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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7 10:40

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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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숙>이 한 달간 방학을 한다.

20176월 말 이었던 것 같다 k님의 블로그에서 공부 자리에 대한 공지 글을 보았고 당시 반장님께 연락하는 수순으로 <고양 속속>에 합류했다. 더워지기 시작하던 71일이 내가 처음 속속에서 공부한 날이다. 환상은 알고 어색함은 모르는 얼굴로 고양시 지린의 집 거실 구석에 앉았다. 강의 중 형식내용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내용이 있어야 형식도 있는 것 아니냐고 질문했던 것 같다. 이후 무심코 공부 이름을 형선이라 했는데 그 이유가 첫 시간에 있었는지. 암튼 그렇게 시작된 이래 빠짐없이 고양시를 오가며 속속 공부는 빠르게 내 무의식에 (나를 속이고)습합되었다.

앎과 삶이 서로를 보듬는 <속속>의 공부는 내 생활을 돕는다. 여전히 속속 공부는 그래 소중하고 과분하다. 하지만 소중하다=무겁다는 한자 뜻처럼, 한편에선 <속속>의 진중함이 압박처럼 무겁기도 했다. 자기소개 시간마다 준비되지 못함에 대한 고백의 위험이 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근 2년 간 격주 토요일 이라는 <속속의 약속>되어 가는 삶의 준거점이었다. 다시금 <집중>으로 초청되는 시간이었다. 14일의 주기(반복) 속에서 'k'에게만 쏠렸던 관심이 이론으로, 동학과 장소로, 생활로, 사린으로 확장되었고 정신의 가능성과 생활의 변화도(좀처럼 변하지 않음도) 얘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사이클의 변침 <장숙의 첫 방학>에 곧바로 진입하지 못하였다. 끈 떨어진 연처럼 초라한 상상에 한 나절, 불후한 감상에 한 나절을 보냈다. (이것도 저것도 나를 말할 뿐인 심리계를 알면서도 그곳에 머무니 내 어떤 쾌락이 그곳에 있다고 물어야 할까) 암튼 그 와중에 방학을 벌인냥 해석해대는 오랜 죄책감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부랴부랴 뒤쫓긴 했어도 <속속>이라는 약속에 묶여있는 동안 필기를 정리하고 교재를 읽고 발제를 준비하고 한시를 쓰고 복습과 숙제를 하며 알게 모르게 제 꼴도 제어되었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의 틈으로 어느새 침입하는 잡념과 변덕을 보자니 방학2주의 약속에 얹혀있던 내 걸음을 대면하는 시간이지 싶다. 그러니 하나의 형식이 느슨해진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규칙으로 걸어들어 갈 수밖에. 그곳에 있어서 저절로 되었던 것을 알기에 더욱 긴장을 챙길 수밖에.

방학 소식은 어떤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봄 된 것과 무관히 시작된 방학처럼 나 된 것과 무관하게 도래할 어떤 부재 말이다. 처음엔 공부자리를 오가며 속속이 내게 무엇일까를 물었다. 계절이 변하듯 질문도 변해 속속에게(지금은 장숙) 나는 무엇인가, 무엇이 될 수 있을까를 묻게 된 것이다. 내가 무엇이 될 수 있겠냐마는 四隣의 동무가 되어가는 자리가 <속속>이니 떠오른 질문에 순순히 응할 뿐이다.  문제는, 많이 있던 만큼 많이 없을 부재의 순간. 첫 방학은 내게 그러한 인상을 남겼다.

이러한 인상은 과외의 숙제로 두고 그래도 <속속의 첫 방학>을 기쁘게 맞이하련다. 방학도 학기처럼, 학기도 방학처럼 보내는 요령을 이참에 시험해 볼 터. 안 되어도 크게 상심치 말 것. 학기와 방학, 있음과 없음이라는 구분이 희미해지는 날이 올까. 있음을 없음처럼 없음을 있음처럼 살 수 있다면야...  공부의 선배를 따라 멀리가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는 무능의 길을 걷기로 하였고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기에그 아득한 곳을 향해, 걸을 뿐이다. 함께 걸을 수 있을 때 더욱 걸을 뿐이다. 그래도 방학이니 꽃 내음 맡으며 목련과 눈 맞추며 걸을 수 있겠다!



그림1.png



"인간은 무엇보다 형식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그리고 그 형식들과 더불어 삶을 살며, 이윽고 그 형식들을 (만성적으로) 넘어서려고 애쓰는 존재다. 형식들이 제 몫을 다하는 자리에서마다 인간의 현재는 유지되고, 형식들이 무너지는 자리마다 인간의 과거가 드러나며, 형식들을 넘어서려고 애쓰는 자리에서마다 인간의 미래가 손짓한다."  (<집중과 영혼>, 620쪽)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고 하듯이 사람은 누구나 형식의 노동을 그만두는 대로 죽는다. 달인이거나 성인인즉, 모두 바로 형식의 비밀을 통해 이름을 얻고, 남을 앞섰으며, 나름대로 '미래의 인간'을 선취한 바 있기 때문이다." (622쪽)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꼴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장치는 틀이라는 사실이다." (9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