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의 인문학:
거래와 환대의 윤리를 위하여
이번 서촌 장강(藏講)에서는 ‘식당의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의합니다. 공부나 종교나 정치나, 그 모든 게 ‘인간의 일’이라는 조건을 벗어나지 못하며, 특히 먹는 일의 사회성은 인간의 행위를 짐승의 행동과 변별시키는 기원적이면서도 결정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음식은 그 자체로 아직 문화가 아닐 수 있지만, 식탁은, 어울려 먹기는, 그리고 이 어울림에 동원되는 각종의 형식과 윤리는 탁월한 문화(a culture of excellence)입니다. 이 강의 속의 ‘식당’은 이런 형식과 윤리를 요구받는 문화사회적 제도이자 매개입니다.
물론 논의의 배경은, 한국사회에서 특징적인 직인(職人)/상인 문화나 그 윤리의 부재입니다. 근대적 사회란 쉽게 말해 농민이었던 백성이 시민이라는 상인(商人)으로 변모하는 시공간입니다. 거의 모든 곳이 시장이 되어, 재화(財貨)가 상시로, 전방위적으로 유통되면서 이에 따른 제도와 문화가 삶의 형식을 안정적으로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한국사회는 이미 잘 밝혀진 갖은 문제점에 떠밀려 시장자본주의적 합리화에 필요한 문화나 기풍(ethos)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특히 우리가 일상 접하고 이용하는 자영업소의 정신문화적 난맥상은 이미 정도를 넘어섰으며, 이로써 소통과 거래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태와 습관과 무지 속에서 심신을 소모하고 에너지를 낭비하며, 자칭하는 ‘선진국’의 실제를 스스로 부인하고 맙니다. 선진, 이란 무엇보다도 정신이며 기풍이고, 문화고 행태며, 사회적 신뢰이고 인문학적 감성이기 때문입니다.
강의의 배경과 취지는 이처럼 전방위적으로 뻗어나가지만, 그 소재는 내가 긴 세월 이용했던 자영업체, 그 중에서도 특히 식당에 집중합니다. 이 공간들을 이용할 때마다 느꼈던 어떤 비평적 안타까움이 오래 쌓이는 중에 스스로 말길이 생겼던 것은 당연합니다. 이 문제의식은 우리사회의 총체적 웃자라기와 정신문화적 거침(荒)의 기원과 연결되었고, 누구든 시장자본주의를 피할 수 없는 이상, 거래와 환대의 윤리에 따른 고민 속에 이를 탐색해보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공부나 인문학은 무엇보다 ‘사람의 일’이고, 또 그것은 근사(近思)에서 시종(始終)하는 법입니다. ‘식당의 인문학’이란, 내적으로는 인문학의 성격에서 적실한 주제이며 외적으로는 한국사회의 일상을 어지럽히며 그 사회적 신뢰도를 훼손하는 당면과제이기도 한데, 이번 강의에서는, 식당의 문턱을 넘어서는 자가 겪어야만 하는 생활세계적 소외와 그 난맥상을 통해 다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그립니다.
장소/ 서울 서촌, <문화공간 길담>
일시/ 2024/10/26(토), 오후 3시~6시 30분
정원/ 선착순 25명
신청, 문의/ 숙비, 010-2436-8760 (chodamy/daum.net)/
단빈, 010-7150-5441 (mhk97@naver.com)
회비/ 2~4만 (장소의 임대료 후원금입니다. 개인 사정에 따라 스스로 정해 입금해 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