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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6 22:29

장독(藏讀)후기 12회

조회 수 309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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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辭典)을 펼치는 시간>


문득

고개를 돌려 손을 뻗으면

사전(辭典)이란 게 짚이고 열린다

사전은 늘 말 없는 수동태로 존재하며 손가락에 얹힌 작은

의욕의 개입을 기다린다


'모른다'는 마음의 틈에 생기는 

무죄의 빛살

아직 모르는 자가 들추어내는 낮은 자리

책으로 부풀어오른 지식의 포만과

비수처럼 헤어진다


죄 없는 삶을 묻는다면

사전을 찾는 시늉으로

책 속의 빈 곳을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끌어안는 항복의 몸짓으로


모른다

모른다


너를 모른다

나날이 행해지는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어두운 움집 속으로

존재를 기울여

하아얀 사전을 찾으면

죄 없는 자리

숲의 새처럼 벌써 아득하다


<옆방의 부처, 글항아리, k선생님>


20220926_223405.jpg



*'모른다'고 하는 태도가 갖는 위상이 무엇인가?

  모른다는 것은 일종의 항복입니다.

  마음이 빈 상태로 사전을 열듯 타자를 대하는 것입니다.

  '모른다'를 삶의 기본값으로 설정해두고, 

  '모른다'는 지평을 갖는 것은 

  새로운 시작으로 타자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 '상처받은 자는 걷는다'(루소)

   루소의 산보는 계몽주의 시대에 도시화를 반대하던  

   낭만주의자의 선택입니다.

   몸을 흔들면서 걷는 것은 과거를 잊고 

   새로운 착안을 구현하게 합니다. 

   걷지 않는 자는 오만하고 자기에게 만족하는 자이며

   걷는다는 것은 매몰된 자기의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산책은 체계와의 창의적인 불화입니다. 



* 자득(自得)은 스스로 깨쳐서 얻는 것입니다.

  몸과 관련된 것은 오래 해보면서 얻게 되는 이치가 있습니다.

  자득을 통해야 남을 도울 수 있고

  자기의 몸을 끄을고 나아가면서 생기는 실질적 실효, 

  재미가 있습니다. 

  오래도록 재미있게 하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는

  자득을 통한 것입니다. 



* 자기를 이기고 마음을 비워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 중

  하나가 청소입니다. 심지어 일본에는 청소로 해탈하는 종교가 

  있기도 합니다. 일단은 해봐야 합니다. 해봐야 문 너머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도(道)는 해보는 것이고 하지 않으면 영영

  갇혀 있게 됩니다. 또한 도는 몸에 관한 것인데, 그것은 저항이 

  강하지만 작은 버릇으로 오래 해보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 ?
    燕泥子 2022.10.16 23:01
    앎의 자리로 나아가 배울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알고 있다'는 착각이 깊었다는 사실입니다. 타자와 함께하는 곳에서 나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지 못한 채 행할 수 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한 치 앞의 미래도 알지 못하고, 엄연하게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또 그 이후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고, 삶의 실재로서 이 우주가 내용인지, 형식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작은 것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알았다'라는 오만을 부렸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떠올립니다. 생각의 복잡성이 현명함이 아닐진데, 복잡성이 초래한 혼란 속에서의 앎은 지식도, 지혜도 아닌 다만, 리비도에 포박된 에고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른다'는 죄없는 자리에 서기 위해서 애써 배워야한다는 것을 깨단합니다. 애매한 텍스트를 놓고 진심을 부리는 우매함에서 벗어나 더 좋은 형식을 몸에 내려 앉히기 위해 홀로 있을 때 삼가며, 신발을 야무지게 벗고, 가만히 방을 닦고,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습니다. 그리고 길게 오래 걸으면서 자기 형식을 살피고, 돌보야한다는 것을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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