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29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개들의 슬픔을


개들의 슬픔을, 오직 그래서

내 슬픔의 깊이를 

알게 된 날이 있었어


두 마리 개가 낮게 묶여 있었지

참새들이 호되게 붉은 하늘을 가르고

농부들은 제 땅만을 부지런히 긁고 있었어

한 마리는 먼 데 구름을 보고 있고

또 한 마리는 나를 부르더군


인간의 표정이 가 닿을 수 없는 눈빛으로 

아득한 비인(非人)의 언덕으로

슬픔이 탄생한 첫 자리로


개들의 사연을 읽었어


<선생님 책, 옆방의 부처, 43쪽>


개들의 슬픔에서 인간의 개입은 무엇인가?

인간이 사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가?

개들의 슬픔이 탄생한 첫 자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정신이 물질에 개입한다고 본 헤겔이나, 사물의 진리는 직접적인 동일성 속에서 보이지 않고 매개를 통해 보인다는 지젝의 말대로, 인간은 타자를 경유해서 무언가를 알게 됩니다. 자신만의 고유한 것은 없으며 끊임없이 모방하고 가공하여 응하는 관계에서 남다른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개는 인간과 섞이면서 많은 것이 전염이  된, 인간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물에도 인간의 개입이 있고, 신(神)도 인간의 개입으로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인간이 좋아지면 개도, 사물도, 귀신도 좋아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자기 개입에 관심을 가지고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합니다.



*

모든 망해가는 것들을 애도하는 방식은 한결같다


괜찮게 여기며 찾던 밥집이 또 폐업을 알리는 고지(告知)를 붙였다. 그래서인지, 저녁 시간인데도 아예 손님이 없고, 휑한 홀 속의 사물들은 이미 혼이 빠진 모습이다. 의도 보다 빠른 것은 늘 사물-성에 힘입는 것일까. 그러나 찬(饌)들은 전성기의 품세와 맵시를 잃지 않고 있었다. 음식을 배설하는 주인아주머니의 눈가에 주름이 낯설다. 그러나 모든 망해가는 것들을 애도하는 방식은 한결같다. '이미-세상-속에는-없는-것'이 아니라면 우리 모두는 진작에 망하였을 것이므로.


<선생님 책, 차마,깨칠 뻔하였다. 47쪽>


"어긋남의 조건은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대하는 의도탓에 어긋나기 마련인 것이지요. 지혜로운 자라면 의도를 믿지 않고 의도 밖의 것, 사물-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점이 망해가는 경험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이것은 선생님께서 좋아하시는것이 다르다는 것, 돌려 말하자면 망하는 집만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거래의 동기를 느끼게 하는 그 곳이 망해가는 것에 대한 애도에는, 선생님 자신에 대한 애도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떠한 태도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망해가는것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이 좋은지, 학인으로서 가져야 할 질문을 남기셨습니다. 


  ※위 글은 26회 장독에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2 174회 속속] 결석자의 숙제 new 유재 2024.11.17 2
301 속속 결석을 글로 대신하며 如一 2024.10.18 80
300 171회 속속 조별토의 발제문] 이름: 전형, 혹은 새로운 성찰 유재 2024.10.07 96
299 168회 속속 교재를 마무리하며] 정상인, 정신병자, 그리고 상징계의 지혜 2 유재 2024.08.22 242
298 동학들에게, 2 file 는길 2024.08.07 427
297 166회 속속 조별토의 발제문] 당신이 말하도록 하기 위하여 3 유재 2024.07.08 268
296 164회, 角端飛話 (1-6/계속) 찔레신 2024.06.03 331
295 한국어의 기원, 遼河문명, 그리고 한국 상고사의 과제 찔레신 2024.05.23 355
294 4月 동암강독 1 file 는길 2024.05.21 277
293 寂周經, 혹은 몸공부에 대하여 (1-6) 1 찔레신 2024.05.16 274
292 162회 속속 발제문] 공연히, 좀 더 생각해보기: 한자를 정확히 ‘발음한다’는 것은 왜 그토록 중요했을까? 유재 2024.04.26 200
291 訓民正音, 혹은 세종의 고독 (1-5) file 찔레신 2024.04.16 286
290 161회 속속 낭영과 NDSL사이] 짧은 베트남 여행기 - 그들은 화를 내지 않는다. 유재 2024.04.12 156
289 <최명희와 『혼불』제1권> 발제문을 읽고 2 file 는길 2024.03.29 236
288 160회 속속 발제문] 최명희와 『혼불』제1권 3 유재 2024.03.22 225
287 속속 157~159회 교재공부 갈무리] 촘스키-버윅 vs. 크리스티안센-채터, 혹은 구조와 게임 1 유재 2024.03.05 239
286 이번 교재 공부를 통하여, 1 file 는길 2024.02.07 351
285 [一簣爲山(23)-고전소설해설] 崔陟傳(2) file 燕泥子 2023.06.11 334
284 (155회 속속 硏講) 가장자리에서 지린 2023.06.10 332
» 장독후기(26회) 2023/05/21 簞彬 2023.06.03 29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6 Next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