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공부>
簞彬
몸과 마음을 닦고 호흡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준비 자세를 취한다. 임전태세를 갖추어 전장으로 나가는 군사처럼, 단단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 낭독을 시작한다. 이런 마음가짐 혹은 태도가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낭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해보아야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낭독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꽤 묵직하다.
몇 구절을 채 읽기도 전에 이내 감지한다. 평소 내 말버릇에 성의가 얼마나 없는지를, 그제서야 아차 하는 뒤늦은 자각이 최근에는 더욱 빈번하다. 낭독을 하듯, 그런 태도나 자세가 내 몸에 온전히 내려 앉는다면 내 말은 분명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목소리가 목이나 가슴에서 나올 때 혹은 단전에서 올라오는 각각의 경우를 경험하며 내 상태가 어떠한지를 감지할 수 있다. 정돈된 생활 가운데 차분하고 낮은 중심에 임하였을 때에는 목소리가 깊은 곳에서 올라오지만 뜬 상태에서의 낭독은 시원스럽지가 못하다. 그럼에도 막힌 지점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낭독을 지속할 때에 매끄럽지 못하던 것이 조금씩 길이 난다. 더불어 차분한 상태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글자가 소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고, 아들이 어머니를 떠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夫字之離聲 猶魚之離水 而子之離母也(박제가)'고 말하듯이 묵독과 달리 발성을 하는 낭독은 좀더 깊게 글에 가닿게 한다. 눈으로 문자를 읽을 때 침범하는 갖은 생각들을 소리로 글자를 좇다보니 다소 해소되는 지점이 있다. 더불어 입으로 소리를 내어보는 것, 그것은 즉 내게 있어 새로운 말의 길을 내는 과정이다. 입에 붙지 않은 말은 어색하여 발설하기가 쉽지 않은데 낯선 어휘를 발설함으로 내 입에 붙게 되고 그렇게 조형된 말의 세계는 새로운 정신의 방을 만들어간다.
"하나의 방 안에서 묵새기고 있으면서 그 내부 풍경이 '자연'이 되도록 익숙해지면 질수록 다른 방들의 존재는 잊혀가지만, 다양한 소통의 망을 통해 운행되는 인간의 갖은 말은 이러한 타성에 균열을 내고 다른 방과 다른 말과 다른 세계에 대한 비교적 , 메타적 관심을 촉발시킨다." (집중과 영혼, k선생님, 154쪽)
장숙공부에서 선생님께서 수시로 외국어를 강조하셨는데, 그것이 어학이 아니라 언어적인 맥락임을, 낭독을 하면서 알게 되었고 한글로 씌어진 책을 낭독하는것의 흐름이 그러하다면 외국어를 낭독하는것은 어떠할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여 할 수 있겠는 한문이나 영어문장을 종종 소리내어 읽어보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직은 낭독이라는 것에서 표면적이고 기능적인 변화외에는 어떠한 것을 붙잡지 못하였지만 낭독의 공부로 현시될 인문적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보게 되고 그것이 내 정신을 깊게, 그리고 넓힐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