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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3 17:09

장독(藏讀)후기 17회

조회 수 276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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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만이 절망이다>


인간이 절망이란 사실은 너무 가까운 데에서 알았어요

낮고 따뜻한 생활 속에서

자라 꼬리만 한 사건들 가운데서

검은 대추 뿌리처럼

앙버티는 고의(故意)를 읽었지요


변함없이 회귀하는 호감 속에서

어리석음의 깊이가 독아(毒牙)의 입을 벌려

결심하고 해명하고

원망하고 뉘우치지요

새로운 날의 낡은 변덕을 위해서


매사 오순도순한 근친의 비용으로

절망을 배우고

제 시대의 알리바이가 된 희망을 털어내지요

인간의 세상이 제 꼬리를 다투어 삼키며

핏빛으로 저물 때까지


k선생님, <옆방의 부처>, 글항아리





                                             *


達於理者 必明於權 

달어이자 필명어권, <장자> 


말과 글은 새로운 길을 얻는 방식입니다. 권력을 남용하면 폭력이 되고 욕이 팽창하면 대화를 할 수 없습니다. 욕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정신의 행로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사리에 밝은 자는 권도(權道)를 쓰는데도 능합니다. 공부를 해야 꾀가 생기고, 이것으로 방향을 잡아 나아가면 새로운 것이 생성됩니다.



                                             *

인간만이 절망이다


사건은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인데, 어리석음의 핵심은 자신의 개입을 놓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절망인 이유이며, 인간만이 절망이기에 '나'만이라도 희망이 되도록, 각자가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도록 공부를 하라는 것입니다. 버릇, 생활, 삶의 지향에 변침을 가하여 스스로 밝아지고 남을 도울 수 있는 공부말입니다. 인문학 지혜의 기본은 제행무상입니다. 시간에 대해 자각하는 것으로, 내밀한 곳에 쌓이는 공부, 자신을 구제할 수 있는 공부 즉, 삶과 죽음 이후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모든 공부의 토대는 생활이며, 긴 호흡을 통해 자신을 바꾸고 밝아진 빛을 통해 이웃을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공부여야 합니다. 공부를 통해 쌓은 실력으로, 쾌락과 의무, 자유와 노예의 구분이 사라지는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仇邊之弩易避 恩裡之戈難防 

구변지노이피 은리지과난방, <채근담>


가깝다(intimate)는 말은 자기개입과 관련된 근친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리비도가 함의된 말입니다. 사랑이 깊으면 치러야 하는 비용이 크고(甚愛必大費 심애필대비), 원수의 활은 피하기  쉬워도 은혜입은 자의 창은 막기 어렵습니다. 맹점은 개인의 무지로 인해 생깁니다. 



                                               *

일식(一食), 극히 실용적인 지침들


생활양식 가운데서 쾌락은 피할 수 없는데, 공부에 걸맞는 쾌락을 찾아가야 합니다.새로운 쾌락을 얻기 위해 善과 眞을 넘어 미학적인 차원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몸에 대한 새로운 실천으로 일식을 하는데 몸과 생활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미학적인 측면이 있습니다.마샬 맥루한이 매체가 바뀌면 지각의 형식이나 감각의 비율이 바뀐다고 했듯이 일식은  쾌락을 얻는데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이기도 합니다. 음식을 바꾸면 쾌락이 달라지며 이는 생활양식과 관련된 긴 공부의 체득을 보여줍니다. 몸이라는 매체는 실로 놀라운 것으로, 몸이 바뀌면 정신이 바뀝니다



                                               *

불천노(不遷怒)


사람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대표적인 감정이 원망입니다. 정신적 맥락에서 怒와 怨을 해결하지 않고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삶과 죽음이후를 구제하는 공부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노릇을 하는 것이 불천노입니다. 인간의 명제는 정신이 자란다는 것인데 노인의 미덕으로 지혜와 관후함이 필요합니다. 


正己而不求於人則不怨,上不怨天,下不尤人

정기이불구어인즉불원,  상불원천, 하불우인, <중용>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원성 사는 일이 없을 것이며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다른 사람을 책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책을 읽을 때에 책이 무엇을 향하는지 살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비단 이게 책에만 적용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제 생활 가운데서 확장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의무에 묶여 해야만 하는 일들이지만 그것이 무엇을 향하는지, 혹은  정신을 자라도록 하는 것인지, 어떠한 식으로 개입을 하여야 하는지를 살필 때에 의무가 쾌락의 지점으로 미세하게나마 이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無往而非功扶, 어딜 가나 공부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생활을 임상으로 삼으며 다른 접근을 해 나갈 때 이전에 없던 것을 맞이하게 되기도 합니다. 속속 공부시간에  배우는 암연이장(闇然而章: 어둡지만 나날이 밝아진다)의 이번 문장은 '언제나 다시 시작한다'입니다. 인간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존재(한나아렌트)라는 명제가 큰 위로로 다가옵니다.  지금, 다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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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零度 2022.12.14 20:44
    * 몸이라는 매체는 실로 놀라운 것으로, 몸이 바뀌면 정신이 바뀐다.
    * 삶과 죽음 이후를 구제하는 공부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노릇이 불천노입니다.
    덕분에 제게 와닿는 문장을 적바림해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