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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1 06:36

산책_ 외출1

조회 수 197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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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_ 외출1


- 아직은 순박했던, 1990년대를 연상시켜 이질적 공기를 만들어낸 그 커피숍을 나오며 떠올린 물음은 내가 다시 그 커피숍을 갈수 있을까? 였다. 그 공간에 다시 발을 들여놓음에 왜 남다른 결정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내 감성은 왜 그 공간을 이질적이라고 접수해 버린 것일까???

 

- 언젠가 월든을 통해 소로우(1817~1862)의 삶을 엿보면서, 세상이 만들어 놓은 톺니바퀴 속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기능하고 있던 자신을 알게 된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나름 아파트()를 소유하지 않음으로, 나름 대형마트 보다 동네 슈퍼를 애용함으로, 나름 웬만한 거리는 차가 아닌 자전거를 이용함으로, 휘몰려가는 세상에 끄달리지 않으려 애써왔던 실천들이 이미 그 시스템 안에서의 운신일 뿐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

 

- 인간의 무의식은 타자의 언어로 되어 있다던 라캉의 말처럼 내 무의식이 타자의 말로 되어져 있다면 그것은 아버지의 말과 함께 자본의 말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인간의 정리情理조차 단박에 메뉴얼화 시켜 상품으로 등록해버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정체성이 소비자라는 사실에 첫 번째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겠지만, 그 지목된 정체성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의 소외를 감내해야하는 것은 또한 자신일 뿐이다.


- 세상의 말이 온통 특정의 말들로 도배되었을 때, 서로 맥락 지어진 그 말들은 인간의 의식을 장악한다. 장악된 의식은 그 말이 의도한대로 세상을 표상한다. ‘나는 조금 다른 말을 가졌어라고 확신하며 방구석에서 대양의 고래를 잡던 인간이 세상에 나왔을 때, 제 안에 표상되어진 심리, 정서, 혹은 의도 등이 타인을 만남과 동시에 세상에 도배되었던 특정 말들로 전유되어 버린다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흔히 겪는 오해로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오해를 피하지 못하고 굴절毁折되어 버리는 언어환경 속에서 타자를 만날 수 있는가는 연대할 수 있는가의 물음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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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명자 2020.06.07 18:09
    초담의 마지막 물음, '굴절되어 버리는 언어환경' 속에서의 '연대'와 맥락이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논의에 보탬이 될까, 암기수첩과 책의 문장을 옮겨 적어요.

    "사회적 유대는, 이런 다양한 진술들이 발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개별적인 원자들 혹은 '자기'들의 상호 투기적인 화용론적 언어활동에 의해 형성됨"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요약하자면, 나는 "인간성 자체"와 동일시된 것으로서의 인간의 연대성과, 지난 수세기 동안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차츰차츰 고취되어 온 자기-의심으로서의 인간의 연대성을 구분하고 싶다. 이 의심은 타자의 고통과 굴욕에 대한 자신의 감수성에 관한 것이며, 현재의 사회 제도들이 이런 고통과 굴욕을 다루기에 적합한 것이냐에 대한 의심이며, 가능한 대안에 관한 호기심이다. 인간성 자체와 인간의 연대성을 동일시하는 것은 내가 보기엔 불가능하다. 이것은 철학자의 고안물이며, 신과 같이 된다는 생가을 세속화하려는 조야한 시도이다. 자기-의심은 내가 보기에 "당신은 고통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당신은 우리가 믿고 원하는 것을 믿고 원하는가?"라는 질문을 인류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구분해 낼 수 있게 된 최초의 시기를 특징짓는 표지로 보인다. 나의 용어로 말하자면, 이것은 당신과 내가 똑같은 마지막 어휘를 가졌느냐는 물음을 당신이 고통을 맏고 있느냐라는 물음으로부터 구별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질문을 구별하는 것은 사적인 질문과 공적인 질문을, 인생관에 관한 질문과 고통에 관한 질문을, 아이러니스트의 영역과 자유주의의 영역을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이러한 구별의 능력은 한 사람에게 두 영역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리처드 로티,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 김동식·이윤선옮김, (주)민음사, 1996, 359쪽.)

    초담의 <홍대용> 발제에서도 '타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의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타자를 만나는 것, '연대'에 대한 동학의 관심과 고민을 엿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