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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관련하여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되돌아봅니다. 비슷하거나 고유한 경험이 있으시리라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저의 반추가, 공부 길에서 이미 지나왔거나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알아차리는 데 작은 참조가 되면 좋겠습니다.

 

 

1. 탈락된 말

 

같은 자리에서 질문하고 있어요. 이제 인문학도로서 이분법적인 전제를 가지고 질문하지 않도록 해보세요.”

고양 속속에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입니다. 순간 부끄러워서 귀까지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그제야 내용은 다르지만 같은 형식의 질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하는 말에 대한 역의 관심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에 한 동학은 그런데 그 질문을 왜 하는 거예요?’라고 되묻곤 했습니다.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면 궁색했습니다. 왜 그것이 궁금한지 자기 탐색을 해본 적이 없었고, 정말 궁금하지 않으면서 던지는 질문, 그래서 결국 귀 기울여 듣지 않게 되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공부 자리는 말을 다르게 대접하고, 빈말이나 분열된 말은 금세 감각되며 길을 잃고 탈락되는 수순을 밟습니다.

불필요한 말을 탈락시키고, 한편에서는 좋게 여겨지는 말을 떨구어 내기도 합니다. 선생님께서 다 말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알려 주셨고, 다 말하고 더 말하고 싶은 충동에 직면합니다. 준비한 말이 있거나, 좋은 말이 떠오른 것 같으면 더욱 그러했습니다. 나름 괜찮게 여겨지는 말을 하지 않고 떨구어 보았습니다. 애매한 말이지만, 그 떨구어 낸 말, 희생시킨 말이 토대가 되어 예비하는 다음 대화의 장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2. “매양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그 생각은 이미 생각이 아니다.”(선생님)

 

저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잘하겠다고 마음먹는 것보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더 잘하려고 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합니다. 그래서 개선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스스로를 이렇게 배려하곤 합니다. 그것을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미 어느 정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잘하고 있는데, 조금 더 잘해보자라는 식으로 자기-대화를 걸어요.

돌아보면, 말에 관하여도 이런 식의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연극적인 인정이 있었습니다. 발제가 있으면 매번 신청을 했습니다. 일단 신청을 하고 완수하기 위해 노력을 하다 보면 공적인 자리의 엄중함 때문인지 어떻게든 길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얻은 말 하기의 기회들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시는 발제문을 따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중요해 보이는 사실을 나열하는 것보다 큰 줄기를 잡아 발제할 때 전달이 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적인 발화자로 나서면서 벼려지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닿게 말할 수 있을까, 를 궁리하며 이렇게 저렇게 맵핑을 해보기도 합니다.

 

3. 인용

 

참여하고 있는 <동무론> 읽기 모임에서, 드물게 듣는 이의 눈이 반짝였을 때, 무엇이었을까? 라고 질문하여 봅니다. 응하여 인용한 보다 큰 말 그리고 실존적인 고민이 담긴 말을 했을 때 그랬습니다.

말에 관하여, 문장을 암기하는 습관의 도움을 받습니다. 암기하고 곧바로 써먹게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써먹기 위해서 암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큰 말을 배우고 만나는 극진한 수행으로 암기 수첩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에 말을 새기는 노동 같기도 합니다. 문장을 드문드문 지속적으로 암기합니다. 암기할 때는 토씨 하나 정확히 외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많이 잊고, 잊은 것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문장을 외웁니다. 암기하는 과정 자체를 좋아합니다. 암기에 집중하면 미처 주목하지 않았던 조사나 주어, 동사 등의 배열에 유의하게 되고, 조금 더 세심하게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때 암기를 해놓고 잊은 문장들이 대화중에 떠오르곤 합니다. 질문을 받고 설명에 나설 때, 암기했던 문장이 생각나면서 설명을 채우고 돕는 디딤돌이 되는 경험을 합니다.

한편, 대화의 장에서 실존적인 고민이 담긴 말은 보다 진솔한 연결을 만들어 냅니다. 질곡을 겪으며 생성된 말들을 차마 서로 귀하게 대접하는 것 같습니다. 설명이 추상적으로 흐를 때, 삶의 구체적인 문제 혹은 고민과 연결하여 말하면 한결 생생해지는 걸 느낍니다.

 

 

4. 낭독

 

저의 경우, 어떤 상황에서 말을 막는 정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낭독은, 정서가 가장 알맞은 자리로, 균형감 있게 배치되는 감각을 일깨웁니다. 적절한 정서의 온도와 정도를 찾아가도록 말이지요. 이 평소의 훈련을 귀하게 여깁니다. 말을 막는 정서에 대하여 역으로 개입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낭독을 하면서 발음과 발성 등, 말의 기술적인 부분에 관심을 내기도 했습니다. 낭독이 목의 숨에서 시작되기도 하고, 이마나 뒤통수에서 시작될 때가 있습니다. 유튜브 강의를 보며 복식 호흡으로 소리 내는 법을 따라 해 보기도 했습니다. 낮은 중심에서 발화하는 연습을 합니다. 특히 발화하는 문장의 첫 소절을 낮게 시작하도록 유의합니다.

사소하지만 알게 된 것 두 가지를 공유하면, 첫째는 를 발음하는 규칙입니다. ‘가 낱말의 처음에 오면 라고 읽지만, 다른 말 뒤에 붙에 나오는 로 발음하는 규칙을 확인습니다. , 희망, 무늬, 흰색의 로 발음합니다.

또 하나는 숨이 새게 되어 있는 발음입니다. 은 후음이라고 합니다. , , , . 목에서 소리가 납니다. 이런 소리는 바람에 실려서 소리가 나기 때문에 미세하지만 뜨게 되어 있습니다. 이 첫 음절에 나올 경우 낮게 눌러 발음하면 중심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다듬으면서 말의 기량을 높이는 방식도 생각합니다.

 

-장숙의 숙인은 삶의 의미를 생성시킨다.

-경기도 하남에서 오신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가셨다.

-대단한, 고등학교

 

5.

 

가벼운 수다에 잘 끼지 못합니다. 험담은 오랫동안 불편합니다. 하거나 들으면 유독 몸이 굳고 힘든 말이 있습니다. 추정하기로는 어떤 신념과 연결되어 있어서 몸이 반응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러한 말들에 취약하고, 유연하게 응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 잘하고 싶은 말은, 어떤 말을 듣게 되든지 압도되지 않고 현존하며 제 자신을 잘 표현하는 말입니다. 특정한 말에 자극을 받고 경직되는 몸과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지. 응하기에 있어서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우선 당위의 어법을 선호의 수위로 바꾸어 제게 들려주고 있는 중입니다. 저의 경우 ‘~해야만 한다라거나 옳지 않아라는 표현은 신념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범주에 묶여 있을 때, 선생님께 미학의 차원을 알려주셨고 아름답거나 추하다는 범주를 수렴했습니다. 미학의 범주는 몸을 한결 유연하게 합니다.

한편, 유독 어려워하는 문법을 알아차립니다.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부탁하거나 요구하는 말이 어렵고, 부정적인 사실을 전달하거나 거절하는 말을 할 때 긴장이 생깁니다. 회피하고 싶으면 말이 추상적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어떤 말을 할 때 정서가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비합리적인 정서와 긴장, 과도한 경직이 생기는 말은 돌보아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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