는 푼크툼으로서의 시간이 담겨 있고, 그것이 마치 화살처럼 사진 감상자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게 푼크툼은 시간이 할퀴고 간 과거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지금 나를 찌르며 일상적인 감각과는 다른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이제 푼크툼은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시간의 상처가 됩니다.

이렇게 시간의 상처 혹은 유한함을 붙안고 살아감이 우리의 인생임을 아는데도, 오늘도 우리는 사진을 찍고 행복을 구하며 이것이 영원하기를 소망하는, .., ‘인간만이 절망이다는 그 문장 속의 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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