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는 공자 사후 100년이 안 된 시점에서 누군가에 의해 편찬되었다. 세상에서 공자가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 몇몇 제자들에 의해 자기네가 아는 것을 모아서 남기는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소크라테스 회상>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지 9년여가 지난 후에 어떤 소피스트가 쓴 <소크라테스에 대한 고발>에 대한 반박으로 크세노폰이 썼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사후에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내용으로 한 여러 저서를 남겼다.
<신약성경> 역시 예수 사후 수십년이 지난 후부터 쓰여지기 시작했으며 불경은 심지어 석가모니가 죽은 지 몇 백년이 지난 후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 기록들은 모두 제자 그룹에 의해 쓰여졌다.
지난 주 어떤 숙인의 집에서 열린 장독 모임에서 그 집에 있던 일본 국보 문화재 불상의 얼굴 본을 구경하는데 그 불상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복원자의 미적 취향에 따라 마치 사진을 포토샵하는 것처럼 턱을 좀 깎기도 하는 등 원래 얼굴이 변형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그 얘기를 통해 문득 자각하게 된 내가 갖고 있던 어떤 오해를 돌아보게 되었다. 원본, 오리지널에 대한 오해. 그것은 변형없이 고스란히 전해 내려오고 또 그렇게 복원된다는 오인. 그제야 소크라테스의 대화는 크세노폰이 썼다는 것. 그것도 매일 따라 다니며 하나하나 다 채록한 게 아니라 사후 9년이나 지나 스승의 대화를 복기하면서, 다른 이들의 증언을 전해 들으면서 썼다는 사실이 순간 어떤 일깨움을 가져다 주었다. 저 성인들에 관한 책들은 제자들의 기억과 구전에 의존해 편찬되는 과정에서 편찬자의 윤색, 보완, 첨언 등이 불가피했을 터이다. 그것이 스승의 근본 가르침을 훼손하는 일은 물론 없는 채로 말이다. 스승의 언행과 가르침을 회상해 내고 다른 이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쓰는' 행위야말로 법고창신의 길이었으며 쓰는 과정에 참여한 모든 제자들은 그 행위로 말미암아 좀더 나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으리라.